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투자성 대출과 벤처투자시장 생태계
초기 단계 지나 스케일업 자금으로 쓰이는 벤처대출
초기에는 기관투자자 자금으로 성장 뒷받침
은행 벤처대출 늘리기 위해 '경영판단원칙' 도입
[이데일리 이수빈 기자] 정부가 K엔비디아 육성 프로젝트에 나선 가운데 비상장 벤처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관투자자의 벤처투자시장 참여 확대와 은행의 벤처대출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진=게티이미지)
3일 한국금융연구원의 ‘생산적 금융을 위한 은행의 투자성 대출과 벤처투자시장 생태계 개선과제’ 논단에 따르면 미국·영국에서는 벤처대출이 벤처캐피탈(VC) 시장 대비 차지하는 비중이 상승세인 반면 한국에서는 매우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벤처대출도 함께 활성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논단의 핵심 주장이다.
벤처대출은 초기 단계를 지나 스케일업을 위한 주된 자금으로 활용되는 3~5년 무담보·무보증 대출이다. 형식상 ‘대출’이지만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는 미래주식취득 권리인 ‘워런트’를 조건부로 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대출과 다르게 스케일업 자금 지원의 의미가 있다.
1983년 설립된 실리콘밸리은행(SVB)에 의해 처음 시작됐는데 2023년 파산한 SVB는 미국 전체 벤처대출에서 약 50%를 차지했다. 영국에서는 HSBC혁신금융(Innovation Banking)과 정책기관 영국 기업은행(British Business Bank) 등이 벤처대출 및 관련 보증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벤처캐피탈 시장 대비 벤처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팬데믹 이전 10%에서 2022년 약 15%로 높아졌고 2024년 1분기 기준 18.6%까지 상승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벤처대출이 소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자봉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에서 벤처투자와 벤처대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비상장 벤처기업에 대한 자본 생태계가 생산적 위험을 제대로 수용하는 구조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지분투자와 벤처대출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그 첫번재 과제로 기관투자자 기반 확대를 꼽았다. 해외의 경우 기금투자자가 중심이 돼 벤처기업의 초기·성장 단계에 자금을 공급하고, 이후 비즈니스 모델이 검증되면 벤처대출을 통해 성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미국 벤처캐피탈 생태계는 연기금이 중심이고, 벤처캐피탈 전체 자금의 72%를 공급하며 10~15년 장기 투자가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국민연금의 벤처캐피탈 투자 비중이 전체 운용자산의 1% 미만이다. 김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의 벤처투자비중이 현 0.014%에서 해외처럼 약 1~2% 수준으로 높아지면 벤처투자시장의 모태펀드 의존이 줄고 벤처캐피탈의 독립성과 위험성 감수의 능력 제고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은행들의 벤처대출은 벤처기업이 비즈니스모델을 증명한 이후 이뤄진다. 따라서 기금투자자의 자금 공급으로 벤처기업이 성장 단계를 넘어서면 은행의 벤처대출이 적극 공급되어야 한다. 김 연구위원은 은행의 벤처대출을 유인하기 위해 벤처대출의 부실이 발생할 경우 대출을 심사한 개인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고 ‘경영판단원칙’을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대출금을 회수한 이후에도 기업이 성공할 경우 주식가치 상승분을 나눠 가질 수 있는 ‘분리형 워런트’를 활성화할 것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