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대사질환은 물론 규칙적으로 약을 복용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잊지 않고 약을 챙기는 것도 일상의 중요한 일 중 하나다. 그런데, 이런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한 번 복용하면 일정 기간 꾸준히 약효를 발휘하는 일종의 ‘살아있는 체내 약국’ 기술이 나온 것이다.
‘호빗’이라고 이름붙여진 초소형 ‘살아있는 약국’ 시스템은 피부 밑에 이식하면 다양한 약물을 일정 시간 동안 꾸준히 체내에 투입해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는 불편함을 줄여준다. 미국 라이스대 제공
미국 라이스대, 노스웨스턴대, 카네기 멜론대, 조지아 공과대(조지아텍) 공동 연구팀은 유전자 편집 세포를 담아 체내에서 지속적으로 약물을 생산할 수 있는 초소형 장치 기술을 개발했다고 31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셀 프레스에서 발행하는 첨단 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 ‘디바이스’ 3월 27일 자에 실렸다.
이식 가능한 살아있는 약국이 수많은 질환 치료에 도움을 주지만 초소형 세포 공장은 ‘산소’라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생물학적 난관이 있었다. 유전자 편집 세포를 소형 장치 내에 빽빽하게 집어넣으면 세포들이 산소를 놓고 서로 경쟁하고, 결국 산소 부족으로 세포들이 죽어 장치가 생산할 수 있는 약물의 양이 줄게 된다. 또 전통적 바이오의약품들은 반감기가 제각각이라 여러 치료제의 혈중 농도를 동시에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웠다.
이에 ‘호빗’(HOBIT·이식 치료를 위한 하이브리드 산소화 생체전자 시스템)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번 기술은 세포가 필요로 하는 산소를 직접 생성할 수 있도록 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주변 물 분자를 분해해 산소를 생성하는 초소형 전기화학 장치를 설치한 것이다.
호빗은 유전자 변형 세포를 담는 세포 챔버, 소형 산소 발생기, 산소 생성을 조절하고 외부 기기와 무선으로 통신하는 전자장치 및 배터리 등 핵심 구성 요소로 이뤄진다. 장치 내부에서 직접 산소를 생산하기 때문에 저산소 환경에서도 세포는 안정적으로 약물을 생산할 수 있고, 좁은 공간에서도 훨씬 높은 세포 밀도를 유지할 수 있다. 호빗에 들어가는 세포 밀도는 기존 산소 공급 없는 캡슐 장치보다 6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유전자 편집 세포와 산소 생성 생체전자공학 기술을 결합한 호빗은 접힌 껌 한 통 크기로 수 주 동안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하게 한다.
연구팀은 에이즈 유발 HIV 억제 항체, 2형 당뇨 치료에 쓰이는 GLP-1 유사 펩타이드, 식욕과 대사를 조절하는 호르몬 렙틴 등 서로 다른 세 종류의 바이오의약품을 동시에 생산할 수 있도록 공학적으로 세포를 설계해 호빗 내에 투입했다. 이어 호빗을 생쥐의 피부 아래에 이식한 뒤 30일 동안 혈중 약물 농도를 추적했다. 그 결과, 실험 기간 동안 세 종류의 바이오의약품 농도는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산소 공급 장치가 없는 기존 장치를 이식한 생쥐에게서는 이식 7일 이후부터는 약효가 나타나지 않았다.
‘호빗’이라고 이름붙여진 초소형 ‘살아있는 약국’ 시스템은 피부 밑에 이식하면 다양한 약물을 일정 시간 동안 꾸준히 체내에 투입해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는 불편함을 줄여준다. 연구자가 ‘호빗’을 들어보이고 있다. 미국 라이스대 제공
추가 연구가 진행되면 ‘살아있는 약국’ 기술은 한 번 치료만으로 환자가 약의 복용 시간을 지키거나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부담을 줄여 만성 질환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연구팀은 기대한다.
연구를 이끈 조너선 리브네이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통합된 바이오하이브리드 플랫폼이 질병 치료에 얼마나 광범위한 잠재력을 가지는지를 보여준다”라며 “이번 기술처럼 생체전자공학과 세포 치료법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할 수 있다면 현재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복잡한 치료제를 전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