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박에도 ‘파병 주춤’…움직이지 않는 국제사회
여론도 부정적·실익도 불투명…개입 명분 부족
파병 동력은 떨어졌지만…‘트럼프 청구서’ 변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4일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마크웨인 멀린 국토안보부 장관 취임식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워싱턴DC AP 연합뉴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 파견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선뜻 나서는 국가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동맹을 향해 “실망했다”, “기억하겠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해도 국제 사회는 꿈쩍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파병 동력이 떨어지면서 파병을 요청받은 한국도 일단 한숨을 돌린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전후 안보 기여도를 기준으로 미국이 내밀 ‘청구서’가 우려되는 상황에 당국은 기여 방안을 신중히 고심하고 있습니다.
흔들린 명분에 국제사회 ‘잠잠’…사라진 파병 동력
28일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6~27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등 미측 고위 인사들과 중동 상황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한국과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을 거론하며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정부 안팎에서는 여러 이유로 당분간 움직임의 변화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미국은 이란 공습에 대해 국제 사회에 명확한 명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 전직 고위 당국자는 26일(현지시간) “이번 전쟁은 다른 분쟁들과 달리 국제법적 구조나 틀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며 “2000년대 초 이라크 전쟁은 그래도 어느 정도의 국제적 정당성이 있었는데 이번 경우에는 그런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여론은 좋지 않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17∼19일 전국 만 18살 이상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호르무즈 해협에 우리 군함을 파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이 55%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파견해야 한다는 응답은 30%였습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게다가 이번 분쟁은 한국의 직접적 안보와 거리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작전에 참여하면 우리 장병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큽니다. 이란과의 관계 악화 역시 부담입니다. 에너지 수급과 중동 내 경제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섣부른 군사 개입은 외교·경제적 리스크를 동시에 키울 수 있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왼쪽) 일본 총리가 19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에 들어가며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 AP 뉴시스
다행인 것은 갈수록 파병 동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은 지난 19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자위대 파병에 선을 그었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본 법률 안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설명했다”고 밝혔습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우리로서도 힘이 실릴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연합작전 함대를 구성하기 위해선 지휘 체계가 결정이 돼야 되고 국가별 작전 구역과 임무를 분담해야 한다”며 “상호 운용성 등도 검증해야 하는데 짧은 시간에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미국도 이런 점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려되는 ‘트럼프 청구서’…정부, 기여 수준 고심
반대로 개입을 거부할 경우의 부담도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동맹 신뢰 약화는 물론 방위비 분담이나 통상 문제 등 다른 분야에서 압박이 이어질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좀처럼 예측이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무기 삼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뒤끝’에 대비해 주요국들은 ‘달래기’에 나선 모습입니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직접적인 파병에 선을 그으면서도 기여 방식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국, 프랑스 등 31개 주요국이 파병에 선을 그으면서도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에 기여하겠다는 공동성명에 참여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청해부대 1진(문무대왕함) 모습. 해군 제공
한국도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피하면서도 외교적 지지와 제한적 기여를 병행하는 ‘절충 전략’을 택한 모습입니다. 해상 안전 확보를 위한 비전투 지원이나 인도적·경제적 기여 등으로 동맹에 호응하는 동시에 실제 전투 개입은 최소화하는 방식입니다. 협력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실질적 리스크는 관리하려는 ‘관리형 대응’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현재 국제 사회는 전쟁 상황이 안정된 이후 호르무즈 해협 안정화에 기여하는 방안을 논의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 25일 영국 더타임스 등은 영국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해 30개국이 참여하는 다국적 연합체 구성 작업에 착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도 다국적 연합체에 참여할 가능성이 큽니다. 청구서를 피하기 위해선 전후에는 일정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유 위원은 “추후에 상황 전개에 따라서 미국이 어떤 형태로 요구를 할 수가 있다”며 “최대한 우리가 피해를 보지 않는 정보 공유 역할 등 낮은 차원의 개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