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 급증…기저전원으로 원전 재부상
2050년 400GW 목표…美 원전 생태계는 인력난
한국 건설 경험·고숙련 기술직 보유...EPC 경쟁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3일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지원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문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데일리안 = 백서원 기자] 미국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충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원전이 다시 전략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24시간 가동되는 데이터센터 급증으로 전력 수요가 늘어난 가운데 탄소 배출이 없는 안정적 기저 발전원 확보가 중요해진 영향이다. 이에 한국 원전 기업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2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미국 AI 데이터센터가 상시적인 대규모 전력을 요구하면서 무탄소 기저 발전인 원전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 최대 전력시장인 PJM의 용량시장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감지된다. 2027~2028년 적용 용량 요금은 2024~2025년 대비 877% 급등해 법적 상한선에 도달했다. PJM 지역에서는 2035년까지 63기가와트(GW)의 신규 실효 발전용량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030년까지 늘어나는 여름철 최대 전력 부하 32GW 가운데 약 30GW가 AI 데이터센터 등 신규 상시 부하에서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실효용량계수 95% 수준의 원전은 이 같은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핵심 용량 전원으로 평가받는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050년까지 미국 원전 설비용량을 현재 약 100GW에서 400GW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대형 원전 건설과 소형모듈원전(SMR) 확산을 병행하는 구상이다.
그러나 미국 원전 산업의 현실은 목표와 거리가 있다. 2013년 이후 신규 원전 착공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건설·제조 생태계가 위축됐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2050년까지 미국 내 200GW 규모의 신규 설비를 증설하려면 2035~2050년 사이 최대 27만명에 달하는 인력이 필요하다. 반면 현재 원전 관련 전문 인력은 1만5000명, 고숙련 인력은 1000명 수준에 그친다. 미국이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대규모 프로젝트를 단독으로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본사. ⓒ두산에너빌리티
이에 따라 미국은 비용 회수 구조 개선과 동맹 협력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규제 유틸리티나 연방·주정부 소유 전력회사가 건설비를 요금 기저에 포함해 회수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설계·조달·시공(EPC) 역량을 보완할 외부 파트너를 모색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한국이 대안으로 부상한다. 원전 수출국으로는 한국·미국·프랑스·러시아·중국이 있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지정학적 리스크로 미국 시장 진입이 어렵다. 프랑스의 경우 자국 내 원전 건설 지연과 비용 초과 문제를 겪어왔다.
반면 한국은 지난 50년간 국내 30기, 아랍에미리트(UAE) 4기 건설 경험을 통해 설계·조달·시공을 통합 수행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 2024년 기준 한국 원자력 산업 상시 근무 인력은 3만7341명이며 이 중 공급 산업체 인력은 2만645명이다. 다수의 고숙련 기술직과 기능직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도 경쟁력으로 꼽힌다.
기자재 측면에서도 차별화 요소가 있다. 미국에서 원전 건설과 공급을 위해서는 미국기계학회에서 만든 ASME 코드(BPVC)를 충족하고 N-Stamp 품질 인증 마크를 보유해야 한다. 미국은 1980년대 약 400개 업체가 900개의 N-Stamp를 보유했지만 2007년 기준 80개 업체·255개로 줄었다. 원자로 압력용기와 증기발생기 등을 제작할 초대형 단조 설비도 부재한 상황이다.
반면 한국은 미국 규격을 참조해 개발한 전력산업기술기준(KEPIC)을 기반으로 다수 기업이 ASME 인증을 확보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두산에너빌리티 협력 1차 벤더 42개사 중 25개사가 ASME NPT-Stamp를 보유하고 있다. 결국 조달 기간 단축과 건설비 절감 측면에서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허민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국전력은 미국 원자로 프로젝트 건설 참여뿐 아니라 팀코리아의 한국형 원자로 미국 진출, 현지 원전 기업과 프로젝트 지분 투자 방안도 고려 중”이라며 “한미 원자력 협정에서 고농축 저농축우라늄(HALEU) 생산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승인에 성공할 경우, 미국 4세대 SMR 사업 참여와 국내 관련 개발 사업도 본격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