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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 수려… 천하절승 '長江' 유비의 죽음, 이백의 환희가 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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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1) 장강삼협

역사·문학·전설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중국의 서사가 굽이쳐 흐르는 '장강삼협'

유비가 최후를 맞이한 탁고의 현장 백제성

유형의 짐을 벗고 새 출발을 詩로 푼 이백

아침엔 구름, 저녁엔 비가 되는 무산 신녀

중국의 역사와 문학, 신화와 전설을 품고 있는 장강(양쯔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사진은 장강삼협(長江三峽)의 상류 구간에 해당하는 구당협. 하나투어 제공

EBS '세계테마기행'으로 유명한 김성곤 방송통신대 중문학과 교수가 쓰는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이 오늘(3월 27일)부터 연재됩니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자에 게재되는 김 교수의 기행문은 애독자 여러분을 중국의 역사와 자연, 그리고 문학 속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첫회는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 장강(長江)의 백미 '삼협(三峽)'입니다.

장강 서릉협

장강삼협은 중경 봉절(奉節)의 백제성(白帝城)에서 호북 의창(宜昌)의 남진관(南津關)에 이르는 약 190여㎞ 협곡 구간을 이른다. 상류부터 구당협, 무협, 서릉협이 차례로 이어진다. 높은 산봉우리들이 강물을 사이에 두고 병풍처럼 치솟고, 그 사이로 장강의 물길이 굽이쳐 흐른다. 풍광만으로도 천하 절승이라 할만하지만, 이곳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협곡마다 역사와 문학, 신화와 전설이 함께 서려 있기 때문이다. 유비가 최후를 맞은 백제성, 목과 몸이 따로 묻혔다 전하는 장비의 운양(雲陽) 사당,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된다는 무산(巫山) 신녀의 이야기가 모두 이 물길을 따라 이어진다. 장강삼협은 단순한 명승지가 아니라 중국인의 역사 감각과 시적 상상력이 함께 흐르는 거대한 서사의 현장이다.

장강 무협

백제성 초입에 있는 시인 이백 동상

■'삼국지'의 비극이 서린 자리, 백제성

삼협이 시작되는 구당협 초입에 봉절 백제성이 있다. 삼협댐 건설 뒤 수위가 높아져 지금은 섬처럼 보이지만, 본래는 강가의 군사 요충지였다. 무엇보다 이곳은 삼국지의 비극이 서린 자리다. 오나라 정벌에 나섰다가 대패한 유비가 이곳으로 물러나 병석에 누웠고, 마침내 제갈량을 불러 어린 아들 유선(劉禪)을 부탁한 뒤 눈을 감았다. 이른바 탁고(託孤)의 현장이다. 천하를 다투던 영웅도 끝내는 한낱 병든 인간으로 돌아가 자식을 부탁하고 떠난다. 백제성에 오르면 먼저 장대한 풍광보다 인간사의 허망함이 가슴에 와닿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제성은 비극의 성인 동시에 시의 성이기도 하다. 수많은 시인묵객이 이곳에 들러 절창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 이백(701~762)의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이다.

아침 일찍 오색구름 사이 백제성을 떠나

천 리 강릉 길을 하루 만에 돌아가네

양안의 원숭이 울음은 그치지 않는데

가벼운 배는 이미 첩첩 산을 지났구나

朝辭白帝彩雲間(조사백제채운간)

千里江陵一日還(천리강릉일일환)

兩岸猿聲啼不住(양안원성제부주)

輕舟已過萬重山(경주이과만중산)

백제성에 있는 제갈량 동상과 출사표비

이 시에는 백제성의 또 다른 얼굴이 있다. 귀양길에 올랐던 이백이 이곳에서 사면 소식을 듣고 돌아가며 쓴 작품이기 때문이다. 삼협의 원숭이 울음은 본래 유배객의 눈물을 자아내는 소리였다. 예부터 "파동 삼협의 원숭이 울음은 슬퍼, 밤에 세 번 울면 눈물이 옷깃을 적신다" 하였다. 그러나 이백에게 그 울음은 더 이상 비애의 곡조가 아니었다. 오히려 귀환을 축하하는 팡파레처럼 들렸을 것이다. '가벼운 배'라는 말에는 유형의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해방감이 실려 있고, '이미 첩첩 산을 지났다'는 구절에는 절망의 협곡을 단숨에 빠져나가는 환희의 속도감이 담겨 있다. 그러니 백제성은 유비의 마지막 한숨이 서린 곳이면서, 동시에 이백의 환희가 터져 나온 곳이기도 하다. 같은 장소가 한 사람에게는 죽음의 문턱이 되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다시 살아나는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이 새삼 숙연하다.

