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병원 신경외과 박봉진 교수
한쪽 얼굴에 전기 쇼크처럼 격렬한 통증
예고없이 짧게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
씹거나 양치질 할때도 발작적으로 증상
진단 까다로워 치과부터 찾아가기 일쑤
"좁고 깊은 해부학적 구조 다루는 고난도
집도의 경험·숙련도가 무엇보다 중요해"
박봉진 경희대학교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삼차신경통의 진단과 치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강중모 기자
밥 한 술 뜨는 것, 세수하는 것, 심지어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맞는 것조차 공포가 되는 질환이 있다. 바로 '최악의 고통'이라 불리는 삼차신경통이다. 통증의 강도가 산통(産痛)보다 심해 환자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다.
9일 경희대학교병원에 따르면 경희대병원 신경외과 삼차신경통 클리닉은 국내 최초로 삼차신경통 수술 치료인 미세혈관감압술(MVD) 1000례를 돌파했다.
■정체 모를 안면 통증… '치통' 오인하기도
삼차신경통은 얼굴의 감각과 씹는 기능을 담당하는 제5번 뇌신경인 삼차신경에 이상이 발생하면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안면 신경통 질환이다.
삼차신경은 이마와 눈 주위, 뺨, 턱 등 얼굴 대부분의 감각을 뇌로 전달하고, 음식물을 씹는 저작근의 움직임에도 관여하는 중요한 신경이다.
이 신경이 뇌에서 나오는 부위에서 주변 혈관에 의해 지속적으로 눌리게 되면 신경을 보호하는 수초가 손상되고 신경이 과민해진다. 이 과정은 절연 피복이 벗겨진 전선이 서로 닿을 때 불꽃이 튀는 것과 비슷하다. 손상된 신경에서는 작은 자극에도 비정상적인 전기 신호가 과도하게 발생하며, 그 결과 얼굴 한쪽에 전기 쇼크를 맞은 듯한 매우 강렬한 통증이 순간적으로 나타난다.
통증은 수 초에서 수 분 정도 지속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으며 세수나 양치, 면도, 대화, 식사, 바람 접촉과 같은 일상적인 자극만으로도 쉽게 유발되는 것이 특징이다.
삼차신경통은 주로 얼굴 한쪽에 국한돼 나타나며,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특히 통증 자체는 짧게 지나가지만 예고 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환자들이 다음 통증을 두려워하는 '통증 공포'까지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삼차신경통은 단순한 얼굴 통증이 아니라 신경 압박으로 인해 발생하는 특징적인 전기 자극성 통증을 보이는 신경계 질환으로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박봉진 경희대학교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삼차신경통 환자 10명 중 8명은 전형적인 증상을 보이는데, 가만히 있을 때는 괜찮다가 음식물을 씹거나 양치질을 할 때, 혹은 얼굴을 건드릴 때 수초에서 1분 이내의 짧고 강한 통증이 발작적으로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진단의 어려움이다. 통증이 치아나 턱 부위에 나타나다 보니 환자들은 치과를 먼저 찾기 일쑤다. 박 교수는 "안타깝게도 치통인 줄 알고 멀쩡한 생니를 여러 개 뽑고 나서야 우리 클리닉을 찾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징적인 임상 증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0.5mm 간격으로 세밀하게 촬영하는 '특수 MRI'를 통해 신경을 압박하는 원인 혈관을 확인하는 정밀 영상 소견이 완치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뇌수술의 공포를 넘어서는 '완치의 용기'
삼차신경통 치료는 1차적으로 항경련제 등 약물 요법을 시행한다. 하지만 약물은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며 장기 복용 시 어지럼증이나 간 기능 저하 등의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결국 근본적인 완치를 위해서는 신경을 누르는 혈관을 떼어내는 미세혈관감압술(MVD)이 유일한 답이다.
박 교수는 "MVD는 뇌교 부위의 좁고 깊은 해부학적 구조를 다루는 고난도 수술이라 의사의 숙련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희대병원의 성적표는 압도적이다. 수술 성공률 94.7%, 합병증 발생률 3% 미만이라는 기록은 세계적 수준이다. 박 교수는 "뇌수술이라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수술을 주저하는 분들이 많지만, 용기를 내지 않으면 이 지옥 같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1000례의 경험은 돌발 상황에서도 환자를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다는 신뢰의 증거"라고 역설했다.
■미세혈관감압술, 혈관과 신경에 완충 물질
경희대병원은 단순히 혈관만 분리하는 일반적인 수술과 달리, 환자의 상태에 따라 세 가지 기법을 병행한다. MVD에서 쓰이는 '신경내 박리술'은 신경 유착이 심한 경우 신경 가닥을 정교하게 분리하는 치료법을 의미한다. 또 멕켈스 동굴(Meckel's cave) 감압술은 뼈 조직 등에 의해 신경이 꺾이는 부위를 넓혀주는 기법이다.
특히 멕켈스 동굴 감압술은 박봉진 교수팀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시행하고 있는 방식이다. 박 교수는 "MRI상 혈관 압박이 뚜렷하지 않은데도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분석한 결과, 신경이 좁은 뼈 통로를 지나며 90도로 꺾이는 것이 원인임을 알아냈다"며 "이 부위를 갈아 넓혀주고 쿠션을 보강해 혈관 압박이 없는 환자들에게도 높은 완치율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수술법은 우리가 개발한 것으로 조만간 학회 발표와 논문을 통해 영상 판독에만 의존했던 기존 이론들을 뒤집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삼차신경통은 참고 견뎌야 하는 천형(天刑)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만 있다면 충분히 완치될 수 있는 질환"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