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식 IBK기업은행 경영전략그룹 ESG경영부장(공학박사)
지난 5일 생방송으로 진행된 기후위기 대응 공론화 공개토론회를 지켜보며 우리 사회가 거대 담론 문턱을 넘어 실행으로 진입했음을 실감했다.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위해 지난 2월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가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킨 후, 31명 의제숙의단 의제 도출과 360명 시민들의 4회에 걸친 토론까지 24일간의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시민들은 탄소중립이 가져올 환경적 가치에 공감하면서도, 그 과정에 발생할 산업 구조의 변화와 일자리, 그리고 구체적인 이행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토론회 화두는 비용 분담, 재정과 금융이었다.
우리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과 2050년 탄소중립을 법으로 명시했다. 하지만 법은 이정표일 뿐, 이를 행하는 주체는 기업과 시민이며 그 걸음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는 자본이다. 탄소중립기본법의 약속이 실천이 되기 위해서는, 기후금융이라는 강력한 엔진이 가동돼야 한다.
그렇다면 정보기술(IT) 강국이자 제조업 강국인 한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기후금융 모델은 무엇일까?
첫째, 디지털 기후금융이다. 기후금융 성장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신뢰다. 기업 감축 실적이 투명하지 않다면 자본은 움직이지 않는다. 기업이 실제 탄소를 얼마나 줄였는지, 지원 자금이 목적에 맞게 쓰였는지에 대한 불신은 자본 흐름을 막는다.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디지털 기술에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추진한 제네시스 프로젝트나 시장에서 거론되는 기후 스테이블코인 모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소기업이 공장 보일러를 교체해 탄소를 줄이면, 그 즉시 디지털 자산이 발행돼 은행 이자를 깎아주거나 운영 자금으로 전환되는 금융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미 해외 유수의 은행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JP모건의 탄소배출권 토큰화, 미쯔비시 금융그룹 탄소배출권 결제 스테이블코인 활용, 미즈호은행 탄소배출권 분산원장 기술 추진이 그 예다. 세계 최고 IT 인프라와 금융 시스템을 갖춘 대한민국이 두 동력을 결합하면, 기후금융 글로벌 표준을 설계하는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다.
둘째, 소외 없는 동행을 위한 전환금융이다. 국내 기후금융은 녹색 기업만을 골라내는 선별적 투자(녹색금융)를 넘어, 탄소집약산업의 저탄소를 돕는 전환금융으로 외연이 확장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환금융이 녹색금융 그늘에 가려져서는 안 된다. 변화를 시작하는 기업을 돕는 전환금융과 앞서가는 녹색금융은 상호 보완적이며 동등한 가치의 기후금융 핵심축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경제의 모세혈관인 중소기업이 전환금융의 실질적인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보다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올해는 기후금융의 큰 변곡점이다. 고질적 한계로 거론되어 온 '공유자산의 비극'과 '시간 지평의 불일치' 극복의 출발점은 견고한 법적 근거인데, 기후금융 촉진법안이 지난 3월 법안소위를 통과했고, 탄소중립기본법 제58조에 대한 일부개정안도 발의되었다. 이는 기후금융 본격화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다. 정부의 정책 의지도 중요한하다. 지난주 국무회의 안건으로 기후금융이 다뤄진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국회와 정부의 이러한 의지에는 분명히 희망이 보인다.
기후금융은 단순히 녹색 상품을 파는 상술이 아니다. 30년 넘게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국가 경제를 일궈온 이웃의 일터를 지키고, 그들이 녹색 산업의 주역으로 거듭나게 돕는 따뜻한 금융의 다른 이름이다. 탄소중립기본법이 선언한 2050년의 푸른 하늘은, 오늘 우리가 건네는 기후금융의 온기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기후금융은 후회 없는 선택이자 유일한 방향이고, 우리가 끝까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유인식 IBK기업은행 경영전략그룹 ESG경영부장(공학박사) yuinsik@ib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