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5A31 담수화시설
역사적으로 전쟁에서 적국의 식수를 차단하거나 더럽혀 승기를 잡으려 했던 사례는 적지 않게 목격된다. 626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때 페르시아 연합군은 로마제국의 식수 공급원인 발렌스 수도교를 파괴해 굴복시키려 했다. 1155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북이탈리아 토르토나를 포위 공격할 때 우물에 시체를 던져 물을 오염시키는 전략으로 항복을 이끌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민간인 생명줄까지 공격하는 전쟁범죄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수자원에 폭탄과 독극물을 뿌리고 물을 긷던 어린이들을 살해하는 등 최근 5년간에만 250여 차례의 ‘물 공격’을 자행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최근 이란은 자국의 해수 담수화 시설이 공격받자 애꿎은 바레인과 아랍에미리트(UAE)의 담수화 시설을 공격했다. 민간인을 겨냥한 비대칭적 전술의 일환으로 미국·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할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인접국으로 사태를 악화시켜 휴전 압박을 높이려는 의도다. 대다수 중동 국가들은 바닷물을 담수로 바꾸는 담수화 시설에 식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강과 저수지·지하수 등에서 물을 얻고 있고 담수화 시설 비중이 3%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2010년 “중동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자원은 석유가 아닌 물”이라며 “담수화 시설에 대한 공격은 여러 걸프만 국가에서 국가적 위기를 촉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1990~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퇴각하면서 담수화 시설을 파괴하고 취수관을 오염시키자 쿠웨이트는 오랜 기간 물을 수입해야 했다. 게다가 걸프 국가들은 식량의 80~90%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식량 안보가 위협받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물 스트레스 국가’인 데다 식량자급률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동북아시아 안보 지형과 글로벌 공급망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중동 사태는 여러모로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