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호르무즈해협의 케슘섬 연안에서 한 보트가 정박 중인 유조선 옆을 지나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 전쟁 장기화로 석유업계와 정부가 원유 공급망 다각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중동 의존도가 절대적인 에쓰오일(S-OIL)도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를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20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의 자회사인 에쓰오일은 호르무즈해협 봉쇄 장기화로 원유 공급이 불안정해지자, 미국산 원유 수입량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90%가 넘어 국내 정유사 가운데 중동 의존도가 가장 큰 에쓰오일의 이런 행보는 이례적이다. 에스케이(SK)에너지, 에이치디(HD)현대오일뱅크, 지에스(GS)칼텍스 등 타 정유사들이 미국산 원유를 10% 넘게 수입해온 것과 달리, 에쓰오일은 2018년에 처음 미국산 경질유를 소량(전체 수입의 0.8%) 수입한 뒤로 미미한 비중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산 원유 도입을 검토할 수밖에 없는 한계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풀이된다. 에쓰오일은 국내 정유설비와 미국산 경질유의 정합성, 운임비, 경제성 등을 평가한 뒤에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미국산 원유는 가격이 저렴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무관세 혜택을 받으며, 정제 과정에서 중질유와 섞어 쓰기 좋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휴스턴과 루이지애나 등 멕시코만(아메리카만) 연안 항구에서 선적되는데 이를 운반하는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해야 해 중동산 원유보다 두배 가까이 수송 기간이 길고 막대한 운임이 든다는 것이 걸림돌이었다.
그런데도 지정학적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원유 공급망 다각화를 강조하는 정부 방침에 따라 정유사들은 미국산 수입을 늘리는 추세다.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 자료를 보면, 2021년 1억1900만 배럴이었던 미국산 원유 수입량은 지난해 1억7500만배럴로 늘었다. 업계는 최근 중동산 원유 공급망 위기가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정부가 4∼6월 비중동 지역에서 들여오는 원유에 대해 중동산 대비 운임 차액을 전액 지원하기로 약속한 것도 기폭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산 원유와 더불어 캐나다산 원유도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중질유 위주로 구성된 캐나다산 원유는 주로 앨버타주 내륙에서 생산돼 거의 전량(생산량의 97%)을 미국으로 수출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문제로 양국 사이가 악화하자, 캐나다는 서해 연안인 밴쿠버 쪽으로 ‘트랜스 마운틴’ 파이프라인을 뚫어 아시아 시장 수출량을 확대하고 나섰다. 밴쿠버항에서 원유를 선적하면 태평양을 건너 곧바로 아시아로 수출할 수 있어 운송 기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된다. 지난해 중국에 8870만배럴의 원유를 팔아 2024년 대비 네배 이상 판매량을 늘린 캐나다는 추가 파이프라인을 건설을 통한 아시아 수출 물량 확대를 추진 중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들의 고도화 설비가 주로 중질유 처리에 맞춰져 있는 점을 고려하면, 캐나다산 원유는 훌륭한 전략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