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도심 화재안전 구멍
중구·종로구 건물서 화재 잇따라
올 들어 서울숙박업소 16건 달해
좁은 골목·종이박스 대량 보관 등
화재 발생 땐 피해 일파만파 커져
“노후상권 안전 점검 재설계해야”
14일 오후 6시 10분께 서울 중구 소공동의 한 7층짜리 빌딩 3층에서 불이 났다. 화재가 시작된 곳은 게스트하우스인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최근 서울 구도심 상업용 건물에서 잇달아 화재가 발생하면서 이들 지역의 화재 취약성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도심 숙박시설과 노후 상권에 대한 안전 점검을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 10분께 서울 중구 소공동의 한 7층 규모 복합 건축물 3층 캡슐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50대 일본인 여성 등 3명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고 7명은 경상을 입었다. 화재로 120명의 이재민도 발생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15일 합동 감식을 벌여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이번 화재가 난 캡슐 호텔은 명동과 광화문 모두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반경 2㎞ 안에 유사한 형태의 캡슐 호텔이 5곳가량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캡슐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는 구조상 여러 사람이 밀집해 머무는 데다 여행객들의 짐이 복도와 공용 공간에 놓이기 쉬워 화재 발생 시 대피 동선 확보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14일까지 서울 소재 숙박업소에서 총 16건의 화재가 발생해 6명의 인명 피해가 있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한 6건 대비 10건이 늘어난 수준이다. 16건 중 3건이 게스트하우스가 포함된 ‘기타 숙박시설’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일 화재가 발생한 종로구 봉익동 귀금속거리 금은방 건물 인근 골목. 고압가스 보관함과 에어컨 실외기가 밀집해있다. 남소정 견습기자
최근 서울 소재 구도심 상업용 건물에서 잇따라 불이 나면서 이들 지역에 대한 화재 예방과 위험 관리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북창동의 한 상가 건물 2층 식당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 당국이 출동했으며 이달 5일에는 서울 종로구 봉익동 귀금속 거리의 한 금은방 건물 2층에서 가스통 폭발 추정 화재가 있었다.
6일 방문한 서울 종로구와 중구 등 구도심에는 화재 위험성에 노출된 노후 건물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1960~1970년대 형성된 종로·을지로 일대 상권은 골목 자체가 좁은 데다 실외기와 가스통, 거미줄처럼 얽힌 전선까지 뒤엉켜 있어 불씨 하나가 대형 참사로 번질 수 있는 구조였다. 이달 초 화재가 발생한 금은방 건물은 건축물대장상 1970년 승인된 노후 건물이었으며 금은방 도보 1분 거리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골목이 있어 대피도 어려워 보였다. 실외기 20여 대와 LPG 가스통, 문이 열린 고압가스 보관함까지 밀집해 있는 모습이었다. 설치 시기와 관리 주체가 제각각이라 보관 방식도 들쑥날쑥이었다.
12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인근의 한 건물. 건물 외벽에 에어컨 실외기가 빽빽하게 설치돼있다. 남소정 견습기자
다른 구도심 골목들도 마찬가지다. 청계천 세운상가 공구 거리 일대는 먼지가 쌓여 갈색으로 변한 실외기 수십 대가 천장에 줄지어 매달려 있었으며 일부 점포에서는 천장에 가연성 물질인 종이박스를 대량 보관하는 모습도 확인됐다. 남대문시장 일대에는 건물 외벽에 실외기 100여 대가 빼곡히 달린 10층 건물이 있는데 이는 1969년 준공된 노후 건물이라 옥상 하중이 부족해 실외기를 외벽에 달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구도심 안전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 위험을 키우는 핵심 요인은 실외기와 가스통 같은 위험 물질의 밀집”이라고 강조했다. 김시국 호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별도의 실외기실을 갖춘 아파트와 달리 1960~1970년대 형성된 종로·중구 상권 일대는 노후 전선과 밀집한 실외기 등 열이 축적되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소화기 비치를 늘리는 것은 물론 실외기와 전선을 정기 점검하는 관리 인력 배치, 안내문 설치 같은 기본적인 조치만으로도 화재 예방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