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향한 관대함의 절반도 자신에게 허락하지 못하는 4050 가장들의 서늘한 '자기 자비'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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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화요일 밤, 무심코 열어본 온라인 쇼핑몰 앱. 장바구니에는 몇 달째 결제하지 못한 낡은 골프 장갑이나, 밑창이 닳아가는 출퇴근 구두를 대신할 신발 한 켤레가 덩그러니 담겨 있다.
아이의 새 옷이나 비싼 학원비 앞에서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카드를 내밀면서, 정작 온전히 나만을 위한 소비 앞에서는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이번 달은 카드값이 많으니 나중에 사지 뭐." 결제 버튼 위를 맴돌던 손가락은 결국 체념과 함께 창을 닫는다.
가족을 위한 지출에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자신을 위한 소비는 죄악시하는 태도. 대한민국의 4050 가장들에게 이는 너무도 익숙한 삶의 방식이자 책임감의 증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회통계와 심리학은 이를 헌신이 아닌, 중년이 저지르는 뼈아픈 오답으로 진단한다.
◆ 첫째, 데이터가 증명하는 서늘한 '자기 지우기'
가장들의 자기 방치는 단순한 체감의 문제가 아니라 통계가 증명하는 객관적 현실이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40대 가구의 소비지출 중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 연령대 중 압도적 1위다. 처분가능소득의 상당 부분이 자녀와 가족을 유지하는 데 투입된다.
반면, 가계가 어려워지거나 불확실성이 커질 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삭감되는 항목은 다름 아닌 '가구주의 오락·문화 및 의류' 지출이다. 가족의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취향과 욕망을 가장 먼저 재무제표에서 지워버리는 셈이다.
◆ 둘째, 가족에겐 한없이 너그러운 '자기 자비'의 결핍
전문가들은 이 극단적인 절제를 '자기 자비'의 부재로 설명한다. 텍사스 대학교 심리학과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 교수는 오랜 연구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타인에게 베푸는 관대함과 위로의 절반조차 스스로에게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가장들은 아내의 낡은 지갑이나 아이의 헤진 옷은 마음 아파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낡은 물건 앞에서는 "아직 쓸 만하다"며 외면한다.
나를 돌보는 행위를 이기적인 낭비로 규정하고, 모든 자원을 타인(가족)에게만 쏟아붓는 심리적 불균형이다.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이 지속적인 자기 방치는 결국 가장의 내면을 서서히 메마르게 한다.
◆ 셋째, 이자가 붙어 돌아오지 않는 '나중'이라는 환상
"대출금 좀 갚고 여유가 생기면 나중에." 가장들이 스마트폰 창을 닫으며 스스로에게 건네는 가장 흔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행동재무학과 심리학은 '유예된 행복'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막상 시간과 돈의 여유가 생겼을 때,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즐길 체력도, 잃어버린 취향을 되살릴 감각도 이미 소실되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주말에 무엇을 먹고 싶냐는 질문에 "아무거나, 애들 먹고 싶은 거"라는 대답이 자동 반사로 튀어나온다면,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나'라는 주어가 증발해버린 결과다.
월요일의 맹렬한 전투를 치르고 다시 화요일 밤을 맞이한 당신. 수많은 청구서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그 넓은 어깨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당신의 그 헌신적인 희생으로 가족의 지붕이 이토록 튼튼해졌다면, 이제는 그 지붕 아래서 당신도 함께 웃으며 온기를 나누어야 한다.
장바구니에 석 달째 묵혀둔 그 물건의 결제 버튼을 오늘 밤엔 눈 딱 감고 눌러보자.
가족의 낡은 가방을 바꿔주었을 때 느꼈던 그 따뜻한 기쁨을, 치열하게 살아온 당신 자신에게도 허락할 시간이다. 밖에서 모진 풍파를 견뎌내는 가장 든든한 방패를 광내고 수리하는 일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당신의 오늘을 조금 떼어 스스로에게 선물한다고 해서, 가족의 행복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