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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마다 열리는 버스킹 음악회, 학교에서 왜 이러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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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의 '번개 음악회'를 소개합니다

요즘 팔자에도 없는 방과 후 수업을 개설해 수업하고 있다. 몇 해 전 성대 수술을 받은 데다 한 시간 강의에도 목이 쉬는 경우가 많아 정규수업을 제외하곤 목을 사용하는 강의는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목에 좋다는 도라지와 배즙 등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지만, 효과는 신통찮다.

지난달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방과 후 수업을 개설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줄곧 손사래를 쳤는데, 더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사전 수요 조사에서 역사 관련 방과 후 수업을 원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교사의 첫 번째 덕목 아닌가.

방과 후 수업 주제는 '역사는 인물사'

이번 방과 후 수업의 주제는 '역사는 인물사'로 잡았다. 당시를 살다 간 주요 인물의 행적을 따라가며 관련 사건을 이해하고 시대를 읽어보자는 취지였다. 2~3일에 한 번꼴인 수업의 시의성을 위해 우선 수업하는 당일과 관련된 인물과 사건을 추려내 나열해 보았다.

일테면, 3월 23일(월)은 세계 기상의 날이어서 조선 세종 때의 과학자 장영실을 주제로 삼았고, 3월 26일(목)은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이어서 그의 생애를 조명하는 식이다. 역사 인물을 공부하고 관련 기념일을 기억할 수 있으니, '일석 이조'라고 여겼다.

아이들은 기념일과 인물의 조합을 낯설어하면서도 흥미로워했다. 장영실과 안중근이야 모르는 아이가 없었지만, 그들의 '인물 지식'은 딱 거기까지였다. 심지어 '북에는 소월이요 남에는 영랑'이라고 격찬할 정도로 잘 알려진 김영랑 시인조차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가 태반이었다.

공부를 곧잘 하는 아이들도 김영랑 하면 '시문학' 동인이라거나 순수 서정시의 개척자라는 대답이 전부였다. 그의 이름보다 그의 작품인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훨씬 더 유명했다. 수능 시험에는 시에 대해 질문할 뿐, 시를 쓴 시인의 생애에 관해 묻는 문제는 출제되지 않는다.

시를 수능 국어 영역의 출제 문항 정도로 여기는 강퍅함 속에 시인의 삶을 통해 역사를 공부하자는 건 과욕이었던 걸까. 그는 열일곱의 나이로 고향인 강진에서 3.1 운동을 주동했다. 준비 과정에서 모의 사실이 발각되어 체포된 뒤 대구 형무소에서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주동자인데도 비교적 형량이 적었던 건 그의 어린 나이 덕분이었다. 김영랑은 시인이기 전에 독립운동가였고, 일제의 민족말살 통치가 횡행하던 시절에도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한 지사였다. 민족의 참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일제의 편에 섰던 숱한 문인들과는 대조적인 삶이었다.

그가 주도한 강진의 3.1 운동은 3월 30일에 일어났는데, 이를 기념해 당일 김영랑을 주제로 삼은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읽는 대신, 그의 짧았던 생애를 따라가며 현대사를 공부했다. 해방 후 그가 이승만을 적극 도왔고, 6.25 전쟁 중 북한군에 의해 사망했다는 '덜 알려진' 사실에도 주목했고, 아이들은 적이 놀라는 눈치였다.

그나마 그는 수능에 종종 시가 출제되어 나름 익숙한 이름이지만, 다음 주제였던 김달삼은 무슨 전래 동화의 주인공이냐며 낄낄대기만 했다. 4월 3일에 맞춤한 인물이어서 정한 건데, 수업 시작도 전에 난관에 봉착했다. 물론, 그의 이름을 들어봤다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제주 4.3 항쟁(4.3)을 주도한 남조선노동당의 군사 책임자이자 무장대의 사령관이었다. 제주에서 태어나 대구에 유학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엘리트였다. 일제강점기 말 학병으로 징집되어 일본군 장교로 임관한 경력이 해방 후 문제가 되기도 했다.

본명인 이승진을 감춘 채 김달삼이라는, 아이들 말마따나 촌스럽기 그지없는, 이름을 사용한 건 그의 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 치안유지법을 앞세워 사회주의자를 탄압했던 일제강점기, 그의 장인이 사용하던 가명을 그대로 물려받은 걸로 전한다. 기실 해방 전후 우리나라 지식인의 팔 할은 사회주의자였다.

