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 '섬티아고 12사도 순례길'
신안 앞바다 5개 작은 섬 이어
섬 곳곳 예수 12제자 이름 딴 예
대기점도 '베드로의 집’을 시작으로
마지막은 소악도 옆 외딴섬 ‘유다의 집’
성경 스토리 간직한 건축물 인상적
김윤환·이원석·장 미셸…예술가 손 거쳐
갤러리 같은 건축미에 발길 멈춰
자은도 씨원리조트 2박3일 패키지
조식·석식에 와이너리 투어까지 포함
순례길 여행 땐 런치박스 서비스도
쫓기는 일정 없이 64시간 여유 만끽
【신안(전남)=정순민 기자】"누구나 걷다 보면 인생을 배우게 된다."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직접 걸은 뒤 펴낸 '순례(The Pilgrimage)'라는 책에 이렇게 썼다. 그런가 하면 스스로를 '소심하고 겁많고 까탈스러운 여자'라고 평한 도보여행가 김남희는 산티아고 길을 "나를 비우고 나를 채우는 길"이라고 했다.
스페인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면, 국내에는 '섬티아고 12사도 순례길'이 있다. 섬티아고는 전남 신안군이 지난 2020년 조성한 걷기길로, 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진섬·딴섬 등 신안 앞바다에 보석처럼 박힌 5개 작은 섬을 연결해 만들었다. 여기에 '12사도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이곳에 예수의 12제자 이름을 딴 12개의 예이 있어서다.
마침 신안군 자은도에 있는 라마다프라자호텔 & 씨원리조트가 새봄을 맞아 '섬티아고 12사도 순례길 2박3일 패키지'를 내놨다. 이번 패키지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파격적인 투숙 시간이다. 통상 2박3일 일정은 체크인과 체크아웃 시간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여행 시간이 부족하게 마련이지만, 이번 패키지는 첫날 오전 6시에 얼리 체크인을 하고 셋째날 밤 10시에 레이트 체크아웃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해 '2박3일 64시간 스테이'가 가능하게 했다.
게다가 이번 패키지에는 객실 2박 외에도 조식 2회(2인), 석식 바우처 5만원(1매), 세계 각국 와인 15종을 경험할 수 있는 와이너리 투어 2회(2인), 순례길을 걸으며 즐길 수 있는 런치박스(2인) 등이 포함돼 있어 12사도 순례길을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다.
전남 신안 씨원리조트
이 패키지를 이용한다면 섬티아고 순례길 걷기는 둘째날 아침 일찍 시작하는 것이 가장 알맞다. 리조트가 있는 자은도에서 12사도 순례길 시작점이 있는 대기점도까지는 배편을 이용해야 하는데, 오전 6시50분이나 오전 9시40분 송공여객터미널을 출발하는 배를 타는 것이 좋다.
대기점도 선착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여행객을 맞이하는 첫번째 예이 '건강의 집'으로 명명된 베드로의 집(①)이다. 김윤환 작가의 작품인 이 건축물은 그리스 산토리니에서나 봄직한 푸른 둥근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어 이국적인 감성을 자아낸다. 흰색 회벽으로 만들어진 예 앞에는 순례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종이 있어 예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기에도 좋다.
방파제 겸 선착장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약 600m 지점에 두번째 예 안드레아의 집(②)이 우뚝 서있다. 지붕 위 첨탑에 두 마리의 고양이가 앉아있는 이 예은 이원석 작가의 작품으로, 신안군이 붙인 이름은 '생각하는 집'이다. 또 예 내부에는 도자기로 만든 십자가가 벽 속에 박혀있어 성스러운 느낌을 준다.
안드레아의 집 너머 연못을 지나면 '그리움의 집' 야고보 예(③)이 나온다. 벽면에 뚫린 다섯 개의 구멍을 통해 은은하게 들어오는 빛이 인상적인 이곳을 되돌아 나오면 돌담이 예쁜 집들과 폐교를 만나게 되고, 이어서 '생명평화의 집' 요한의 집(④)을 만나게 된다. 하얀 원형의 외곽에 지붕과 창을 스테인드 그라스로 장식한 이 건물 앞에는 아름다운 염소 조각이 있어 눈길을 끈다.
다음은 장 미셸 작가가 지은 '행복의 집' 필립의 집(⑤)이다. 섬과 섬 사이를 잇는 노둣길 입구에 서있는 이 집은 뾰족한 철탑 끝에 물고기 조형물이 달려있어 이곳이 바다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섬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노둣길이란 섬과 섬 사이 갯벌에 돌을 쌓아 만든 일종의 징검다리로 하루에 두 번씩 물에 잠겨 신비로움을 더한다.
여섯번째 바르톨로메오의 집(⑥)은 물 위에 떠있는 예이다. '감사의 집'으로도 불리는 이 작은 예을 지나면 소기점도와 소악도를 연결하는 길 끝에서 '인연의 집' 토마스의 집(⑦)과 만난다. 푸른 초원 위에 단정한 사각형 형태로 지어진 이 예 왼쪽 벽면엔 오병이어(五餠二魚) 부조가 새겨져 있어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기쁨의 집'으로 명명된 마태오의 집(⑧)은 지역의 상징인 갯벌 위에 우뚝 서있다. 러시아 정교회 건축을 연상시키는 황금색 양파 지붕이 인상적인 이 예을 지나 소악도와 진섬으로 들어서면 작은 야고보의 집(⑨)과 유다 타대오의 집(⑩), 그리고 시몬의 집(⑪)이 순례자를 기다린다. 일명 '소원의 집'과 '칭찬의 집', 그리고 '사랑의 집'이다.
순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은 '지혜의 집' 가롯 유다의 집(⑫)이다. 예수를 팔아넘긴 가롯 유다의 이름을 딴 이 예은 모래 해변을 건너야 닿을 수 있는 작은 무인도, 딴섬에 외로이 서 있다. 외형적으로는 12개 예 가운데 가장 종교적 색채가 강해 마음이 절로 경건해진다.
돌아올 땐 처음 배를 내렸던 대기점도가 아니라 소악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된다. 소악도에서 송공여객터미널까지 가는 배는 매일 오후 1시56분과 오후 4시39분 두 차례 있다. 원활한 발권을 위해선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하며, 승선권 발권은 현장에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