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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에서 일어난 혁명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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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24] 동학사상을 비롯 한말의 각종 민족종교에는 '후천개벽'이 큰 자리를 차지했다

▲ [목판화] 후천개벽도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민중들은 동학으로 모여들었다. 후천개벽, 다시개벽, 사람이 하늘인 세상을 열기위해 조선의 농민들은 동학과 함께했다. 목판화 후천개벽도는 현재 동학혁명기념관에 전시중이다.

ⓒ 동학혁명기념관

교조 신원운동에 나섰던 동학도인들이 충청도 보은에서 귀향할 무렵 호남의 도인과 농민 1만여 명이 전라도 금구현 수류면 원평리에서 별도의 집회를 열었다. 동학접주 전봉준·서장옥·황하일 등이 주도하여 서울 진격 문제를 논의하던 중에 보은집회의 해산 소식을 듣게 되었다.

조선 최대의 쌀농사지대인 고부 지방에서는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개항 뒤 쌀 수출이 늘어나면서 지주들이 소작농민들을 더욱 수탈했다. 또 이곳에는 조선 후기부터 왕실 소유의 토지인 궁방전이 몰려 있어 이를 관리하는 감독관의 농간으로 농민들은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조세 운반을 맡은 전운사 조필영이나 균전을 경영하려고 중앙에서 파견된 균전사 등도 제멋대로 세금을 거두어 정부에 대한 농민들의 반감을 부추겼다.

조선후기 세도정치가 극성을 부리면서 관리들은 돈을 주고 산 감투이니 본전을 뽑고 챙기려는 탐욕행위가 거칠것이 없었다. 부농은 그들의 먹잇감이었다. 견디다 못해 농민들이 곳곳에서 들고 일어났다. 역사에서는 이를 민란이라 부른다. 생존권 투쟁이었다.

어디보다도 가장 큰 불안이 감돌고 있던 곳은 전라도 곡창지대였다. 예로부터 호남곡창지대에는 부농이 많이 살고 있었으므로 여기에는 갖은 명목으로 세금을 받아가고 백성들에게 죄를 씌워 재물을 빼앗아 자기 몫을 삼는 관리들의 탐학이 가장 심하였다. 역시 이때에도 관기는 해이된 데다 민씨 척족 세도들 배경으로 한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때이니, 이곳의 방백수령들은 오는 사람마다 여기서 한 밑천을 뽑아 벼슬길을 트려고 광분하였다. 이에 당하는 것은 불쌍한 농민뿐이었다. 더구나 이곳에 동학이 성행하니 그들에게는 이것이 둘도 없는 구실이 되었다.

자기들 마음대로 온갖 명목을 다 붙여 세금을 뜯어갈 뿐만 아니라 효자·열녀·충신을 표창 기념하는 사업을 한다고 그 돈까지 물리는가 하면, 수령·아전·군졸들이 이중삼중으로 착취하니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따라 동학에 입도하고 접소에 모여 불평불만을 이야기하면 다시 나라에서 금하는 사교를 믿는다고 잡아가 매질을 하고 돈을 받은 후에 내보냈다.

그저 위나 아래나 모든 관리가 다 도둑이요, 강도였다. 백성들은 착취에 견디다 못해 집과 땅을 버리고 화전민이 되거나 유랑생활을 하였다.

동학은 창도정신에서 이미 사회개혁→혁명성을 담고 있었다. 선천(先天)이 기존체제라면 후천(後天)은 새로운 사회를 의미하며 개벽(開闢)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말한다. 최제우는 정신과 물질 현상이 근본적으로 혁신되어 새 세상이 된다는 뜻으로 '개벽운수(開闢運數)'를 제시하였다. 또한 천도교에서는 기미년 3·1혁명 후 <개벽> 이란 제호의 종합지를 창간하여 72호까지 내다가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된 바 있다.

동학사상을 비롯 한말의 각종 민족종교에는 '후천개벽'이 큰 자리를 차지했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 <정역>의 창시자 일부 김환, <증산교>의 창시자 증산 강일순,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등 신흥 민족종교의 공통적인 키워드는 우연인지 계시인지 공교롭게도 후천개벽사상이었다.

후천은 선천(先天)의 대칭개념으로 풀이되었다. 인지가 열리지 못하고 모순과 불합리와 상극이 지배하던 어두운 시대와 세상이 선천이라면, 인지가 열리고 합리와 상생이 지배하는 밝고 새로운 시대와 세상이 후천이라고 믿었다. 민족종교에서는 선천과 후천의 교역(交易)에 따라 선천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후천의 신천지가 열리는 것을 후천개벽이라 했다.

19세기 말에서 조선은 외세의 침범과 정치의 부패, 사회지도층의 타락과 국교인 유학의 쇠락으로 나라가 위기로 치닫고 있었다. 여기에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한국사회의 가치관은 근저에서부터 크게 흔들렸다. 이에 따라 당연히 말세론, 미륵불출현설, 각종 예언과 도참설이 나돌았다. 정감록과 민간신앙의 말세구원론과 메시아 신앙이 불안한 백성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이러한 결과는 홍경래난, 삼남민란, 동학농민혁명 등으로 폭발되기도 하고, 신흥종교 창시자들의 후천개벽사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덧붙이는 글 |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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