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고대 로마의 광장, 포룸(Forum)에서 가장 무서운 형벌은 사형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록에서 이름을 지우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기록말살형(Damnatio Memoriae)'이었다. 이는 국가의 반역자나 수치스러운 인물에게 내려지는 가장 불명예스러운 형벌이었다. 단순히 생명을 끊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모든 흔적을 공적 영역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네로 황제가 대표 사례다.
2026년의 대한민국은 물리적 광장을 넘어선 거대한 디지털 공론장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공간에서 가장 위협적인 현상은 고대의 기록말살형과 닮아 있다. 다만 방식이 다르다. 지워지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공동체의 '관심'이다. 극단적 진영 논리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시민들은 판단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광장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럽지만, 시민들은 침묵 속에서 '디지털 광장의 유령'이 되어가고 있다.
이 지점에서 문제는 단순한 무관심을 넘어선다. 시민들이 고개를 돌려버린 자리에는 '거버넌스의 진공'이 발생한다. 물리학에서 진공이 주변을 끌어당기듯, 권력도 예외가 아니다. 시민의 관심이 빠져나간 공간은 결국 권력의 독점이나 사적 이익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과거의 거버넌스가 통치자의 '시혜'에 기대어 작동했다면, 다가올 넥스트 거버넌스의 동력은 시민의 비판적 시각이다. 실제로 주요 선진국의 거버넌스는 시민의 비판과 참여를 핵심 축으로 삼는다. 이는 권력의 사유화를 막는 핵심 장치다. 일상의 감시와 공론장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기본 조건이다. '거버넌스의 진공'을 공공의 이익으로 환원하는 힘도 여기서 나온다.
100원의 세금 인상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수조 원의 공적 자금이 시스템의 균열을 타고 사익으로 흘러가는 데에는 무감각한 현실. 이는 국가를 '나의 미래를 설계하는 공동체'가 아닌, '나와 분리된 대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선진국은 다르다. 민간이 주도하는 독립적 싱크탱크가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고, 시민들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은 사회 구석구석까지 닿는다. 이 두 축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아무리 외형적으로 성장해도 내부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경제 성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시민 의식은 결국 국가라는 거대한 배를 낡은 관행의 늪에 빠뜨리고 만다. 성숙한 거버넌스는 국가 시스템의 균형 잡힌 작동을 감시하고 조절하는 '공동 설계자'로서의 시민을 요구한다. 우리의 관심이 결과를 넘어,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의 공정성으로 확장될 때 국가는 건강한 구조를 회복할 수 있다. 관찰되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그리고 질문하지 않는 시민은 그 대가를 가장 먼저 치른다.
이제 문제의 본질은 분명하다. 기술이 아니라 시민의 의지가 국가의 방향을 결정한다. 성숙한 시민 의식이 결여된 디지털 강국은 화려해 보일 수는 있지만, 결국 공허함을 축적하는 구조적 사막으로 변할 위험이 있다. 우리의 질문과 의견이 쌓일 때, 그것은 권력을 견제하는 힘이 된다. 그 힘이 대한민국 거버넌스를 흔들리지 않게 지탱한다.
대한민국을 경제적 선진국을 넘어 철학과 문화가 숨 쉬는 선도국으로 이끌 넥스트 거버넌스의 완성은 깨어 있는 시민의 의식에서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방관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건설자가 될 것인가. 최근 뉴스 한복판에서 홀로 외치는 한 검사의 모습은, 그 시비(是非)를 떠나 우리 사회의 '침묵의 성벽'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결국 그 장면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지금 우리의 시민 의식은 과연 깨어 있는가.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