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 원도심 여행
부산 영도(影島)의 매력은 해운대의 깔끔한 바다가 아니라 일하는 항구의 생명력이다. 조선소와 낡은 보세창고, 거대한 컨테이너선박들과 크레인의 실루엣…. 쇠락한 항구의 섬 영도가 최근 감성 카페와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영도가 떠오름에 따라 부산 관광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해운대, 광안리, 자갈치시장 같은 대형 관광지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부산 원도심 여행이 인기를 얻고 있다.
● ‘커피 산업 중심지’ 영도 조선소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전국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 1위는 부산 영도구 봉래동이다. 이곳을 찾은 외국인은 7만251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128% 급증했다. 조선소의 거친 철골과 물양장(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부두) 오래된 벽돌, 녹슨 파이프들이 있는 곳. 산업 미학이 여전히 살아 숨쉬는 영도 조선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영도 여행 출발은 영도대교에서 시작해야 한다. 영도대교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도개교(跳開橋). 일제시대에 건설된 영도대교는 배가 지나갈 때마다 길이 31.3m, 무게 590t의 거대한 철교가 75도 각도로 들어 올려지는 진귀한 구경거리를 보여줬다. 요즘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15분간 다리가 올라가는 쇼가 펼쳐진다.
부산 영도 라발스호텔 28층 스카이카페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영도 다리들과 부산항 풍경. 낡은 조선소와 물양장, 창고 등이 카페와 문화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영도대교 바로 앞 건물 2층에 있는 스타벅스 영도대교점에는 토요일마다 ‘성지순례객’들로 만석을 이룬다. 오후 2시 영도대교 사이렌이 울리면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이 휴대전화 사진기를 켠다. 어린이들의 경탄, 젊은 연인들의 설렘, 그리고 노인들의 향수(鄕愁)가 뒤섞이는 시간이다.
영도에 사람이 몰려든 것은 6·25전쟁 때였다. 피란민들 최후의 안식처가 부산이었다. 당시 부산 인구는 16만 명에 불과했는데, 200만 가까운 피란민이 몰려들었다. 영도대교 주변은 피란민 천막으로 뒤덮였다. 영도대교는 14대 대통령선거 당시 ‘초원복집 사건’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자”는 녹취 테이프 속 말은 정치인들이 부산의 지역감정을 자극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영도대교 바로 앞에 있는 라발스호텔 28층 스카이카페에 올라가면 넓은 통창을 통해 조선소와 영도대교, 부산항 풍경을 360도로 볼 수 있다. 스카이카페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니 영도 조선소 도크에 배가 올라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아직도 영도 조선소는 운영되고 있구나!
영도대교에서 10여 분 걸어 ‘대한민국 수리 조선 1번지’로 불리는 대평동 ‘깡깡이 마을’에 도착했다. 늘 깡! 깡! 깡!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걷다가 문이 살짝 열린 조선소 안으로 들어가 봤다. ‘칠성1호’라고 쓰여진 배가 눈 앞에 서 있다. 낯설지만 뭔가 신기하고 생생한 산업현장에 와 있는 듯하다.
영도는 운항 중인 중급 규모 선박들을 보수하는 조선업이 발달해 왔다. 1970∼80년대 붐을 이룬 원양어선은 5월 전후에 영도로 들어와 겨울 항해를 대비해 정비를 받았다. 선체에 붙은 조개껍데기와 해초, 녹을 제거하고 용접하고 엔진을 점검했다. ‘깡깡이 아지매’들 활약은 대단했다. 배의 녹이나 조개껍데기를 떨어내던 여성 노동자들이다. 대부분 6·25전쟁 피란민과 그 자녀들, 농어촌을 떠나 온 실향민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망치질을 했다.
조선업 침체에 따라 영도는 인구소멸 위기를 겪었다. 1978년 약 21만 명이던 인구는 2024년 10만여 명으로 줄었다. 청년은 떠났고 골목골목에는 셔터 내린 가게가 즐비했다. 2016년부터 마을 빈 공간을 예술작품으로 채우는 ‘깡깡이예술마을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키네틱아트와 벽화, 박물관, 마을카페 등이 생겨났다.
부산 영도 대평마을 대동대교맨션아파트 ‘우리 모두의 어머니’ 벽화.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대평마을 대동대교맨션아파트 벽에 그려진 ‘우리 모두의 어머니’. 독일 예술가 헨드릭 바이키르가 2017년 크레인에 올라 그린 가로 13m, 높이 35m 초대형 벽화다. 고된 삶을 강인하게 살아 낸 깡깡이 아지매 초상화다. 밤이 되면 들어오는 조명을 받아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주름살 가득한 어머니 얼굴이 빛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대평마을뿐 아니라 지난 10년간 영도에는 큰 변화가 생겨났다. 폐조선소가 문화 공간이 되고, 낡은 공업소가 예술 무대로 재해석됐다. 관광객들은 이 ‘낡음’을 향유하기 시작했다. 봉래동 물양장 일대 보세창고는 220곳 카페로 채워졌다.
