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계 안보 전문가 “공개매장 엄두 못내”
모즈타바 권위 약해 지도부 우왕좌왕
전쟁 피해 최대 1500조원…재건 쉽지않아
26일(현지 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의 이란 대사관 앞에서 이슬람 공화국에 대한 연대를 표명하는 집회가 열려 한 참가 여성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 사진과 이란 국기, 헤즈볼라 깃발을 들고 있다. 2026.03.27 베이루트=AP/뉴시스
미국과 이란의 첫 번째 종전 협상이 결렬된 상황에서 이란의 신정일치 정권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다는 정황 또한 속속 포착되고 있다. 전쟁 발발 당일인 올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의 국장(國葬)은 이달 13일 기준 사망 45일째가 되었음에도 치러지지 못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차남이며 지난달 12일 새 최고지도자에 오른 모즈타바 또한 아직까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폭스뉴스는 이란의 현 정권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추가 공습, 반(反)정부 시위 발발 등을 두려워하며 극도의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다고 12일 진단했다. 또 이란의 현 지도부 인사들이 자신의 생존, 신정일치 체제 유지 등을 위해 대내적인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을 피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뚜렷한 구심점이 없는 이란의 현 상황이 미국과의 종전 협상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 하메네이 시신, 45일째 매장 못 해
이란계 미국인들의 이익단체 ‘OIAC’에서 활동하는 안보 전문가 라메시 세페라드 박사는 폭스뉴스에 “하메네이가 숨진 뒤 현재까지 현 이란 정권이 그를 공개적으로 매장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정권 상층부부터 말단까지 퍼져 있는 극도의 공포심을 반영하는 지표”라고 말했다.
이슬람 율법상 시신은 24시간 이내에 매장하는 것이 원칙이다. 1989년부터 37년간 이란을 통치한 하메네이의 시신을 이토록 오랫동안 방치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9일 이란 전역에서 추모 행진이 열렸지만 하메네이의 매장지가 공개되지 않아 통상적인 공개 참배 행사는 진행되지 못했다. 그만큼 현 이란 지도부가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란 지도부가 생전 하메네이가 강하게 반대했던 미국과의 대면 협상을 11, 12일 양일간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가진 것 또한 하메네이의 유지를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이란의 경제 사회적 어려움이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NYT)는 11일 이란 고위 관리 3명과 경제학자 2명을 인용해 이란 당국이 이번 전쟁에 다른 피해 규모를 3000억 달러(약 450조원)에서 최대 1조 달러(약 1500조원)로 추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20만 명 이상을 고용하던 이란 남부 아살루예의 최대 석유화학 단지와 철강 공장 등이 심각하게 파괴되면서 여파가 농업, 제조업 등 산업 전반에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 관리들은 개전 이후 100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추산했다.
이란 경제를 추적하는 영국 싱크탱크 부르스 앤드 바자르 재단의 에스판디야르 바트만겔리지는 NYT에 “이번 전쟁으로 이란의 경제 발전 경로가 막혀버렸다”며 “이란이 제재 하에 있는 한 핵심 인프라를 재건하거나 복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게 현실”이라고 짚었다.
세페라드 박사는 현재 이란의 권력 구조가 여러 마피아가 권력을 나눠 갖는 ‘분점 체제’에 가깝다고 봤다. 모즈타바는 부친이 가졌던 강한 영향력과 권위를 보유하지 못했고 혁명수비대(IRGC), 사법부 등과 느슨한 권력 연합체를 이룬 상태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집단은 이란 민중이다. 세페라드 박사는 현 이란 정권이 대내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내부적으로는 체포, 처형, 협박과 인터넷 통제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 최소 130곳의 이란 유적 손상
한편 이란 전역의 문화유산 또한 전쟁으로 광범위하게 훼손됐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일 보도했다. 이란 당국은 최소 130곳 이상의 유적이 직접 타격을 받거나 충격파로 손상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며 카자르 왕조(1789~1925년)가 건립한 수도 테헤란 내 골레스탄 궁전의 피해가 크다. 유네스코는 궁전 인근 아르그 광장의 경찰서와 법원을 겨냥한 공습으로 발생한 강력한 충격파가 궁전을 덮쳤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궁전의 자랑인 ‘거울의 방’ 일부가 산산조각 나고 석조 구조물이 떨어져 나가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사파비 왕조(1501~1736년)의 중심지였으나 현재는 핵 시설이 위치한 중부 이스파한 또한 화를 피하지 못했다. 이곳의 핵 시설을 겨냥한 연이은 공습으로 17세기에 건립된 체헬소툰 박물관 내 벽화에도 금이 가고 천장 장식이 파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