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이태우 울산쇠부리기술보존회장 “울산 산업화 뿌리 ‘쇠부리’ 온전히 찾고파”

¬ìФ´ë지

새 소리 찾다 기술 발굴까지…실험 10년 만에 쇳물 뽑는 데 성공

국가무형유산 조사 대상 지정 “기술·소리 전승할 공간 있었으면”

지난달 24일 울산 북구 달천철장 유적공원 울산쇠부리 기술 실험용 흙가마 앞에서 이태우 울산쇠부리기술보존회장이 울산쇠부리 소리와 기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주성미 기자

“울산쇠부리는 철저한 분업입니다. 숯쟁이는 숯만 나르고, 풀무꾼은 풀무를 밟아 가마에 바람만 불어넣죠. 서로 맡은 일을 잘하면 좋은 쇳물을 뺄 수 있습니다. 쇳물은 대장장이 손을 거쳐 창과 검이 되고 농기구가 되죠. 그야말로 산업도시 울산의 뿌리 아닙니까?”

지난달 24일 울산 북구 달천철장 유적공원에서 만난 이태우(74) 울산쇠부리기술보존회장은 울산쇠부리 기술 실험용 흙가마를 바라보며 울산쇠부리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 흙가마에서 되찾은 울산쇠부리 기술을 보존하려 올초 출범한 울산쇠부리기술보존회 초대 회장이다.

달천철장은 기원전 1세기 한반도 중남부지역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광산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폐허가 된 곳을 구충당 이의립(1621~1964) 선생이 1657년 재건해 쇳덩이를 대량 생산했다고 한다. ‘울산쇠부리’는 이의립 선생이 다시 세운 제철기술이다.

이후 250여년을 이어온 울산쇠부리 명맥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 사실상 끊겼다. 이 선생 후손이 일제에 광산을 빼앗기고 강원도로 쫓겨나면서다.

‘이불매는 어디불매 경상도 도불매 쇠는쇠는 어디쇤고 달내라 토철이요.’ 울산쇠부리는 노동요 소리로만 남았다. 그마저도 사람들의 입을 거쳐 겨우 전해졌다. 1981년 울산문화방송이 마지막 불매대장인 소리꾼 고 최재만옹의 소리를 담은 것이 ‘쇠부리 불매소리’와 ‘쇠부리 금줄소리’의 첫 기록이다. 이후 울산문화원에서 쇠부리놀이를 재연했다.

이태우 회장이 ‘울산쇠부리소리’를 접한 것은 이후 울산공설운동장(현재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울산공업축제 때다. “어허어 불매야 아야여로 불매야.” 북구 양정동에서 나고 자란 그는 단번에 어릴 적 동네 어르신을 따라 부르던 소리를 알아챘단다. “무슨 노랜지도 모르고 그 아재가 먼저 부르면 목청껏 뒤따라 부르던 노래가 흘러나오더라고요. 아, 그게 저 소리구나 했지요.”

본격적인 인연은 10여년 뒤인 2004년 이 회장이 북구문화원 풍물분과위원회 회장을 맡으면서다. 동네에서 꽤나 잘 논다는 사람들이 모였을 뿐, 이 회장은 물론 회원들 중에서 관련 전공을 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느새 놀이패로 발전했고 해마다 나름 울산쇠부리소리 공연을 선보였다. 그런데 충남 부여에서 열리는 한국민속예술축제 전날 참가자들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이 회장은 자존심을 크게 구겼다.

“다른 지역 참가자가 울산서 선보이는 공연은 무슨 무형문화재냐 묻는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급이 다르다며 술 한잔도 안 주더군요.”

그날 이후로 이 회장은 무형유산에 꽂혔다. ‘울산쇠부리소리에 소리는 어디 가고 놀이패만 있느냐’는 말이 응어리처럼 남았다. 이 회장은 소리를 더 찾기로 결심했단다. 기존 두곡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소리를 기억하는 주민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소리를 적고, 불러보면서 흩어진 조각을 맞췄다. 칭얼거리는 아기를 달랠 때 부르던 ‘애기 어루는 불매소리’와 대장장이가 부르던 ‘성냥간 불매소리’가 쇠부리에서 파생된 소리라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렇게 모두 네곡의 소리가 세상에 드러났다. 어렵게 발굴한 이들 소리를 보존하기 위한 ‘울산쇠부리소리보존회’가 2016년 출범했다.

2024년 울산에서 쇠부리 기술을 복원하기 위해 실험하는 모습. 울산 북구 제공

이 회장은 소리를 찾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소리에 담긴 달천철장과 쇠부리 기술도 발굴해야 한다고 여겼다.

“울산쇠부리소리는 쇠를 부리면서 부르는 노동요잖아요. 경상도 도불매라는 울산쇠부리 흔적과 그 기술까지 찾아야 완성인 거예요.”

이 회장은 쇠부리 기술을 수소문했다. 알 법한 동네 사람들은 모두 손사래를 쳤다. 과거 천한 직업으로 여긴 탓에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이 회장은 결국 회원들과 함께 경남 김해 대가야박물관, 중원문화유산연구원을 오가며 전문가 자문을 구하고, 쇠부리 기술을 익혔다. 2016년부터 조선 후기 흙가마에서 쇳물을 빼는 실험이 이어졌다. 10년 만에 북구 대안동 쇠부리 터의 절반 수준으로 제련로를 만들고 쇳물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사이 달천철장 유적공원이 조성되고, 학술적 자료 발굴도 이뤄졌다. 울산쇠부리소리는 2019년 울산 무형유산이 됐고, 2024년 국가무형유산 신규조사 대상으로도 지정됐다.

이 회장은 3년 전 청력이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오랫동안 잡았던 꽹과리를 내려놨다. 쇠부리 기술 보존과 전승자 교육에 집중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소리와 기술을 제대로 선보이고 교육할 공간이 마땅찮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울산쇠부리는 달천철장과 대안동 쇠부리 터, 쇠부리소리와 쇳물 빼는 기술, 대장장이 기술 등 다섯가지가 모두 모여야 완성됩니다. 아직 발굴하지 못한 부분도 많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¹ì‹ 2026´ëª…궁금˜ì‹ ê°€

지ê¸ë°”로 AI가 분석˜ëŠ” 가•교¬ì£¼ 리포¸ë 받아보세

´ëª… œë‚˜ë¦¬ì˜¤ •인˜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