강원 강릉에 이어 부산이 커피 로스팅 중심지로 떠오른 이유는 뭘까. 국내 수입되는 커피 생두 90% 이상이 부산항을 통해 들어와서다. 에티오피아 산지, 콜롬비아 고산지대, 인도네시아 화산 지형에서 수확한 생두가 컨테이너에 실려 부산항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선한 생두를 로스팅할 수 있는 영도에 커피 전문 카페가 밀집하게 됐다.
부산 영도 모모스 로스터리 커피 앞 조선소와 물양장.
실제로 봉래동 모모스 카페에 들어서면 거대한 로스팅머신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세계 각지 생두를 로스팅해 매일 다른 브랜드의 스페셜티커피를 큐레이션한다. 가장 인기있는 자리는 ‘조선소 뷰’ 자리다. 젊은 남녀들은 부산항 크레인과 중장비가 움직이는 풍경과 조선소 거친 기계음을 마주하며 커피를 마신다.
봉래산 중턱에 자리 잡은 미피카페도 부산 남항과 북항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 맛집이다. 1987년부터 신기산업의 방울 공장이던 이 카페 루프탑에서 바라다보이는 부산항 노을과 야경은 사진작가들도 찾아오게 만든다. 영도 동삼동 조선소 부지에 들어선 카페 피아크(P.ARK)는 거대한 크루즈선이나 항공모함을 연상케 한다. 카페 내부에는 바다 조망을 극대화하는 대규모 유리창과 계단형 좌석이 설치돼 있다. 부산항과 오륙도를 마주 보도록 설계된 시네마틱한 공간이다. 이곳 ‘영도 사골 뚝배기빵’은 유명하다.
부산 영도 흰여울문화마을 노을 지는 골목길.
영도 바닷가 절벽 위 흰여울문화마을도 피란민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다. 푸른 바닷물이 일렁이는 비탈길로 좁은 골목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그리스 산토리니 이아 마을에서 노을을 바라보던 추억이 떠오르는 동네다. 절벽 위 흰 담장 마을 풍경에 외국인 관광객도 몰려든다.
영화 ‘변호인’ 국밥집 장면의 무대가 됐던 카페도 있다. 커피와 팥빙수를 시켜 놓고 건너편 송도해수욕장 너머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본다. 애잔한 향수와 그리움이 느껴진다.
● 바다에서 바라본 태종대와 송도
영도에서 커피를 마셨다면 유람선과 요트를 타고 영도의 진귀한 바위들을 구경할 차례다. 먼저 영도 끝자락 태종대다. 신라시대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삼국통일을 마친 후 수려한 해안절경에 매료돼 활을 쏘며 즐겼던 곳이라고 한다.
해상 유람선에서 바라본 태종대와 등대.
태종대는 걸어서 볼 수 있다. 전망대∼영도등대∼태종사로 이어지는 2∼3시간 산책 코스다. ‘다누비 열차’를 타고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지질 명소로 불리는 태종대 절벽을 제대로 보려면 유람선을 타는 것이 좋다. 약 40분간 태종대와 오륙도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태종대에는 망부석이 서 있다. 왜구에 잡혀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로 변한 여인 전설이다. 유람선은 주전자섬, 오륙도를 감상하고 갈매기와 함께 항구로 되돌아온다. 태종대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오솔길 사스레피나무에 꽃이 피었다. 구수한 향기가 난다.
부산 송도해수욕장에 출발하는 요트는 해운대와 광안대교 불꽃놀이 야경을 감상하는 요트와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지질학 여행이다. 송도 거북섬에서 출발한 요트는 용궁구름다리 쪽으로 향한다. 해안 절벽에는 짙은 보라색과 흰색 암반이 층층이 쌓여 있다. 팥과 찹쌀로 만든 시루떡 같기도 하고, 초코와 크림케익을 번갈아 쌓아 놓은 느낌도 든다. 해안 절벽을 보면서 “맛있겠다”며 입맛을 다시게 되다니! 검붉은 암반층에서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다. 화이트초콜릿 같이 보이는 층은 석회질 응집체라고 한다.
해안 절벽에 세로로 길쭉하게 뚫린 해식 동굴 2곳이 보인다. 영락없는 콧구멍 모양이다. 다른 곳에는 용굴도 있다. 송도 거북섬에는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용의 비늘로 덮인 인룡(人龍) 여인과 어부의 슬픈 사랑의 전설을 담은 동상이 세워져 있다. 송도는 용의 기운이 가득한 바닷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