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며칠 뒤 3월 10일,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이 본격 시행된다. 입법 단계에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명분이 강조됐지만, 시행을 앞둔 지금 현장의 기대보다 우려가 더 크다. 입법을 주도한 정치권은 노란봉투법을 하청 노동자가 원청 사용자와 실질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여는 '격차 해소법'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법적 교섭권의 확장과 제도적 소통의 구축을 동일시한 발상이다. 만약 목적이 원·하청간 실질적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데 있다면, 노조법을 개정할 사안이 아니라, 현행 근로자참여법상 원청 사업장내 대화 의무를 하청까지 확대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격차 해소라는 이름과 달리 동법은 원·하청간 이해조정을 사회적 합의의 영역으로 끌어내지 못한 채 개별 사업장에 전가하고 있다.
개정 노조법에 따라 산업안전이나 근로환경과 같은 의제에서 단체교섭이 이뤄질 경우 원·하청 간 근로조건 격차를 일부 줄일 수는 있겠지만, 교섭이 임금 격차를 실질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은 낮다. 정부의 행정지침에서는 임금은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노조가 기대하는 핵심은 결국 임금과 성과급 문제라서 상호충돌하고 있다. 개정법은 임금 격차를 어떻게, 어느 수준까지, 어떤 방식으로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예컨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40%에 이른다는 현실을 보자.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하청 임금을 매년 10% 이상 인상하는 동시에, 원청 노조의 임금은 상당 기간 사실상 동결에 가까운 절제가 필요하다. 고물가와 불확실성의 시대에 어느 노조가 자신의 이해를 희생하며 임금 동결을 감내하겠는가. 실제로 개정 노조법 시행을 앞두고 원·하청 노조 간 이른바 '노노 갈등'은 이미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최근 정규직은 A 상급노총, 하청 비정규직은 B 상급노총에 소속된 한 전력 관련 공기업에서 벌어진 원·하청 노조 간 충돌은 노조법 개정의 긴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청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화 하면 정규직 인원이 늘어나니 성과급 배분 등에서 기존 정규직 조합원의 몫이 줄어든다는 현실적 이해관계가 작동한 것이다. 노동 격차 해소를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하청 노동자의 지위 개선을 반대하는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런 구조에서 법으로 교섭만 강제하는 것은 격차 해소가 아니라 노조 간 이해 충돌을 제도적으로 고착화 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개정 행정지침에서 원·하청 간 창구단일화를 초기부터 원천분리를 허용한 점은 정부의 노란봉투법의 입법취지를 포기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격차 해소가 법의 진정한 목적이었다면, 원·하청을 갈라 각자 교섭하게 할 것이 아니라 기업의 몫과 원청 노조의 몫을 덜어서 하청 노조를 지원하는 방식의 원·하청 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를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개정 노동법, 시행령과 행정지침은 원·하청 노조는 분리교섭을 공식화 하고 하청 노조들끼리도 개별교섭을 할 가능성이 커져서 노사관계 파편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원·하청 격차 해소라는 본래의 정책 목표는 사라지고, 오히려 강성 노조의 조직 기반만 확대되어 전국단위 최대 조직으로의 재편 가능성만 키우는 결과를 낳고 있다.
AI와 로봇 도입으로 기업의 비용 구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노사관계 갈등비용까지 현장에 전가한다면, 그 부담은 경제와 기업에 돌아온다. 대혼돈의 노사 및 노노 관계 속에서 합리적 노조의 설 자리는 줄어들고, 강성 노조의 활동만 확장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갈등을 미사여구로 포장하는 입법행정이 아니라, 노사정이 책임을 분담하고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자율적 규범을 구축하기 위한 실질적 사회적 대화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개정은 격차 해소가 아닌, 구조적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계기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