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특례시 기흥구에 위치한 경기도박물관은 올해 개관 30주년을 맞아 다양한 전시와 참여형 이벤트와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
푸른 기운이 번져가는 경기도박물관 야외 정원에서 마주한 노란 산수유꽃 앞에서 ‘새로움과 도약’이란 말을 떠올린다. 개관 30주년을 맞이하는 경기도박물관(관장 박본수)은 1천400만 경기도민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리라.
경기도박물관 로비부터 전시실로 이어지는 공간이 막힘없이 탁 트여 있다. 시원하게 열린 전시실이 관람객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시간의 흐름대로 1층 ‘선사와 고대실’부터 관람을 시작한다. 돌도끼를 만들어 쓰던 선사시대 사람들이 남긴 삶의 흔적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설계한 전시는 다시 봐도 신선하다. 이 공간을 몇 차례 찾았지만 화성 소근산성에서 출토된 한성백제 시대 ‘휴대용 절구’와의 대면은 이번이 처음이다. 찻잎을 찧는 이 귀여운 도구는 백제 귀족의 차문화를 알려주는 특별한 유물이다.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풍성하고 짜임새 있게 보여주는 공간은 역시 2층 ‘고려실-조선실’이다. 고려청자와 조선 사대부의 초상을 비롯한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물과 대화하며 전시실을 둘러보는 시간이 즐겁다. 한 사람의 생애가 오롯이 담긴 초상화가 여러 점 펼쳐진다.
경기도에 존재했던 구석가·신석기 등 고대사를 알아볼 수 있는 선사·고대실 전경. 윤원규기자
“경기도박물관은 가장 많은 초상화를 보유한 박물관이지요.” 박물관 홍보를 담당하는 관계자의 목소리에서 긍지가 느껴진다. 경기도는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3·1혁명의 진원지였다. 아울러 지난해 경기도박물관에서 집중 조명한 몽양 여운형을 비롯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 경기도에 얼마나 많은가. 일제강점기 경기도에서 펼쳐진 치열한 독립운동과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경제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발전시킨 근현대 80년을 오롯이 보여주는 전시 공간이 마련되지 않은 것은 어려운 사정이 있겠지만 못내 아쉽다. ‘근현대실’이 속히 채워져 경기도의 정체성을 온전히 보여주면 좋겠다. 경기도박물관이 심혈을 기울이는 ‘참여기증실’은 경기도민의 자긍심을 세워주는 공간이다. “귀중한 유물을 기증받아 도민들에게 전시하는 일은 공공박물관의 큰 보람이자 자랑입니다.”
고려-조선시대 경기도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고려·조선실 전경. 윤원규기자
■ 경기, 국가 근본의 땅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의 정체성을 ‘국가 근본의 땅, 경기’라 표현했습니다.” 정미숙 학예팀장의 설명을 들으며 경기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다시 정리해 본다. 서울을 감싸고 있는 수도권이 아니라 고려와 조선과 근현대로 이어지는 문화의 중심이 경기도라는 부연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경기문화의 특성을 다양성, 개방성, 포용성, 혁신성으로 정리한 것도 공감되는 내용이다. “나라에 경기가 있는 것은 나무에 뿌리가 있고, 물에 샘이 있는 것과 같다.” 조선 중종 임금이 경기관찰사를 임명할 때 했던 말이란다.
전시물은 ‘국가 근본의 땅’으로 인식됐던 경기도에 팔도의 물산이 모여들었고 대동법 같은 민본정책이 가장 먼저 시행된 역사를 충실하게 보여준다. 경기를 통해 재창조된 물산과 문화예술이 경기를 거쳐 전국으로 퍼져 나갔던 역사적인 사실, 경기문화가 우리 역사 문화의 원형을 만들어냈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기대했던 것 이상이다. 이런 자긍심을 바탕으로 경기도박물관은 경기도인재개발원과 협력해 경기도의 신임 공무원들에게 박물관을 탐방하게 해 도의 정체성을 심어주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광복 80·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 특별전《동양지사 東洋志士 안중근 安重根: 통일이 독립이다》전시가 다음달 5일까지 진행된다. 특별전 전경. 윤원규기자
■ 동양지사 안중근: 통일이 독립이다
이제 “통일이 독립이다”라고 선언하는 안중근 의사(1879~1910)와 마주할 시간이다. 안 의사의 불꽃 같은 생애를 조명하는 특별전은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안 의사의 정신적 유산을 통해 미래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전시 기획입니다.” 안중근을 ‘통일지사’로 재해석한 전시가 신선하다. 70대 노인과 20대의 젊은 여성이 안 의사가 아우 안공근을 만나는 장면을 촬영한 대형 사진 앞에 서 있다. 그 옆에서 의사가 열거한 이토 히로부미(1941~1909)의 죄목 15가지를 살펴본다.
