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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 음식문화연구자
저마다 찾는 새봄의 별미가 하나쯤은 있을 테다. 살짝 고백하면 내 새봄의 별미는 도다리 물회이다. ‘여름도 아닌데?’ 하실 분도 있겠지만, 물회가 오직 한여름만을 기다리는 음식은 아니다. 그 정의부터 살펴보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는 이렇다. “갓 잡아 올린 생선이나 오징어를 날로 잘게 썰어서 만든 음식. 잘게 썬 재료를 파, 마늘, 고춧가루 따위의 양념으로 버무린 뒤 물을 부어서 먹는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의 설명은 이렇다. “… 강원도와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고추장을 기본 양념으로 사용하며, 강원도 물회에는 식초가 첨가되어 새콤하고 달콤한 이색적인 맛을 즐긴다. 경상남도와 제주도 지역에서는 된장의 담백한 양념을 기본으로 사용하되 특히 제주도 물회는 육지에서 즐기는 물회와 사뭇 다르다. 싱싱한 생선과 채소를 썰어 넣은 후 물을 붓고 생된장을 풀어 만드는 물회로, 국의 일종으로 본다. …” 이상 물회의 모습이 얼추 그려진다.
사전보다 조금 더 들어가보자. 다른 무엇보다 물회의 원형은 요리나 안주가 아니라 밥이었다. 뱃일을 마친 배 위에서는, 또는 어촌에서는 쌀과 잡곡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생선살을 듬뿍 얹은 한 끼로 대신했다. 그래서 물회에는 한 숟가락이라도 뜨거운 밥을 곁들이려 했다. 물기는 자작한 정도였고, 채소라야 양파와 고추가 전부였다. 양념은 고추장이나 초고추장이 다였다.
여기에 굳이 설탕을 더해 단맛을 내려 하지 않았다. 오늘날 ‘새콤달콤’이 물회의 기본값이 되었지만, 음식에 굳이 ‘달콤’까지 추구할 이유가 없었다. 밥으로 먹는데 무슨 ‘달콤’인가. 그저 이만큼 비볐고, 한여름이면 냉수를 더하거나 얼음을 띄웠다. 새봄이라면 얼음 없이도 충분했다. 물횟감은 원래 찬 기운을 지닌 재료이다. 그 차가움이 열을 내는 고추장을 만나고, 뜨거운 밥과 어우러져 서늘해진 속을 달래는 고마운 한 끼가 되었다.
지역색도 되돌아볼 만하다. 강원도와 경상북도가 만나는 바다의 물횟감이라면, 역시 가자미이다. 잡히면 광어도 섞었다. 이 지역의 오징어 물회는 마침 한국인의 여름 관광철과 맞아떨어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울릉도에서는 꽁치 또한 물회로 먹었다. 묵호에서는 청어 물회를, 주문진에서는 한치 물회를 먹었다.
제주에서는 물횟감으로 자리, 한치, 군부(군벗)를 손꼽았고 그 양념은 된장이었다. 워낙은 있는 대로 뜨고 썬 막회를 고추장 또는 초고추장에 자작하게 비벼 내면 다 물회였다. 생선살을 고춧가루에 버무린 뒤에 냉수를 끼얹는 방식도 있었다. 농어, 쥐노래미, 해삼, 멍게, 전복, 도미, 금태도 썼다.
이 원형이 요식업에 편입되면서 물회는 점점 화려해졌다. 지역과 무관한 각종 패류와 채소, 과일이 부재료와 고명으로 덧붙었다. ‘잡히는 대로’ 만들던 물회의 일상성은 희미해졌다. 물회가 전국구 일품요리로 변모하면서 계절 또한 한여름으로 고정됐다.
현대의 명물 음식은 지역의 전통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발명’되기도 한다. 그리고 발명과 함께 무엇인가가 빠져나간다. 확실히 봄날은 사라졌다. 물회에 스며 있던 고추장과 고춧가루, 식초, 초피와 초피잎, 방아의 지역색도 함께 옅어졌다. 새봄 소담한 도다리 물회를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선가는 먹고 있을까.
고영 음식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