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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은 이거 먹지도 않나봐"... 선배가 오사카에 두고 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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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생존기] 두 달 남은 일본 생활, 이렇게 살고 싶다

도톤보리, 글리코상, 타코야키, 유니버설스튜디오, 우메다, 난바.... 오사카, 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입니다. 오사카라는 지명 뒤에 무슨 말이 가장 어울릴지 AI에게 물었더니 '여행'이라고 답을 합니다. 여기, 오사카 여행이 아닌 오사카살이를 시작한 특이한 중년 남성이 있습니다. 마천루가 즐비하고 네온사인과 휘황찬란한 불빛을 자랑하는 오사카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두리에서 오사카 주민으로 살아가는 중년 남성의 독거 일기를 시작합니다. 반년간 펼쳐질 좌충우돌, 실수 만발 오사카 생존기를 시작합니다. <기자말>

▲ 신학기 오사카대학

4월 오사카대학 도요나카 캠퍼스의 모습. 왼쪽으로 구내식당을 이용하기 위해 학생들이 줄을 서고 있다.

ⓒ 김용국

오사카에 벚꽃이 만개할 즈음, 대학 교정은 활기를 띤다. 일본 대학은 4월 초 새 학기가 시작된다. 벚꽃 아래서 도시락을 먹거나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함께 추는 학생들도 쉽게 눈에 띈다. 학교 앞 술집도 학생들로 가득 차다. 각종 동아리는 저마다 신입 회원을 모집하느라 과도한 '호객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청춘이 부럽기 그지없지만, 50대 객원 연구원인 나는 그저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대학이 근거지이지만 섣불리 끼어들 수 없다. 민폐일지 모른다. 그들과는 이미 30년이라는 세대차가 있고, 내 머리는 빠졌고 생각마저 늙어버렸다. 마치 파릇파릇한 나무 사이에서 고목이 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사실, 벚꽃에 '환장'한 나라에 살면서 활짝 핀 벚꽃을 보고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벚꽃은 한잎 두잎 사라져간다. 어느덧 오사카 생활도 넉 달로 접어든다. 연구원 생활도 이제 겨우 두 달 남았다. 돌아갈 날이 다가온다. 그동안 뭘 했나 싶다.

오사카 생활, 석 달이 지나자 힘들어졌다

▲ 우메다 스카이빌딩에서 바라본 오사카

오사카 우메다 스카이빌딩 공중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오사카 전경. 가운데 쪽엔 요도강이 흐르고 있다.

ⓒ 김용국

석 달이 지날 무렵인 지난 3월, 도쿄로 출장을 다녀온 뒤부터 힘이 들었다. 체력도 달리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에 부쳤다. 마음도 무겁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의욕도 바닥이라 연구원으로서 할 일과 직장에서 부여한 과제를 겨우 해낼 정도로 살아갔다.

30년을 향해 가는 직장 생활에 쉼표를 찍기 위해, 어렵사리 기회를 얻어서 오사카까지 왔건만 일본에서조차 힘들어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곱씹어보니 몇 가지 짚이는 게 있었다.

일단, 몇 달이 지나자 그다지 새로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엔 신선한 자극도 받고 문제의식도 갖게 되었지만 어느샌가 오사카 생활에 적응하면서 살아가기 급급했다. '일본은 원래 그렇고 그런 나라지'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돌고 있었다. 관광객도 현지인도 아닌,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어정쩡한 이방인이 나의 모습이었다. 물론 많은 일본인을 만나고, 대화를 하고, 술잔을 주고받았지만 그들에게 나는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다. 대다수 일본인들에게 나는 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그만인, 딱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나 역시 일본 문화에 적응이 된 건지, 새로운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에 매번 이런저런 이유로 '정중한 거절'을 반복하는 일본인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게 맘 편할지 모른다고 여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뿐 아니었다. 어느 결에 나는 다시 한국에서처럼 일상에 쫓기고 있었다. 강의 수강, 발표 수업 준비, 연구 과제 정리, 출장, 일본어 공부에 허덕이고 있었다.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빨리,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갈아 넣었던' 과거의 나를 보는 듯했다. 이러려고 오사카까지 온 게 아닌데.

동료의 충고 "천천히, 잘 하려고 하지 말고"

▲ 주말의 오사카 도톤보리

주말 오사카 도톤보리에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 김용국

지치고, 허전하고, 공허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동료 두 명이 4월 주말에 오사카로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업무로 만난 사이는 아니다. 정기적으로 만나서 독서 모임을 하던 선배와 후배였다. 그 무렵 출장과 발표수업 준비로 바쁘고 의욕도 바닥까지 떨어졌지만, 반가움이 앞섰다. 게다가 오사카 오기 전에 바쁘다는 핑계로 변변한 인사도 못한 채 떠났던 터라 미안함까지 겹쳐 가이드를 하겠노라 자처했다.

두 사람 모두 오사카가 처음이라 하루는 시내 쇼핑, 우메다 스카이빌딩, 츠텐카쿠, 덴노지, 오사카성, 도톤보리 등으로 동선을 짰다. 나머지 하루는 산과 자연을 좋아하는 그들을 위해 맞춤형 여행으로 꾸몄다. 오사카 북쪽은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곳이 많다. 많이 걷고 오르기를 반복해서 선배는 그만 가자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들에게 절경을 보여주고 싶어 이곳저곳을 끌고(?) 다녔다. 대표적인 두 곳이 미노오 폭포와 이케다시에 있는 슈보다이라는 전망대였다. 숨을 헐떡이며 땀을 닦던 선배는 절경 앞에선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 미노오 폭포

오사카부 미노오시에 있는 미노오 폭포. 높이가 약 33m에 달하는 자연폭포이다.