하얼빈 거사 이후 옥중에서 안 의사가 쓴 유묵은 언제 봐도 가슴이 먹먹하다. 독립과 평화는 하나라는 안중근의 철학이 담긴 ‘동양평화론’ 원고를 살펴본다. ‘장탄일성선조일본(長歎一聲先弔日本)’이란 글귀에 담긴 장군의 의기가 붓글씨의 획처럼 굳세다. 순국 직전에 적장에게 휘호한 이 놀라운 유묵은 일제의 종말을 예고했기에 더욱 울림이 크다.
‘독립(獨立)’이란 두 글자에 담긴 의사의 꿈을 그려보다 을사오적으로 악명 높은 친일파 이완용이 멋을 부려 쓴 글씨를 살펴본다. 명성황후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격동의 시대를 웅변하는 유물이기에 눈여겨본다. 화가 구본웅의 그림 ‘해방(解放)’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경기도박물관 1층 기증실을 찾으면 안중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통일이 독립이다!”
경기도박물관 개관 30주년 기념 특별전《성파선예 性坡禪藝 : 성파스님의 예술세계》개막식 당시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성파스님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다”
‘성파선예(性坡禪藝): 성파 스님의 예술세계’가 경기도박물관 개관 30주년 기념 특별전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옻칠의 아름답고 오묘한 세계가 풍성하게 펼쳐진다. 눈이 번쩍 뜨이게 할 만큼 놀라운 풍경이다. 전시실 입구에서 마주한 풍경이 장관이다. 옻을 염색한 천이 천장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작가가 여든이 넘은 고승이라는 사실에 다시 놀란다. 전시실을 둘러보면 즐겁고 평안한 생명의 기운이 가득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경기도박물관 개관 30주년 기념 특별전 《성파선예 性坡禪藝 : 성파스님의 예술세계》를 찾은 시민들이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나와 너, 사람과 사물을 구분하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나로 연결돼 있고 평등합니다.” 팔순의 작가는 옻칠 염색, 도자 불상, 도자 대장경판 등 수행과 예술이 하나로 만난 작품 150여점에서 ‘나와 남, 인간과 사물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평등하다’는 깨달음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5월31일까지 경기도박물관 지하 1층 전시마루를 찾으면 고승이 건네는 순수예술의 즐거움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다.
경기도 근현대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연표들. 윤원규기자
■ 서른 해를 돌아보고 앞으로 내딛는 한걸음
‘여기가 경기!’라는 구호는 경기도박물관에 오면 천년 경기 역사문화의 정수를 볼 수 있다는 다짐이 담겨 있다. 올해 펼치는 사업은 어떤 내용일까. 박본수 관장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경기도박물관의 성실한 준비에 기대한다. “경기도박물관은 1천400만 경기도민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입니다.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최선을 다해 박물관을 찾도록 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6월에 개관 30주년 기념전으로 기증특별전과 아카이브 특별전을 엽니다. 경기도박물관 30년 활동상을 조명하는 아카이브 전시와 ‘기증’에 얽힌 이야기와 유물을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10월에 복식특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화조문자수스란치마’ 실물과 재현품을 최초 공개하며 유물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교육체험프로그램은 늘 인기가 많다. 발굴체험교실 ‘선사인의 발명품’은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뮤지엄아트 ‘여기가 경기’, 인문학 강좌 ‘박물관 대학’ 등 풍성하다. 문화 나눔 교육도 도민의 호응이 높다. ‘찾아가는 경기도박물관’은 초등학생과 장애인, 어르신을 향해 달려가는 프로그램이다. ‘박물관 민화학교’와 ‘박물관 규방공예학교’도 마찬가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경기도인재개발원과 협력해 예비 공직자들에게 경기도박물관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으로 ‘여기가 경기’다. 경기도 공무원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주는 소중한 기획으로 주목받고 있다.
야외전시장에서는 다양한 문인석 등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 경기도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박물관
“현재 경기도박물관의 소장품 중 기증 유물은 약 50%에 달하며 박물관의 설립 모태가 됐을 뿐 아니라 소장품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도와 관련한 유물을 확보하고 보존과 전승을 위해 노력해 경기도 대표 박물관의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경기도박물관은 1996년 개관한 이래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유물을 수집・보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박본수 관장이 개관 30주년을 맞은 경기도박물관의 바람을 들려준다. “1천400만 경기도민이 즐겨 찾고 오래 머무는 박물관, 도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도민의 박물관을 추구합니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