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알발라의 알아크사 병원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남성들의 시신 앞에서 주민들이 장례 기도를 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쏘아 올린 이스라엘군 영상이 한국 정치권과 외교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야권에서는 외교적 갈등을 유발해 국익을 해친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이 대통령의 ‘소신 발언’은 그동안 한국 사회가 제대로 논의하지 않았던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국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인 시신을 옥상에서 떨어뜨리는 영상을 공유하면서 “우리가 문제 삼는 위안부 강제,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했다. 해당 영상은 2024년 9월 이스라엘군이 서안지구에서 숨진 팔레스타인 남성 시신 3구를 옥상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은 즉각 반발했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이 대통령이 유대인 학살을 경시하는 발언을 했다”며 ‘반유대주의 프레임’화하며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과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통령은 번복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끊임없는 반인권적·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전 세계인의 지적을 한 번쯤은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이라고 꼬집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인 폭력에 대해 반인권적이며 국제법을 위반한 행위라고 끊임없이 지적해왔다. 하지만 한 국가 지도자가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 싱크탱크 퀸시책임국정연구소의 트리타 파르시 부소장은 “유럽 지도자들 가운데 이렇게 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해당 영상을 올린 팔레스타인 트위터 이용자 Jvnior은 이 대통령에게 “우리를 봐주셔서 감사하다”며 “우리는 침묵에 익숙해졌다. 당신 같은 지도자가 잠시 멈추고, 반성하며,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선택할 때, 그 고통은 간과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발과 이로 인한 한국 정치권의 공방은 어째서 팔레스타인이 ‘침묵’ 속에 놓여있는지를 방증한다. 이스라엘이 ‘유대인 학살’을 논하며 이 대통령을 규탄한 것은 바로 세계를 향해 침묵을 강요하려는 시도 중 하나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이스라엘 방위군이 팔레스타인 아동을 고문 뒤 유기했다는 내용의 영상을 공유하며 “우리가 문제삼는 위안부 강제, 유태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 엑스 갈무리
해당 영상은 2024년 9월이며 이미 “조사 및 처리”된 사건이라고 이스라엘은 밝혔다. 이 말의 진위도 따져봐야 한다. 이스라엘은 구체적인 조사 내용, 해당 군인의 처벌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인권 유린이 처벌받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것에 비춰볼 때, 이 사건 역시 흐지부지 종결됐을 가능성이 있다. 무장폭력반대단체(AOAV)의 지난해 8월 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이 가자·서안지구에서 발생한 전쟁 범죄 행위에 대해 2%만이 징역형이 선고됐으며, 88%가 기소나 위법행위 발견 없이 종결됐다.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는 팔레스타인·레바논 등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유엔 조사위원회는 지난해 9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제노사이드)를 저지르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가자지구 전쟁 휴전 6개월을 맞았지만 이스라엘군 공격은 지속돼 휴전 이후 738명이 사망했으며, 여전히 폐허 상태다.
이란 전쟁은 팔레스타인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가자지구로 유입되는 구호물자는 급감해 주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으며, 서안지구에서는 유대인 정착민 폭력으로 인한 팔레스타인인 사망자가 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행하며 홀로코스트를 기억·추모하는 것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했다. 집단학살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평가받는 유대계 미국인 오마르 바르토프 브라운대교수는 이스라엘이 집단학살을 부정한다면 홀로코스트 연구가 지켜온 가치 또한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환영할 일이지만, 시민사회의 지적대로 “너무 늦은” 것이기도 하다. 한국은 지난해 유엔 특별보고관이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에 F-35 전투기 부품을 공급한 19개 국가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며 이스라엘 집단학살에 공모한 63개국 중 하나에 포함되기도 했다. 한국은 아직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보편적 인권과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더 열심히 찾아봐야겠다”라는 이 대통령의 말대로, 이번 논쟁이 한국이 팔레스타인 문제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대해 ‘침묵’대신 ‘행동’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영경 국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