백제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운양에는 장비묘(張飛廟)가 있다. 장비는 삼국지 속에서 늘 호탕하고 거칠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관우가 죽은 뒤 복수심에 사로잡혀 출정을 재촉하던 그는 결국 부하에게 피살되었고, 머리는 운양에 묻히고 몸은 낭중에 묻혔다고 전한다. 봉황산을 등지고 장강을 마주한 이 사당은 강을 굽어보는 자리가 장군의 위세와 잘 어울린다. 장비는 역사 속 실존 인물이면서도 민중의 상상 속에서 더욱 크게 살아남은 영웅이다. 악한 자를 미워하기를 원수 보듯 했다는 '질악여구(嫉惡如仇)'의 인물, 답답한 세상을 대신해 호쾌하게 한 주먹 날려줄 것 같은 호걸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래서 장비와 관련된 속담도 여럿 남았다. '장비가 콩나물을 먹는다'는 말은 '식은 죽 먹기'와 같이 일도 아니라는 뜻으로 쓰이고, '장비가 수를 놓는다'는 거친 겉모습 속의 뜻밖의 섬세함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예로부터 삼협을 오가는 뱃사공들은 모두 이 장비 사당에 들러 안전을 기원했는데, 그런 풍속은 지금까지 이어져 이곳 사람들은 새 차를 사면 장비 사당에 들러 예를 올리며 무사고를 빈다고 한다.

배가 다시 협곡 속으로 들어가면 삼협의 둘째 구간인 무협이 펼쳐진다. 세 협곡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곳이다. 강 양안에 무산십이봉이 차례로 이어지고, 그 가운데 가장 이름난 봉우리가 신녀봉(神女峰)이다. 구름과 안개가 자주 끼는 산세 속에서 봉우리들은 잠시 나타났다가 다시 숨어버리는데, 이런 기후 조건 속에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신화가 태어났다. 서왕모의 딸 요희(瑤姬)가 인간 세상에 내려와 우임금의 치수를 도왔고, 일이 끝난 뒤에도 무산에 머물며 백성들의 뱃길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긴 세월이 흐르며 그녀의 몸이 돌기둥이 되었으니, 그것이 곧 신녀봉이라는 이야기다.

■'운우지정'의 전설 품은 무산 신녀봉

그런데 후대로 오면 이 신화는 전국시대 송옥의 '고당부(高唐賦)'를 거치면서 애정의 전설로 다시 태어난다. 초나라 회왕이 무산에서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신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는데, 그녀는 떠나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바로 남녀 간의 사랑을 뜻하는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때부터 무협의 구름과 비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사랑과 그리움, 만남과 이별, 욕망과 상실을 불러오는 상징이 된다. 그래서 무산을 지나는 시인 치고 구름과 비를 노래하지 않은 이가 거의 없다. 이백도 '숙무산하(宿巫山下)'에서 이렇게 읊었다.

어젯밤 무산 아래에서

원숭이 울음은 꿈속에서도 길었네

비는 바람에 날려

남으로 초왕의 곁을 스치누나

昨夜巫山下(작야무산하)

猿聲夢裏長(원성몽리장)

雨色風吹去(우색풍취거)

南行拂楚王(남행불초왕)

무산에서의 비는 단순한 비가 아니다. 그것은 곧 송옥 이래의 신녀 이야기, 초왕의 꿈, 운우의 전설을 한순간에 불러내는 시적 암시다. 중당대 시인 원진(779~831)도 이 무산의 구름을 보고 "창해를 보고 나면 강물이 물이 아니듯, 무산의 구름을 보고 나면 다른 곳은 구름도 아니다"라고 했다. 한 번 무산의 구름을 보고 나면 다른 구름은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 무협의 구름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이미 사랑과 그리움의 상징으로 승화된 구름이다.

장강삼협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백제성에 이르면 영웅의 죽음과 시인의 환희가 교차하고, 운양에 이르면 민중이 사랑한 호걸 장비의 전설이 살아난다. 무협에 이르면 다시 강산은 신화와 사랑의 무대로 바뀐다. 하나의 강물 위에 역사와 문학, 비극과 낭만이 함께 흐르는 셈이다. 그래서 삼협은 눈으로만 보는 절경이 아니다. 유비의 마지막 한숨, 이백의 귀환, 장비를 향한 민중의 애정, 무산신녀를 노래한 시인들의 상상이 모두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곳이다. 배가 협곡 사이를 미끄러져 나아갈 때, 여행자는 비로소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중국의 서사 한복판을 지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김성곤 방송통신대 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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