그의 이름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건 1948년 '4.28 평화 협상' 때다. 당시 9연대장이었던 김익렬과 유혈 사태의 평화로운 해결을 도모했으나, 서북청년단과 미군정의 방해로 결렬되고 말았다. 이후 제주도는 '빨갱이의 섬'으로 낙인찍혀 수만 명의 주민이 학살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협상 결렬 후 그는 제주를 떠나 월북했다. 북에서 내려온 서북청년단의 만행과 미군정의 연이은 실정을 경험한 그에게 북한은 조국의 해방을 위한 '기댈 언덕'이었다. 6.25 전쟁 직전 유격대원을 이끌고 남파되어 태백산 일대에서 게릴라 작전을 수행하다 전사한 걸로 알려져 있다.

김달삼을 주제 삼은 건, 현대사에 젬병인 아이들에게 무리였다. 그들은 4.3을 배경으로 한 <순이 삼촌>이나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의 소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심지어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름조차 아는 경우가 드물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당장 4.3을 난생처음 들었다는 아이도 있었다. 열여섯 살 고등학생인데도 말이다. 그런 그들에게 무장대니, 남로당이니, 단정 반대니, 평화 협상이니 하는 용어들은 되레 배움에 방해가 될 터였다. 그렇다고 맥락도 없이 유튜브만 틀어주기도 뭣한 노릇이었다.

'설명하는' 역사 대신 음악회로

김달삼의 생애를 통해 제주 4.3 항쟁을 이해시키려다 생뚱맞게 '번개 음악회'를 급조하게 됐다. 의기투합한 음악교사 같은 수학교사와 역사교사 같은 음악교사 등 열정적인 동교 교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민주주의와 관련된 기념일마다 '번개 음악회'는 계속될 예정이다.

ⓒ 서부원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했다. 애초 취지는 김달삼을 통해 4.3을 이해하는 것이었지만, 차라리 4.3을 통해 김달삼의 생애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게 나을 듯했다. 4.3 공부가 김달삼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는 동기로 작용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렇듯 고민 끝에 나온 묘안이 '번개 음악회'다. 버스킹 형식을 빌려 역사를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고', '들려주려' 했다. 특히 현대사에 대한 아이들의 무지는 비단 4.3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민주주의라는 대주제 속에 기억할 만한 날에 맞춰 노래로 추모하고 기념한다는 취지다.

4.3이 끝나면, 곧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11일)이고 얼마 안 있어 세월호 참사 12주기다. 다시 사흘 뒤면 4.19 혁명 기념일로 이어진다. 내달엔 올해부터 공휴일로 지정된 노동절과 5.18 민주화운동이 기다린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날들이 달력엔 차고도 넘친다.

거창한 행사는 아니다. 점심시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길어야 15분을 넘지 않도록 구성했다. 기념일과 관련된 노래 2~3곡을 선정해 공연하는 식이다. 무대도 아이들의 휴식 공간인 홈베이스 구석에 마련했고, 자유롭게 오며 가며 구경할 수 있도록 의자를 따로 준비하지도 않았다.

번갯불에 콩 볶듯 시작된 일이었지만, 의기투합한 동료 교사들이 있어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대학 시절 노래패에서 활동한 수학 교사와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음악 교사가 손을 맞잡았다. 웬만한 가수 뺨치는 실력파 영어 교사와 덩달아 동아리 아이들까지 힘을 보탰다.

악보만 공유할 뿐 별도의 연습은 없었다. 바쁜 일과 중에 그럴 만한 여유도 없으려니와 무엇보다 각자의 교과수업 준비에 지장을 주면 안 된다는 게 철칙이었다. 우스갯소리일지언정 '수준 높은' 공연을 지향하는 순간, 노래를 통해 기념일을 기억하자는 취지가 훼손된다고 봤다.

여하튼 생각지도 못했던 방과 후 수업이 엉뚱하게도 '번개 음악회'를 급조한 계기가 됐다. 올해 내내 계속할 각오로, 배너에 특정한 사건과 날짜를 적지 않고 민주주의라는 대주제만 새겨 놓았다. 인문계고등학교라는 현실적 제약을 고려하여 '점심시간 15분 원칙'은 지켜갈 것이다.

사족. 3일은 4.3을 대표하는 <잠들지 않는 남도>와, 직접적 관련성은 없지만 당시 희생된 분들의 원혼을 달랜다는 뜻에서 <진혼곡>을 선정했다. 제주도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걸 알린다는 뜻에서 <제주도 푸른 밤>이라는 아이들도 익숙해하는 대중가요도 중간에 끼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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