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스라엘 공격에 맞서 이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유가, 운송·컨테이너 비용, 보험료 등 일제히 치솟아
지난해 이란 원유의 80% 구매한 中 고민이 깊어져
中, 정유사 불러 정제 석유제품 수출 일시중단 지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 오후 열린 백악관 행사에서 “(이란의) 최고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 UPI/ 연합뉴스
[데일리안 = 김규환 기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공습으로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까지 공격을 받는 바람에 원유 수입에 차질을 빚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제 유가 및 글로벌 원자재·물류 시장이 요동치면서 가뜩이나 내수 부진으로 어려운 중국 경제에 또 다른 위기의 파고가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대한 보복 조치로 지난 1일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틀어막았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유일한 해상 통로다. 전 세계 해상 원유의 25%, 액화천연가스(LNG)의 20%가 이 곳을 지난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이 수로는 가장 좁은 곳이 33km에 불과하다.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해상 병목지점(Choke-point) 가운데 하나인 해상 물류 요충지다.
미·이스라엘 공격이 강화되자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2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에브라힘 자바리 이란혁명수비대 총사령관 수석 고문(소장)은 "해협은 폐쇄됐으며 누군가 이곳을 지나가려 한다면 혁명수비대가 그 배들을 불태우겠다"고 욱대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필요한 경우 미 해군이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호송을 시작할 것”이라고 맞서자 이란 혁명수비대는 “역내 군사·경제 인프라를 완전히 파괴할 준비가 됐다”고 추가 경고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이란은 경고에서 끝나지 않았다.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3척의 선박이 페르시아만 연안에서 공격받고 한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2일 발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하루 평균 80척의 원유·가스 운반선이 통과하던 호르무즈 해협에서 하루 1~2척으로 급감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 해협을 통과하지 못한 선박 3000척 이상이 페르시아만 항구에 정박해 있다고 글로벌 해운시장 분석업체 케플러(Kpler)의 자료를 인용해 전했다.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직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시민들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이란 혁명수비대는 4일에도 호르무즈 해협에서 자국의 항행금지 경고를 무시한 10척 이상의 선박에 미사일 공격해 불태웠다고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등이 전했다. 모하마드 아크바르자데 이란혁명수비대 해군 부사령관은 “호르무즈 해협은 현재 혁명수비대 해군의 완전한 통제하에 있으며 석유 운반선과 상선 등의 통행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해협 봉쇄가 지속되면서 국제 유가를 비롯해 유조선 운송비용과 컨테이너 비용, 화물선 보험료 등이 일제히 뜀박질하기 시작했다. 이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3번째로 원유 생산량이 많은 만큼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란이 해협 바깥의 걸프해역(페르시아만)에 정박 중이던 유조선을 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되며 6일 미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배럴당 90달러(약 13만 3000원)를 돌파했다.
영국 런던 대륙간거래소(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의 5월 인도분 선물 종가도 배럴당 오른 92달러에 마감했다. WTI는 주간 기준 35.6% 폭등해 1983년 이후 선물 거래 사상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고, 브렌트유의 주간 상승률도 28%나 급등했다.
더욱이 전쟁 상황의 전개에 따라 국제 유가는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우드맥킨지는 호르무즈 해협의 유조선 통행이 신속하게 재개되지 않으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쉬무위 케플러 수석 원유분석가는 “이란이 해협을 단 하루만 막아도 원유 가격은 배럴당 120~150달러까지 폭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중동 지역 에너지 시설이 훼손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는 ‘심각한 시나리오’를 가정할 경우 국제 유가가 전쟁 이전보다 8% 상승해 배럴당 108달러 수준까지 치솟고, 이런 수준이 올해 4분기까지 지속될 것”이라며 원유 공급이 1% 감소할 때마다 국제 유가가 약 4%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던 선박을 공격했다고 주장하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의 게시물(왼쪽)과 이란 혁명수비대의 미사일 발사 훈련 모습. ⓒ AP/연합뉴스
헬리마 크로프트 RBC 캐피털마켓 글로벌 원자재 전략부문 총괄은 “이란의 통항 불가 통보는 시장에 즉각적인 공포를 심어준다”며 “실제 포격이 없더라도 선박들이 경로를 변경하거나 통과를 멈추는 순간 공급망이 마비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협이 실제로 봉쇄되면 국제 유가가 순식간에 배럴당 120~150달러를 상회할 수 있고 이럴 경우 전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고물가 현상)을 초래할 위험도 크다고 우려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란산 원유의 최대 구매국인 중국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케플러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이란 원유 수출량의 80% 이상을 구매했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를 하루 평균 138만 배럴 구매했는데 이는 중국이 해상으로 수입한 모든 원유량(1027만 배럴)의 13.4%에 해당한다. 중국 해관총서(海關總署·관세청 격)에 따르면 2024년 중국은 소비한 원유의 75%를 수입에 의존했으며 이 가운데 44%가 중동산이다. 중국 원유 수입량의 3분의 1가량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특히 중국은 그동안 값싼 베네수엘라산 원유 약 4.5%도 들여왔지만 올해 초 미국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권의 축출로 사실상 중단됐고, 이란마저 미국의 공격을 받음으로써 중국의 저가 원유수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미 싱크탱크 에너지연구소(IER)는 보고서에서 “마두로 정권이 축출되고 이란의 정치적 미래가 불확실해지면서 중국이 이점을 누리던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며 “이란에 정치적 변화가 일어날 경우 중국은 안정적이고 저렴한 석유 공급원을 하나 더 잃게 된다”고 분석했다.
