치솟는 금값 속 다양한 풍경
400억 몸값 함평 황금박쥐
복 기운 받으려 관광객 발길
폐기물서 금 캐는 ‘도시광산’
전자제품 1t서 600g 추출도
손안에 콩알금 모으는 재미
자산 증식 기대감에 인기 쑥
그야말로 황금의 전성시대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6일 기준 순금 한돈(3.75g)을 살 때 가격은 106만8000원으로, 작년 같은 시기(58만9000원)보다 81.3% 뛰었다. 한돈짜리 돌반지 한개 가격이 100만원 내외로 형성됐다니 혀를 내두르게 된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안전자산 선호가 커지면서 우상향하는 금값이 파죽지세다. 금을 향한 욕망은 천장이 있을까. 금을 사려는 사람은 물론 금의 기운을 받으려거나, 흩어진 금을 주워 모으려는 사람까지 황금빛에 매료된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담았다.
전남 함평군이 2008년 순금 162㎏ 등 28억원을 들여 조성한 황금박쥐상. 함평군
◆복된 기운 가득한 수백억원대 ‘황금박쥐’ 인기=
우리나라에 수백억원의 값어치를 지닌 황금박쥐가 있다면 믿을런지. 전남 함평에 가면 황금빛 날개를 펼쳐 비상하려는 듯한 박쥐 모양 상이 있으니 꼭 한번 만나보시라.
근데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한적한 군단위 행정구역에 어떻게 이런 귀한 물건이 들어서게 된 걸까. 사연은 이렇다.
멸종위기종인 붉은박쥐(일명 황금박쥐)가 1999년 함평군 대동면 고산봉 일대에서 발견되자 군은 희귀종을 보존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황금박쥐 조형물 제작에 나섰다. 2008년
순금 162㎏·은 281㎏을 들여 완성한 이 조형물에는 당시 재료비 28억여원이 들어갔다. 초기엔 관광 효과가 미미해 ‘세금을 허투루 썼다’는 비판이 거셌다.
그런데 금값이 급등하자 상황이 반전됐다. 이 애물단지가 효자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6일 KRX국제금시세(1g당 24만3040원)를 적용하면 작품에 들어간 순금 가치만 394억여원에 이른다. 박쥐상을 장식한 은까지 포함하면 400억원이 훌쩍 넘는 몸값을 자랑한다. 조형물 탄생 시점과 견줘 몸값이 무려 14배 이상 불어났다.
금값이 오를 때마다 이 황금박쥐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어느새 함평의 대표 명물로 자리 잡았다. 관광객 발길도 끊이질 않는다. 현재 황금박쥐상은 함평엑스포공원 추억공작소 내 ‘황금박쥐전시관’에서 방문객을 맞이한다.
군 관계자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40여일간 열린 함평 겨울빛축제 때 6만4000여명의 관람객이 황금박쥐전시관을 찾았고, 보통 주말에도 많게는 400여명이 이곳을 들른다”면서 “아무래도 요즘 금에 관심이 쏠리다보니 ‘황금의 기운’을 받겠다며 많은 사람이 발걸음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도시 광산’에선 주로 폐전자제품 속 전자기판에서 금을 추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폐전자제품에서 ‘금 나와라 뚝딱!’=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도시 광산’에도 이목이 쏠린다. 도시에서 금을 캔다는 말이 다소 생경하겠지만 실제 벌어지는 일이다. 버려진 휴대전화나 컴퓨터 내부 전자기판에서 귀금속을 추출하고 불순물을 제거하면 고순도 금을 얻을 수 있다. 개별 제품 한대에서 회수되는 금은 미미하나 폐기물을 대량으로 모아 처리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보통 금광석 1t에서 나오는 금은 5g 정도에 그치지만 같은 양의 폐전자제품에선 최대 600g을 추출할 수 있단다.
국내 금속 재활용 업계를 대표하는 한국금속재자원산업협회 관계자는 “금값 상승과 함께 금속 재자원 산업에서의 경쟁도 치열해지는 추세”라며 “금속이 포함된 폐기물 가격까지 오르면서 원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폐전자제품에서 회수한 금은 원광에서 채굴한 금과 품질 차이가 거의 없다”며 “기술이 날로 발전해 ‘재활용 금’이라는 편견이 무색할 만큼 순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콩알금. 다이아몬즈앤골드
◆콩만한 금모으기 새풍속 자리 잡아=
금을 직접 손에 쥐려는 수요도 점차 커진다. 특히 2040세대 사이에서 ‘콩알금’을 수집하는 게 새로운 경향이 됐다. 콩알금은 0.5g에서 한돈까지 이르는 저중량 금으로 크기가 작은 만큼 가격 부담이 덜해 진입장벽이 낮다.
서울 영등포에 사는 최현정씨(41)는 이번 설에 사내 복지포인트를 모아 쇼핑몰에서 1g짜리 금을 샀다. 금을 사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오를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최씨는 “예전에 선물받은 것과 남편이 소유한 것을 포함해 미니골드바 3개를 가지고 있다”며 “기회가 될 때마다 조금씩 금을 사들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 화성에 거주하는 30대 김모씨는 과거 금에 투자하는 통장을 개설했다가 1년 전 계좌에 있던 모든 돈을 뺀 뒤 실물 금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위기 상황에선 실물이 빛을 발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는 “현재 한돈짜리 금 2개와 1g짜리 콩알금 1개를 가지고 있는데, 앞으로 가격 부담이 적은 1g짜리 금을 꾸준히 모을 계획”이라고 했다. 이어 “콩알금을 유리병에 떨어뜨릴 때 나는 쨍그랑 소리가 좋다”면서 “자산이 눈에 보이며 쌓이는 느낌에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금의 주요 구매처는 귀금속 매장이나 은행인데 최근엔 편의점과 홈쇼핑에서도 금 거래가 활발하다.
온라인에서 개인간 금 거래를 잇는 서비스도 눈길을 끈다. 개인간 한정판 거래 플랫폼 ‘크림’은 올 1월 거래 품목에 금·은을 추가했다. 실물 금을 안전하게 사고팔려는 수요가 커진 데 따른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