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남는 건 없어도 밥만 먹고살면 돼~”…이 식당 백반은 단돈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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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이웃의 벗, 전북 익산 ‘영동분식’

1968년 역근처에 가게 열어

짜장면 팔아서 4남매 키워

남편 떠난 후 2년간 문 닫고

7년 전부터 백반만 판매해

고봉밥에 반찬만 13개 차려

골방서 단골들과 옹기종기

밥상 나누며 이야기꽃 피워

전북 익산역 근처에서 58년 동안 ‘영동분식’을 운영하는 이기자 할머니(85). 손님상에 내는 10가지가 넘는 반찬은 모두 국산 재료로 직접 만든 것이다. 익산=강재훈 프리랜서 기자

한끼 42만원짜리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하기조차 어려운 시대. 동시에 9000원짜리 국밥 한그릇 사 먹는 게 부담인 이들도 적지 않다. 배고픈 이웃의 끼니를 지키는 3000원 백반집, 전북 익산 ‘영동분식’을 찾았다.

익산역에서 영동분식이 있는 매일시장 입구까지는 걸어서 5분가량 걸린다. 시장 들머리에서 골목으로 5분 정도 더 걸으면 2층 회색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창문 한칸엔 주황색 시트지로 ‘영동분식’이 크게, 또 다른 창문엔 ‘백반·국밥·짜장·짬뽕’ 같은 메뉴 10여가지가 자잘하게 쓰여 있었다.

“뭘 볼게 있다고 멀리서까지 취재를 왔어∼.”

문을 여니 올해 85세인 주인 할머니가 기자를 맞는다. 본인 이름도 ‘기자’고 성은 이씨라신다.

인터넷에 전화번호도, 영업시간도 나와 있지 않은 영동분식은 58년간 주말이건 평일이건, 눈이 오건 비가 오건 365일 문을 열었다. 문득 궁금한게 생겼다. 왜 ‘영동’이고, 왜 ‘분식’일까.

“남편이랑 같이 가게를 했는데 남편 고향이 충북 영동이여. 한국전쟁 때 익산으로 피난온 거여. 나는 충남 부여 사람인데 스무살도 되기 전에 익산으로 시집왔제.”

1968년, 가난한 부부는 역전에 짜장면집을 열었다. 짜장면 한그릇 가격이 20원이었다. 개업 후 얼마 안돼 막내딸을 가졌다. 만삭의 몸이었지만 일손을 거둘 순 없었다. 그렇게 4남매를 키워냈고 둘째 아들은 의사까지 됐다.

15년 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지금은 혼자 가게를 운영한다. 과거 짜장·짬뽕·우동 같은 밀가루 음식도 있었지만 2019년부턴 백반만 판다. 할아버지가 쓰던 면 뽑는 기계, 할아버지 이름이 쓰인 빛바랜 영업신고증은 여전히 가게 한편을 지킨다.

백반 단일 메뉴에도 여러종류의 반찬과 맛 좋기로 이름난 ‘신동진’으로 지은 밥을 고봉으로 담아준다. 익산=강재훈 프리랜서 기자

백반 단일 메뉴라도 준비는 고되다. 이날 손님상에 나간 찬은 13가지. 시래기 된장국부터 배추김치·깻잎무침·파김치·무생채·시금치나물·콩나물무침·콩자반·무장아찌·된장·고추장·쌈장·새우젓까지 밥 한술에 반찬 한번씩만 먹어도 한그릇 뚝딱 비울 것 같다. 푸성귀부터 고춧가루까지 재료는 전부 국산을 쓴다. 장과 젓갈도 모두 직접 담근 것이다. 쌀밥도 맛 좋기로 이름난 ‘신동진’으로 지은 밥을 고봉으로 담아준다.

“손님들이 첨엔 밥을 왜 이렇게 많이 주냐고 하다가 반찬이 맛있으니까 다 먹어. 먹고 나서도 속이 아주 편하대.”

오전 11시가 되자 사람이 하나둘 모여든다. 단골 김동식씨는 주인 할머니에게 3000원을 건네며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대접에 밥을 한가득 담고 반찬을 야무지게 올린 뒤 된장·고추장까지 척척 퍼서 맛깔나는 비빔밥을 만들었다.

나무 소반 하나에 4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아늑한 공간. 낮엔 사랑방, 밤엔 할머니 잠자리가 된다. 익산=강재훈 프리랜서 기자

식탁이 4개뿐이라 다른 손님들과 자연스레 합석하게 된다. 자리를 함께하다보면 사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주인 할머니가 무릎이 아프다고 하자 단골 손님은 “김제에 좋은 병원이 있는데 언제 차로 모시고 가겠다”고 말한다.

부엌 옆엔 아늑한 공간이 있다. 나무 소반 하나에 4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골방이다. 따끈따끈한 방바닥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으면 밥도 술술 넘어가고 이야기꽃도 활짝 피어난다. 낮엔 사랑방, 밤엔 할머니 잠자리가 된다.

“2층에 집이 있는데 겨울엔 여기서 자. 집은 크니까 난방비가 많이 들거든. 애낄 건 애껴야지.”

본인 난방비는 아끼면서 손님상에 오르는 밥과 반찬은 아끼지 않는 할머니. 손님이 모두 떠난 후 밀려오는 고단함은 서랍장 위 손주 사진으로 달랜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서는 못하겠으니 2년 동안 문을 닫았지. 외롭고 할 일도 없으니 우울증이 오더라고. 병원 가서 약을 먹어도 가시질 않아. 다시 식당을 여니까 두달 만에 싹 낫더라고. 장사 해서 남는 건 없어. 밥만 먹고살 수 있으면 돼.”

영동분식은 허기진 손님에게도, 홀로된 할머니에게도 삶을 지탱해주는 보금자리다. 식당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곳이 아니었음을, 영혼을 살찌우는 곳이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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