유조선 운송비용과 컨테이너 비용, 화물선 보험료 등도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에 따르면 중동~중국 간 원유 수송항로의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200배럴 규모) 하루 운임은 49만 3100달러까지 올랐다. 전날 세운 역대 최고치(42만 3700달러)를 하루 만에 갈아치웠다. 연초(1월 5일 기준)에 2만 8700달러 수준이던 운임이 두 달 남짓 만에 무려 17배 넘게 폭등한 것이다.
ⓒ 자료: 연합뉴스
일반 화물을 나르는 컨테이너 시장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글로벌 3위 해운사인 프랑스 CMA CGM은 3일부터 중동·인근 13개국행 화물에 ‘긴급 분쟁 할증료’(ECS)를 도입했다. 1TEU(20피트 컨테이너)당 2000달러, 1FEU(40피트 컨테이너)당 3000달러, 냉동·특수 컨테이너엔 4000달러를 각각 부과하기로 했다. 화물주들은 수천 달러의 추가 운임을 떠안게 됐다.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보험료 역시 12배 가까이 폭등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과 인근 수역을 항해하는 선박 보험료는 선박 가치의 0.25% 수준에서 공습 이후 최대 3%까지 치솟았다. 이럴 경우 1억 달러 가치의 선박은 항해당 보험료가 25만 달러에서 300만 달러까지 껑충 뛴다. 해상보험 공백 우려도 커졌다. 가드와 스쿨드 등 주요 해상보험사는 5일부터 이란 인근·걸프 해역 전쟁위험 담보를 계약에서 제외하겠다고 통보했다. MSC 등 일부 선사는 아예 인도~중동 항로 일부 구간의 신규 화물예약을 중단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에 당황한 중국은 ‘경제 동맥’을 뚫기 위해 두팔 걷고 나섰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중국 에너지 운반선의 안전 통행을 확보하기 위해 이란 측과 물밑 교섭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5일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중동 원유와 카타르산 액화천연가스(LNG)를 운반하는 중국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이란 측과 긴급 협의 중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소유로 신호를 변경한 ‘아이언 메이든’ 호가 전날 밤 사이 해협을 통과하는 모습이 선박 추적 데이터를 통해 포착되기도 했다.
거시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國家發展改革委員會·국가발전개혁위)도 4일 원유수급에 차질이 예상됨에 따라 최대 정유사 경영진을 불러 구두로 “디젤·휘발유 등 정제 석유제품 수출을 일시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국가발전개혁위는 중국석유(中國石油·PetroChina)와 중국석화(中國石化·Sinopec), 중국해양석유(中國海油·CNOOC), 중국중화(中國中化)그룹(Sinochem) 등 중국 국유 에너지기업과 민간 정유사인 저장석유화공(浙江石油化工) 등을 향해 “신규 계약체결을 중단하고 기존에 합의된 선적분에 대해서는 취소 협상을 하라는 요구했다.
ⓒ 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등
중국 정부가 이 같은 조치를 단행한 것은 중국이 원유 외에도 화학 원료의 상당 부분을 이란에서 수입하고 있는 탓이다. 중국 경제매체 신랑재경(新浪財經)에 따르면 중국은 메탄올 수입의 45%, 폴리에틸렌(PE) 수입의 10%를 각각 이란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 원료는 요소와 플라스틱, 화학섬유, 코팅제 등의 필수 원료라는 점에서 “호르무즈 해협 폐쇄는 기초 화학·정유 부문이 가장 직접적 타격을 받고 정밀화학과 최종 제품 부문도 간접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신랑재경은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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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