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센 파시즘
홍성국|360쪽|메디치미디어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100년 전 세계는 불안의 시대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경제적 위기와 대공황 등으로 양극화는 극에 달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더욱 불안하다. 경제 성장이 멈추고 파이가 줄어드는 수축사회로 진입하면서 남을 이겨야 내가 사는 제로섬 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가짜뉴스와 극우의 선동은 심해졌고, 불평등·불공정·불확실·불안정 등 이른바 ‘4불(不) 현상’은 일상이 됐다.
고립된 개인, 불안·무력감에 권력자에 자발적 복종
책은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100년 전의 파시즘과 오늘날의 파시즘을 비교해 유사성을 분석한다. 1930년대 독일인과 미국인, 그리고 2026년 한국인의 가상 인생 이야기를 통해 시대적 불확실성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대조하며 △파시즘 출현의 원인을 정서적 불안정 △과학기술의 발전과 자본주의의 한계 △시간적 우연이라는 3가지 핵심 축으로 고찰한다.
구체적으로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반감, 종교와 파시스트의 결탁, 사람의 기계화와 독점 자본주의가 초래한 양극화, 스페인 독감, 공산 혁명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어떻게 파시즘의 비옥한 토양이 됐는지 설명한다. 저자는 에리히 프롬의 이론을 빌려 “고립된 개인이 느끼는 불안과 무력감이 결국 강력한 권위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자유로부터의 도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4불 현상’ 속에서 사람들은 인권·민주주의와 같은 보편적 가치보다 오직 ‘생존’에 집착하게 되며,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칼에 해결해줄 것 같은 독재자나 ‘메시아’의 성공 신화에 의탁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100년 전보다 지금이 더 위험하다”며, 그 이유로 인공지능(AI) 혁명과 디지털 기술에 의한 통제를 제시한다. 현대 사회는 거대 빅테크 기업들이 플랫폼 사용료를 착취하는 ‘테크노퓨달리즘’(기술 기반 봉건주의)으로 퇴행하고 있으며, 대중은 기술의 편리에 길들여져 자발적으로 ‘디지털 농노’로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AI 알고리즘이 인간의 무의식을 해킹해 저항 의지를 꺾는 ‘디지털 파놉티콘’을 구축하고, 가짜정보와 음모론이 무한 증폭되는 ‘에코 체임버’ 효과를 통해 대중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있다”면서 “결국 인간이 알고리즘의 아바타로 전락해 스스로를 감시하고 자기검열에 빠지게 만드는 자동화된 시스템이 현대의 파시즘을 과거보다 훨씬 더 치명적으로 만든다”고 강조한다.
“시스템 전환만이 ‘더 센 파시즘’ 막아낼 해법”
그렇다면 글로벌 파시즘 전성시대는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저자는 100년 전 대공황이라는 동일한 난관을 정반대의 길로 헤쳐 나갔던 루스벨트와 히틀러의 사례를 대비한다. 파시스트인 히틀러가 1인 독재 기반의 ‘강한 민족국가’ 건설만을 추구하며 전쟁과 파멸로 이끈 반면, 루스벨트는 ‘국민의 번영(부민)’을 목표로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치유한 ‘뉴딜 혁명’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기틀을 닦았다.
이를 근거로 저자는 “과거의 관성적인 대응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회 시스템 전체를 통째로 바꾸는 ‘시스템 전환’만이 현대의 ‘더 센 파시즘’을 막아내고 번영을 지속할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한다.
책은 수축사회의 엔진을 멈추고 함께 번영하는 ‘플러스섬’(Plus-Sum)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K구조전환의 핵심설계도도 제시한다. 이에는 △국가 모델 수립 △강력한 민주주의 재구축 △성장 중심 사회 △피지컬 AI와 제조업을 결합한 미래형 제조 강국으로의 도약 등이 포함된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제 교사’로 불리는 홍성국 전 의원(전 미래에셋대우 대표)이 펴낸 아홉 번째 신간이다. 저자는 “100년 전 독일의 히틀러와 미국의 루스벨트가 비슷하나 다른 길을 선택한 것처럼 지금의 우리가 바로 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면서 “앞으로 2~3년이 구조전환의 마지막 골든타임일 지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가 마주한 혼란이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바뀌는 ‘문명사적 변곡점’이라는 통찰력 있는 시각을 보여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