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씨(62)에게 2009년은 심신이 고달픈 해였다. 여러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든 시기였다. 또 당시 고등학교 1학년 첫째 딸이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전국소년체육대회 육상 중장거리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로 체력이 뛰어난 딸이 입시 위주의 학교 분위기와 내신 등급 경쟁 속에서 숨이 막혀갔다. 개인적인 일보다 딸이 더 급했다. 북한산이 바라보이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살던 박 씨는 딸에게 “우리 새벽에 북한산에 바람 쐬러 갈까?”라고 했고, 그게 두 모녀에게 큰 전환점이 됐다.
박선경 씨가 서울 종로구 구기동 쪽 북한산을 오르면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2009년 대학입시 스트레스로 고생하는 큰딸을 위해 함께 북한산을 오르기 시작한 박 씨는 지금도 전국의 명산과 집 주변 산을 오르며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토요일 새벽 구기동 쪽으로 올라 승가사 사모바위 승가봉 문수봉 대남문을 거쳐 구기동으로 내려왔어요. 비봉능선, 사모바위에서 승가봉으로 가는 방향은 동쪽이죠. 아침 해가 떠오르며 의상능선과 그 너머 노적봉 만경대 백운대 인수봉 바위가 붉은빛을 뿜어내고 있었죠. 온 산이 말갛게 세수하고 아침 햇살로 곱게 단장을 마친 듯한 순간, 딸의 얼굴도 빛났어요. 참 잘 데려왔다고 생각했죠.”
딸의 반응이 좋았다.
“비봉능선에서는 북악산과 인왕산, 멀리 남산, 한강까지 보여요. 문수봉에 닿기 전에 있는 똥바위 옆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우리 집과 딸이 다니는 고등학교를 찾아봤죠. 집과 학교가 손톱보다도 작아 보였어요. 그때 까마귀 한 마리가 지나온 비봉능선 위 허공에서 유유히 선회하고 있었죠. 딸은 까마귀의 매끄러운 유영에 감탄하며 좋아했어요.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비둘기가 다가와서 우리가 먹다 흘린 인절미 콩가루를 쪼아 먹었죠. 그 이후 바위에 자리 잡으면 콩가루를 뿌리고 비둘기를 기다렸어요. 딸과 저는 비둘기가 놀랄까봐 조용히 떡을 먹고 커피만 마셨죠.”
박선경 씨가 서울 종로구 구기동 쪽 북한산을 오르면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매주 토요일 모녀의 산행은 고3까지 이어졌다. 어느 순간 딸이 입시 경쟁에서 물러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박 씨는 “딸이 조급함을 내려놓고 여유로움을 가졌다. 원래 체력이 좋았는데 더 활기가 넘쳤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며 학교생활을 잘 버텼다”고 했다. 딸은 대학에 진학했고, 최근 모 대학교 생명공학 교수가 됐다. 당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했던 박 씨도 북한산을 통해 심신의 건강을 회복했다.
“전 학창 시절부터 운동을 싫어했어요. 체력이 약했죠. 처음 딸하고 북한산에 갔을 때 저는 기다시피 올라갔어요. 딸은 올라가다 제가 안 보이면 다시 내려왔다가 함께 올라가기를 반복했죠. 당시 제 혈압이 185까지 올랐었고, 목 디스크로 인해 오른팔 마비 증세까지 왔었죠. 아이들 학교 갔을 때 혼자 북한산을 돌아다녔어요. 근 100일간 산을 헤맸죠. 그때 고민도 많이 했지만, 산을 통해 건강도 찾았어요.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더 강해졌죠.”
박선경 씨가 북한산 의상능선(왼쪽)과 오봉을 올랐다. 박선경 씨 제공
박 씨는 “북한산은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내 솔푸드(Soul Food)”라고 했다. 부암동에 살 때 눈앞에 펼쳐진 북한산을 ’우리 집의 커다란 정원‘이라고 여기고 살았다고 했다. 지금도 머릿속에 지명을 얘기만 해도 지형도가 통째로 그려질 만큼, 북한산은 그의 삶과 몸에 깊이 새겨진 산이다.
