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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탕과 백마라탕 사이, 급식실에서 시작된 작은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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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학교 급식실 게시판의 특별한 풍경… 초등학생의 입맛은 때로 민주주의보다 뜨겁다

급식 희망이 아니라 급식 메뉴 소원 칠판. 아이들에게 맛있는 급식 메뉴는 소원이 된다.

ⓒ 이준수

"학교에 밥 먹으러 와요!"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보면 '급식이 얼마나 대단한가'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반에는 언제나 '급식을 먹기 위해 학교에 온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었다. 물론 그 속뜻은 친구와 함께 먹는 점심 식사를 기다린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에도 급식 메뉴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다. 특히나 '급식 희망 메뉴'의 경우,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 음식이 등장하곤 한다.

우리 학교 급식실 벽 한편에는 게시판이 있다. 아이들은 익명으로 먹고 싶은 급식 메뉴를 신청한다. 특정 양식이 존재하지 않는 자유 공간이다 보니 아이들은 편하게 메뉴를 쓴다. 편하다는 의미는 어른의 사정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뜻이다. 영양소, 단가, 조리 난이도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추로스와 팝콘은 귀여운 축에 속한다. 육회와 파인애플 피자도 그럭저럭 납득 가능한 수준이다. '야채 많이 먹을 테니 탕후루'와 '페퍼로니 피자 껍데기에 치즈'와 같은 제법 구체적인 요구사항도 있다. 그러나 영양사님은 하나의 제안에는 확실히 불가 의견을 주셨다.

"캐비어(10억 원짜리)라고 적힌 메뉴는 예산 문제로 힘들 것 같습니다."

캐비어를 몇 알씩만 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어린이에게 캐비어란 경험해 보지 못한, 아무튼 비싼 환상의 음식이다. 모르긴 몰라도 직접 맛을 본다면 잔반통으로 향하게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1차 선정 메뉴로 '치즈 닭갈비'와 '초코볼 토핑이 올라간 떠먹는 요구르트'가 정해졌다. 닭갈비를 밀었던 6학년 여학생들이 환호했다.

아이들은 그냥 피자 말고 파인애플 피자, 그냥 요거트 말고 초코볼 토핑 요거트를 원했다.

ⓒ 이준수

논란의 중심에 선 메뉴는 '마라탕'이었다. 고학년을 중심으로 마라탕 수요가 두터웠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세계에서 가장 매운 음식은 일종의 '강함의 증명'이다. 불닭볶음면이나 마라탕을 몇 단계로 먹을 수 있느냐로 자신의 어른스러움을 과시하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마라탕이 희망 메뉴로 올라왔다. 그렇지만 즉각 반발이 나왔다. 맛과 향이 강해 못 먹는 아이들이 있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의견이었다.

여기는 전교생이 50명도 되지 않는 시골 학교이므로 스티커 찬반 투표로 바로 이어졌다. 작은 A4 용지 위에 형광 노란 스티커가 빼곡히 붙었다. 압도적인 찬성표였다. 초등학생들의 집념은 때때로 극한에 이른다. 찬성 스티커로도 부족했는지, 아이들은 붙임딱지에 메시지를 써서 붙이기에 이르렀다. "제발", "찬성", "마라탕 1000% 아니 100,000,000% 찬성" 등 충분히 예상 가능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반대 의견 쪽이었다.

"마라탕 못 먹는 친구들도 먹을 수 있는 백 마라탕! 제발요~"

단순한 반대를 넘어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자 다른 친구도 '백 마라탕 부탁'이라고 써 붙였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제안이었다. 가령 갈비탕에도 '매운 다대기 양념'이 따로 제공된다. 기본적으로는 맑은 국물의 안 매운 갈비탕이 나간다. 취향껏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마라탕이라고 안 될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선택지다.

나는 아이들이 원래 비치된 스티커만 쓰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아이들은 스티커에 담기지 않는 속마음을 전하기 위해 '급식 희망 메뉴용' 붙임쪽지를 가져다 썼다. 찬성과 반대안에는 수많은 세부 의견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세부 메시지에 반응했다. 게시판 하나가 타임라인으로 읽혔다.

찬성과 반대의 가운데 붙은 스티커는 뭘까? "마라탕 5월달 메뉴 반영 예정"

ⓒ 이준수

학교 급식은 이상하다. 한 끼 식사인데, 그 안에는 아이들의 하루가 걸려 있다. 좋아하는 메뉴가 나오는 날에는 아침부터 얼굴빛이 달라진다. 싫어하는 반찬이 나오는 날에는 세상이 잠시 무너진다. 그리고 가끔은 메뉴 하나를 두고 아이들이 배운다. 내 입맛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친구의 입맛도 한 식탁 위에 놓인다는 사실을.

사실 교사인 나도 내심 마라탕을 바라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극적인 음식은 될 수 있으면 줄이는 편이 좋다는 '직업적 이성'에 따라 자제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기회로 급식에서 마라탕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진심이다.

백마라탕은 조금 특별한 맛이 날 것이다. 그 국물 안에는 아이들의 고집과 배려와 협상이 함께 끓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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