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영화 ‘호퍼스’]
비버가 된 소녀…픽사판 ‘아바타’
분열의 시대 ‘함께’란 의미 되새겨
애니메이션 ‘호퍼스’의 스틸컷으로 비버가 된 메이블(왼쪽)과 왕 조지. 사진 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장난감에게 의식이 있다면?’(토이 스토리), ‘감정이 캐릭터라면 어떤 모습일까?’(인사이드 아웃), ‘죽은 자들의 세계가 존재한다면?’(코코)
‘만약’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해 낯선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관객과 함께 하는 픽사의 방식이다. 픽사가 추구하는 세계관이 폭넓은 공감을 얻으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비결이기도 하다. 픽사가 이번에 내놓는 ‘호퍼스’ 역시 ‘사람의 의식을 동물에게 이식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시대정신과 동시대적 감수성을 화두로 던져왔던 픽사의 방식 그대로다.
애니메이션 ‘호퍼스’의 스틸컷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소녀 메이블. 사진 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호퍼스’는 디즈니·픽사판 ‘아바타’로 불리는 올해 최고 기대작 중 하나로, 동물을 사랑하는 소녀 메이블과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사고를 쳐서 혼이 날 때마다 할머니는 메이블을 숲속 연못으로 데려가 “위대한 것 중 일부라고 느끼면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고 다독인다. 하지만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숲속 연못은 재선을 노리는 제리 시장의 순환 고속도로 건설 계획으로 없어질 위기에 처한다.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메이블은 사람의 의식을 동물 로봇에 이식하는 ‘호핑’ 기술을 통해 로봇 비버가 되면서 동물의 세계로 잠입한다.
그가 경험한 동물의 세계는 놀랍기만 하다. 약육강식이 아닌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존의 법칙을 지키며 자연의 법칙 즉 순리대로 살아가는 공동체였던 것. 가장 놀라운 주인공은 동물의 왕 조지다. “다정하라” “먹을 땐 먹어라” “우린 함께다”라는 ‘연못의 법칙’을 지키며 따뜻한 리더십으로 동물들을 통솔한다. 독선과 아집을 카리스마인 양 포장해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는 현실판 리더들과 대조를 이루며 울림을 전한다.
애니메이션 ‘호퍼스’의 스틸컷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소녀 메이블. 사진 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번 작품에서는 스며들듯 메시지를 전하는 픽사의 스토리텔링이 한층 더 진화했다. ‘자연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할머니는 자연을, 메이블은 순수한 젊은 세대를 각각 상징한다. “다정하게 대하라” “동물의 집도 사람의 집도 모두 연결돼 있다” 등 대사는 극단으로 치닫는 분열의 시대에 공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동시에 급격한 기술 발전 속에서 소중한 것을 잃고 있는 이 시대를 향해서도 묵직한 경고를 보낸다. 재앙 수준의 기후위기는 개발의 논리로 파괴된 자연이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다. 특히 ‘호핑’은 인공지능(AI) 기술의 급격한 발전 속에서 윤리적 문제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애니메이션 ‘호퍼스’의 스틸컷. 사진 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메시지는 진지하지만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대사에선 무해한 웃음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픽사 특유의 상상력이 집약된,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충만한 비주얼도 기대 이상이다. 생생하고 따뜻한 자연 속에서 동물들은 ‘귀여움의 향연’을 펼쳐 보이며 ‘무해한 도파민’을 잔뜩 선사한다. 특히 왕 조지의 구령에 맞춰 동물들이 춤을 추는 장면을 비롯해 위험에 처한 마을을 구하기 위해 동물들이 힘을 모으는 장면 등은 픽사의 감성과 기술이 집약된 하이라이트다. 픽사 서사의 또 다른 특징인 ‘감정의 롤러코스터’ 역시 스릴 넘치게 펼쳐져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4일 개봉, 10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