박 씨는 2013년 10월 지리산에 오른 것을 계기로 전국의 명산 탐방에도 본격 나섰다. 당시 출판사를 옮겨, 회사 단체 산행으로 지리산 성중(성삼재-중산리)종주에 나섰다. 그는 “1박 2일 일정으로 산을 탔는데 산 위에서 바라본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민가는 보이지 않고 사방으로 산만 보였다. 동해와 남해, 서쪽으로 광주 무등산까지…. 산 지킴이 한 분이 ‘3대가 덕을 쌓아야 이런 맑은 날씨에 전국을 조망할 수 있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박 씨는 또 “책에서만 보던 금강초롱꽃 등 고산 야생화를 지리산에서 실물로 처음 만난 것도 놀라움 그 자체였다”고 했다. 당시 그는 출판사에서 강병화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명예교수의 식물도감을 편집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박선경 씨가 태백산과 북설악 마산봉에 올랐다. 박선경 씨 제공
“지리산에 처음 올랐을 때 고려대 모교 방문의 날이었죠. 고려대 입학 30주년 기념이라 꼭 가야 했는데…. 친구들에게는 ‘지리산에 와 있다. 못 가서 미안하다’고 SNS에 글 남겼었죠. 그해 말 고려대 83(83학번) 산우회 회원이 ‘2014년 지리산에 간다’고 했고, 저도 다시 지리산에 오르고 싶어 회원 가입해 활동하게 됐습니다.”
박 씨는 그때부터 고대 83 산우회 정기 산행을 함께 하며 전국의 명산을 올랐다. 매월 첫째 토요일에는 원거리 산행으로 회원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전국의 산으로 향하고, 셋째 주 토요일엔 근교 산행으로 수도권 산을 오르고 있다. 평일에는 파킨슨병에 걸린 친정어머니를 돌보며, 어머니 집(인천) 근처 듬배산과 오봉산 왕복 2시간 코스를 주 4회 이상 오르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뛰어놀던 산”이라고 했다. 그는 인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결혼한 뒤에도 인천에 살다 큰딸 중학교 1학년 때 서울 부암동으로 이사했다.
박선경 씨가 히말리아 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EBC)에 오르고 있다. 박선경 씨 제공
인천에서 서울로 이사하고, 딸이 대학 입시 때 스트레스를 받게 된 사연은 이렇다.
“첫째 딸이 운동을 잘하니 선생님들이 ‘육상 선수 시켜라’고 했어요. 전 우리 아이가 공부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여러 이유로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고교는 과학고 등 특목고는 생각도 안 하고, 인문계에 갔는데 1학년 때 덥석 전체 1위를 한 겁니다. 학원에도 안 보냈고, 혼자 공부했는데…. 그런 이유로 선생님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딸도 당황하게 됐죠. 학교 분위기가 딸이 더 공부를 더 잘해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졌죠. 그게 스트레스로 발전한 겁니다.”
박 씨는 최근엔 해외 원정 산행도 다녀왔다. 3년 전 히말라야 랑탕, 2024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EBC)에 올랐고, 지난해엔 일본 북알프스 다이기레토를 넘었다.
박선경 씨가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박선경 씨 제공
산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 전문가 과정에도 관심을 가졌다. 한국트레킹연맹에서 숲길등산지도사(산림청) 자격증을 취득했고, 국립공원 탐방객을 안내하는 자연환경해설사(환경부) 자격증도 땄다. 박 씨는 “언젠가 산을 찾은 사람들을 안내하며 살기 위해 땄다”고 했다. 그는 한국트레킹연맹 회원으로서 지체장애인협회와 연계한 무장애 트레킹 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박 씨의 꿈은 지리산에서 3박 4일 머물면서 자연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
“친구들이랑 지리산에 오르면 금요일 밤에 서울에서 출발해 토요일 새벽부터 산을 타고, 그날 저녁때 올라와요. 서로 바쁘니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죠. 그럴 때마다 너무 아쉬웠어요. 언젠가는 산 대피소마다 예약하고 천천히 여유 있게 둘러보고 싶어요. 하지만 쉽지 않죠. 며칠 먹을 음식을 다 준비해서 올라가야 하니까요.”
박선경 씨가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박선경 씨 제공
“산은 저를 치료해 준 의사였어요. 몸과 마음의 병도 산이 고쳐줬죠. 빨리 가지 않아도 되고, 멀리 가지 않아도 됩니다. 자연 속을 그냥 걷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그럼, 심신이 건강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