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인 문화부 미술전문기자
1000만 영화시대에 맞춰 100만 전시 시대가 올 듯하다. 폐위된 단종이 영월 유배지 청령포에서 촌장 엄흥도와 교감하는 이야기를 그린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지난달 4일 개봉 이후 누적 관객이 960만 명이다. 서울공예박물관이 지난해 말 개막한 ‘패션 아트의 선구자’ 금기숙 기증 특별전은 연일 오픈런을 이어가 4일 기준 누적 관객 74만 3000명을 넘겼다. 하루 평균 1만 2000명, 많게는 하루 3만 명 이상이 다녀간 전시라 이런 추세라면 2008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100일 동안 82만 명이 다녀간 ‘불멸의 화가-반 고흐’전이 세운 역대 단일 전시 최다 관객 기록을 너끈히 깰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바 ‘국민 전시’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축하의 폭죽을 터뜨리기 전에 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은 없는지 점검할 시점이기도 하다. 지난달 한화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뉴욕 현지 미술 전시 공간 ‘스페이스 제로원’에서 발생한 사고는 반면교사로 삼기 충분하다. 이곳에서 한국계 미국 작가 마이클 주의 개인전이 열렸는데 전시 개막 행사 도중 설치된 조각 작품이 무너지며 관람객 4명이 다쳐 응급실로 이송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시장에서 작품이 파손된 것만도 기삿거리인데 그 여파로 관람객이 여러 명 부상을 입었다는 것은 더 심각한 뉴스였다. 서울경제신문이 이 내용을 보도(2월 24일자)한 후 미국 미술 전문 매체 아트뉴스 등이 이를 비중 있게 인용하기도 했다.
파손된 작품은 작가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인 ‘위대함의 염도(Saltiness of Greatness)’로 소금을 분해해 벽돌 형태로 만든 ‘압축 소금 블록’을 높이 쌓아 올리고 그 위쪽 선반에서 인조 땀 성격의 식염수가 떨어지는 설치 작업이다. 약 4m 높이로 소금 벽돌을 쌓은 것이었지만 작품 앞에는 별도의 접근 제한 장치가 없었고 바닥에 흰색 안전선만 표시돼 있었다. 작품이 무너지며 돌처럼 압축된 소금덩이가 떨어져 깨졌고 그로 인해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한화문화재단 측은 “관람객의 부주의로 작품이 무너졌다”는 점을 강조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인상을 줘 안타까웠다. 부상자 일부는 발가락 미세골절 진단을 받기도 했지만 한화문화재단 측은 ‘경미한 부상’이라는 입장이었다. 9·11사태를 경험한 뉴요커들에게는 높고 육중한 것이 무너지는 장면이 주는 트라우마가 있고 이태원 사태를 겪은 우리는 인파가 밀집한 곳에서의 안전사고에 대한 노이로제가 있다.
미술관에서 드물지만 작품으로 인한 부상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2018년 포르투갈 세랄베스미술관이 선보인 아니시 카푸어의 2.5m 깊이의 구멍 설치 작품에 한 관람객이 실제 구멍이 아닌 평면으로 ‘착시’를 일으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2006년 영국 테이트모던의 터바인홀에 설치된 카르스텐 횔러의 거대한 미끄럼틀 형태의 작품을 이용하던 관객이 부상을 당해 미술관을 상대로 여러 건의 소송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사고들은 체험자 본인이 부상을 입었던 사례지만 이번 사고는 미술관의 안전관리 부족과 관객의 부주의로 여러 명의 제3자들이 다쳤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게다가 이들 미술관은 사고 후 공식 입장을 통해 사고 방지를 위한 계획을 밝히는 등 책임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림 걸고 조각 세울 곳이 있다고 해서 모든 공간이 미술관·갤러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품 설치와 관리에 대한 전문 인력의 치밀한 운영 계획에는 여러 변수들, 특히 작품의 보존과 관객의 안전에 대한 정교한 매뉴얼이 필요하다. 작품이 물리력에 의해 무너질 가능성이 있을 경우 미술관 측은 작품 접근 방지 설치물인 인제책(人制柵)을 둬야 한다. 변경희 뉴욕주립 패션인스티튜트오브테크놀로지(FIT) 교수는 “책임있는 뮤지엄에는 안전심사위원회(safety review board) 등이 있어 작가의 창의성을 대변하는 큐레이터의 의견과 균형점을 찾고자 노력한다”면서 “미술관 운영진은 관객이나 어린이들의 예상치 못한 행동까지도 사전에 예상해보고 대비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문화재단은 올해 퐁피두서울 개관을 준비 중이다. 기대감이 큰 만큼 많은 관람객이 몰릴 것을 예견하기에 이번 사고가 단단한 ‘예방주사’가 되었기를 바란다. 이는 우리 미술계 전체를 향한 경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