ⓒ 김용국

▲ 내 길은 어디일까

오사카부 이케다시 소재 슈보다이 전망대.

ⓒ 김용국

"저기 멀리 해 지는 모습을 좀 봐, 아름답지 않아? 나무와 숲 색깔도 한국과 달라. 공기도 좋고. 이렇게 좋은 데 살면서 여유도 갖고 좀 즐겨봐."

동갑내기 후배 역시 나에게 "여기 있을 때라도 뭐든 천천히 하고, 그리고 뭘 좀 잘 하려고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냥 웃어넘겼지만, 내 일상이 어떤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나의 여유 없는 표정에서 강박관념과 피로감, 조급함이 남아 있다는 것을.

그들은 나를 위해 한국 음식을 바리바리 싸 왔다. 이제 갈 날이 두 달밖에 안 남았으니 제발 조금만 가져오라고 통사정했는데도 손이 큰 그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배추김치, 갓김치, 파김치에 집에서 담근 고추장과 된장, 고춧가루, 찌개용 육수까지 공수해 왔다. 조미김, 찰떡파이와 추억의 건빵은 덤이었다. 하루 세 끼를 한국식으로 먹어도 남은 두 달 충분히 생존할 수 있는 정도의 양이다. "이걸 다 어떻게 먹으랴는 거냐"라고 언성을 높였지만 나를 위한 배려라는 걸 왜 모르겠는가.

▲ 동료들이 가져온 한국음식

오사카여행을 온 동료들이 가져온 한국음식. 배추김치, 갓김치, 파김치에 집에서 담근 고추장과 된장, 고춧가루, 찌개용 육수까지 공수해왔다. 조미김, 각종 찰떡파이와 추억의 건빵은 덤이었다. 사진에 없는 한국음식까지 포함하면 남은 생활동안 다 먹기도 힘들 정도의 분량이다.

ⓒ 김용국

마지막 날 아침 내가 지내는 오사카 대학에서 함께 숲길과 산길을 걸었다. 선배가 어느 언덕에서 갑자기 발길을 멈춘다. "여기 달래가 있네. 여기 사람들은 먹지도 않나봐." 시간이 없다는데도 한사코 달래를 캔다. 선배는 숙소에서 달래를 씻은 뒤, 뿌리에 흙이 빠지도록 물에 담가두고 떠났다.

공항으로 향하면서 선배는 "친절한 가이드 덕분에 잘 지내고 간다. 오사카에서 아예 가이드로 먹고 살아도 되겠다"라며 고마워했다. 하지만 정작 고마워할 사람은 나였다. 오사카에서 지치고 힘들 무렵 나타나 나를 위로해 주고 쉼표를 찍어준 두 사람이 나의 구원군이었다.

일행이 떠난 뒤 통장을 확인해 보니 정체 모를 돈이 들어와 있었다. 그 무렵 한국에 도착한 선배가 문자를 보내왔다. "가이드 잘해서 주는 팁이니 남은 두 달 잘 즐기다 와."

그날 저녁은 선배가 캐놓은 달래에 감자, 두부를 넣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반찬으론 갓김치에 파김치만 놓았는데도 진수성찬이다. 전부 일본 와서 처음 먹는 음식들이다. 한국 음식이 이렇게 훌륭했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날 밤은 후배가 지금 나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던 영화를 보았다. <행복의 속도>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여느 때였더라면 시간 낭비라고 여겼을 테지만 그날은 잠자리에 누워서 노트북으로 느긋하게 감상했다.

영화는 보존지구로 지정돼 차가 다닐 수 없는 일본의 국립공원 내 산장으로 짐을 나르는 짐꾼(봇카)들의 이야기다. 10km의 거리를 80kg의 짐을 메고 오가는 만만찮은 직업이다. 봇카들은 걸음걸이와 짐을 지는 방법이 저마다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멀리서 뒷모습만 봐도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라고. 각자의 생존방식일 테다.

"자기의 페이스로 가면 괜찮구나"

영화엔 두 가지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이 아들과 함께 별을 보기 위해 밤길을 걸으면서 던지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10초만 눈을 감았다가 하늘을 봐, 그럼 별이 잘 보일 거야."

아들은 열을 세고 하늘을 바라본다. 아까와 달리, 마치 하늘에서 별이 쏟아질 듯하다. 살면서 해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차분히 숨을 고르고 한 번쯤 여유를 갖고 다시 바라보라는 충고로 들렸다.

또 하나는 산장에 짐을 날라 준 뒤 차를 마시는 장면이었다. 주인공에게 일이 힘들지 않냐고 산장 주인이 질문을 던진 뒤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는다.

"천천히 가면 돼요. 누가 기다려서 서둘러 갈 땐 지치는데..."

"자기의 페이스로 가면 괜찮구나."

순간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동안 누구를, 무엇을 의식하고 살아온 걸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포장할 이유도 없는데. 그저 묵묵히 내 길을 가면 되는데. 나만의 호흡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빨리, 완벽하게만 가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좋아하는 길도 각자 다르다.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도착할 테고, 아주 틀린 방향만 아니라면 누군가와는 또 만나게 될 텐데 나는 왜 그다지도 조급해하고 초초해했던가.

동료들의 오사카 방문과 영화 감상을 통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빠르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행복이고, 그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남은 두 달 오사카 생활은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 고민하는 여정으로 여기며 이렇게 살려고 한다(물론 쉽지 않겠지만).

천천히, 서두르지 말 것, 주위를 신경 쓰거나 비교하지 말 것. 잘하려고 잘 보이려고 하지 말 것. 해야 할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우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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