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은 동물에서 가장 오래된 감각 시스템 중 하나다. 그렇지만 인간은 영장류로부터 진화하는 과정에서 냄새를 맡는 후각 수용체를 코딩하는 기능성 유전자의 60% 이상을 상실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후각을 인간의 감각 중 덜 중요한 감각 시스템이라고 여겨 왔다. 다른 동물에 비해 기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밝혀졌지만 인간의 후각 수용체 유전자가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인간이 냄새를 감지하는 후각 시스템은 수천 년에 걸쳐 인류의 생활 방식과 식습관에 반응하며 진화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픽사베이 제공
이런 가운데 중국 푸단대 진화 생물학 연구센터, 말레이시아 IMU대 보건과학부 공동 연구팀은 축축한 흙냄새부터 잘 익은 과일향까지 인간이 냄새를 감지하는 후각 시스템은 수천 년에 걸쳐 인류의 생활 방식과 식습관에 반응하며 진화해 왔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생명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셀 리포츠’ 4월 16일 자에 실렸다.
인간 후각의 진화와 관련한 많은 연구는 수렵·채집인과 농경인처럼 서로 다른 생계 방식을 가진 집단들이 냄새를 묘사하는 언어도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한 바 있다. 현대인은 흔히 냄새를 표현할 때 친숙한 무언가와 비교하는 경향이 있지만 수렵·채집인들은 특정 냄새를 묘사하기 위한 매우 구체적인 어휘를 갖고 있다.
연구팀은 다양한 전통적 생활 방식을 가진 말레이반도 원주민 오랑 아슬리의 유전자를 연구했다. 오랑 아슬리는 수렵·채집인인 네그리토, 윤작 농업을 하는 세노이, 전통 농경민 말레이라는 세 개의 집단으로 구성된다. 연구팀은 각 집단별로 50명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전 세계인의 유전체 데이터와 비교했다.
분석 결과, 수렵·채집인 집단인 네그리토는 후각 수용체 유전자가 유난히 잘 보존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네그리토 구성원들은 특정 후각 수용체 유전자의 더 원시적인 형태를 갖고 있어 후각 기능이 다른 집단보다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네그리토 집단은 다른 집단에 비해 해당 유전자를 유지하려는 강한 진화적 압력이 존재하며, 이는 냄새가 채집과 사냥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봤다. 네그리토는 흙냄새, 과일 향, 허브 향 감지와 관련된 유전자를 보유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이 냄새들은 열대우림 환경에서 흔하며 식용 식물이나 잘 익은 과일과 연관돼 있다.
반면 농업에 더 많이 의존하는 집단들은 후각 수용체 유전자에서 더 큰 변화를 보였다. 이는 일부 유전자들이 신체 내 다른 기능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말레이의 하위 집단인 자쿤족은 다른 오랑 아슬리 집단과는 다른 형태의 ‘OR12D3’ 유전자를 보유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선 연구들에 따르면 이 유전자는 인슐린 대사와 연관돼 있다. 자쿤족 고유의 OR12D3 유전자는 혈당 수치를 엄격히 조절해야 하는 필요성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연구팀은 추정했다. 이는 그들의 생활 방식이 탄수화물이 풍부한 농경 식재료에 더 의존하기 때문이다.
연구를 이끈 리안 덩 중국 푸단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인간의 후각이 유전자, 환경, 행동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돼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후각이 농업 발생과 같은 주요 문화적 변화에 발맞춰 적응하면서 진화해 왔으며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