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GTC 2026의 '스타'는 단연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이었다. 17일 오후 젠슨 황은 삼성전자의 전시부스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삼성 관계자를 비롯한 한국 기자들, 컴퓨터 관계자들 수십 명이 젠슨 황을 기다렸다. 몇명은 젠슨 황의 트레이드 마크인 가죽 점퍼를 입고 있었다. 젠슨 황은 약속된 시간보다 한 시간 이상 늦게 나타났다. 그 전에 방문한 부스마다 젠슨 황을 향한 사인과 악수 요청, 셀카 요청이 줄을 이으면서 시간이 점점 지체됐기 때문이다. 이날 저녁, 엔비디아 주최의 리셉션장에서는 젠슨 황이 오기 전부터 '셀카와 사진 요청 금지' 안내가 연이어 방송되었다. 열 시 가까이 되어 리셉션장에 나타난 젠슨 황에 대한 관계자들의 환호가 다시 한 번 이어졌다.
컴퓨터 업계는 왜 젠슨 황에게 열광하는가. 그는 컴퓨터 산업을 리드하는 사업가일 뿐만 아니라 컴퓨터의 발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혁명가이기 때문이다. 젠슨 황은 컴퓨터 산업의 선구자들인 알란 튜링, 존 폰 노이만, 세이모어 크레이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다. 앞의 세 사람은 걸출한 과학자 또는 뛰어난 엔지니어였다. 젠슨 황은 뛰어난 엔지니어일 뿐만 아니라 탁월한 사업가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각광받기 전까지 컴퓨터는 그저 '빠른 계산기'로 여겨졌다. 그러나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발전이 결합된 현재, 컴퓨터의 본질은 조금 달라졌다. 이제 컴퓨터의 진짜 성능은 계산 속도가 아니라 '데이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흐르게 만드는가'에 달려 있다. 즉, 연산능력보다는 데이터 흐름을 설계하는 능력에서 컴퓨터의 성능이 결정된다. 컴퓨터는 숫자를 처리하는 기계를 넘어 데이터를 조직하고 순환시키는 시스템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컴퓨터의 선구자인 튜링과 폰 노이만은 각각 계산 가능성 여부와 컴퓨터의 기본 구조를 정립함으로써 현대 컴퓨터의 틀을 만들었다. 이들의 목표는 더 빠른 계산이 가능한 범용의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다음 단계에서 등장한 인물이 최고의 엔지니어 세이모어 크레이다. 메모리와 연산 장치 사이의 병목을 줄이고, 긴 데이터 배열을 연속 처리하는 크레이의 방식은 여전히 슈퍼컴퓨팅의 핵심 원리다. "성능의 본질은 데이터 이동"이라는 크레이의 통찰은 이후 수십 년간 컴퓨터 설계의 방향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었다.
이 흐름이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엔비디아 GTC 2026에서 젠슨 황은 데이터센터를 'AI의 공장'으로 정의하며 컴퓨팅의 역할 변화를 강조했다. '컴퓨터는 계산 기계가 아니라 데이터 흐름을 통해 지식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 과학 담당 다리오 길 차관은 미래의 과학 발전은 고성능컴퓨팅, AI, 양자컴퓨팅의 결합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컴퓨팅 패러다임이 연결되며 더 복잡하고 거대한 데이터 흐름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젠슨 황은 크레이와 닮아 있으면서도 다르다. 크레이가 과학 데이터를 흐르게 하는 최고의 컴퓨터를 만들었다면, 젠슨 황은 이를 산업 규모의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데에 집중한다. 컴퓨팅의 관점에서 보자면, 과거에는 개별 시스템의 속도가 중요했다. 쉽게 말해 얼마나 빨리 계산을 해내는가가 관건이었다. 오늘날에는 수천~수십만 개의 CPU, GPU, 네트워크가 연결된 인프라가 핵심이다. 속도가 아니라 데이터의 흐름에 의해 컴퓨터의 성능이 결정된다. 컴퓨터는 '계산 장치'에서 '데이터 흐름을 설계하는 시스템'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 흐름은 이제 슈퍼컴퓨터와 AI, 양자컴퓨터가 모두 연결되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미래의 컴퓨터는 더 거대한 지능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될 것이다. 이는 곧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