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법률사무소 대표
조선 8도가 조선 13도로 개편된 것은 1896년의 일이다. 중앙정부 - 도 - 군이라는 3단계 정부체제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분단과 건국을 거치며 현재까지 그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한반도에 철도나 자동차가 등장하기도 전이며 기껏해야 말이 교통수단이었던 시대의 행정구역의 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그 후 생겨난 광역시는 기존의 광역지자체를 더 잘게 나누는 결과를 초래했다. 재미있는 것은 북한지역이 한국의 광역지자체 숫자를 의식해 양강도, 자강도를 추가하고 황해도를 분도하며, 한국의 광역시에 해당하는 특별시를 늘여 왔다는 것이다. 이는 통일과정에서 광역지자체의 수로 대의기관의 분배가 결정될 것을 염두에 둔 듯하다. 하여간, 남북 공히 십수개의 광역지자체가 분립하고 있다.
중국 서부의 대도시인 충칭시의 면적은 남한 면적의 82%에 육박한다. 이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남한 전체를 하나의 도시국가로 운영하는 것이 가능함을 암시한다. 대학시절 한국경제론을 강의했던 교수님은 서울의 2호선이 순환선으로서 서울을 하나의 동선으로 묶은 것처럼 남한 전체를 아우르는 순환선으로서의 고속철을 만들어 남한을 하나의 도시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갈파한 적이 있었다. 지금의 고속철은 그의 예언이 허언이 아닐 수 있음을 웅변한다.
어디든 고속철로 2~3시간이면 갈 수 있는 시대에 분열된 지자체들이 지역이기주의로 경쟁하여 단일한 인프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이는 한심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지자체 통합은 유의미하다. 그런데 이 통합을 이끌어낸 것이 해당 지역의 자생적인 자립의 흐름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약속한 교부금이라는 것은 역설적이다.
지방이 힘이 있기 위해서는 재정자립이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징세권이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양되어야 한다. 현재 지방은 주민세, 재산세 등 극히 일부의 세목에만 징세권이 있다. 미국 50개주의 선의의 경쟁은 각 주가 소득세, 법인세, 소비세 등 본격적인 세목에 관해 징세권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각 주는 기업과 노동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조세를 포함한 정책 세트를 만들어 경쟁한다. 캘리포니아가 제공하는 교육여건, 지정학적 위치 등에 이끌린 IT 기업들이 보다 매력적인 조세를 제시한 텍사스로 몰려드는 것이 좋은 예이다. 한국도 각 지자체가 기업과 일자리를 유치할 수 있는 정책을 결정하고 징세를 할 수 있는 대폭적인 권한 이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