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주주 권한 강화·이사회 견제 장치 확대 '개정 상법' 하반기 시행
기업들, 정관 변경 통한 이사회 구조 변경 '수성전'…자사주 소각도
삼성전자 제56기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2025년 3월 19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 총회장 입구에 주주들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데일리안 = 고수정 기자] 올해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개막했다. 개정 상법 시행을 앞두고 올해 정기 주주총회가 기업 지배구조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 장치를 마련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고, 행동주의 투자자와 시민단체는 주주권 확대를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결산 기준 상장법인 2727개사 중 211개사가 이번주 정기 주총을 개최한다. 주요 주총 일정은 ▲17일 현대모비스 등 ▲18일 삼성전자·삼성SDI·삼성전기·삼성SDS 등 ▲19일에는 LG디스플레이·한화오션·효성중공업 등 ▲20일에는 기아·효성·LG에너지솔루션 등이 예정돼 있다.
주요 상장사들은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상법 개정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지배구조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개정 상법은 소수 주주의 권한을 강화하고 이사회에 대한 견제 장치를 확대하는 것이 핵심으로, 올해 하반기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우선 오는 7월 23일부터는 감사위원 선임 과정에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 룰'이 확대 적용된다. 이어 9월 10일부터는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규정이 도입된다. 이 같은 제도 변화로 소수 주주가 이사회 구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비해 기업들은 정관 변경을 통한 지배구조 조정에 나서고 있다. 일부 기업은 이사 임기를 연장하거나 이사회 정원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사 임기를 연장할 경우 한 번에 교체되는 이사 수가 줄어들어 집중투표제 도입 이후 소수 주주 추천 후보의 이사회 진입 장벽이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주요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사회 구조를 조정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이사 임기 규정을 완화하거나 이사 정원을 줄이는 정관 변경안을 주주총회에 상정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분위기다.
한화그룹 계열 상장사들은 이번 정기 주총을 앞두고 이사 임기를 기존 '2년 이내'에서 '3년 또는 3년 이내'로 확대하는 정관 변경안을 일제히 주총에 상정했다. 삼성전자는 이사 임기를 '3년'에서 '3년 이내'로 조정하는 정관 변경 안건을 주총에 올릴 예정이고, 효성그룹 계열사들은 이사 정원 상한을 16명에서 7~9명으로 줄일 계획이다.
감사위원 선임 전략도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감사위원을 최소 두 명 이상 분리 선출하도록 하는 규정이 시행될 예정이어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감사위원을 추가 선임하거나 감사위원회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화오션은 이달 임기가 만료되는 감사위원 1명의 후임과 더불어, 총 2명의 감사위원을 신규 선임할 예정이다. 감사위원 자리를 미리 채워두면 분리선출 확대 시행 이후 소수 주주 추천 후보가 새로 진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일 수 있다.
주주환원 정책 역시 주총의 주요 이슈가 될 전망이다. 개정 상법은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를 일정 기간 내 소각하도록 하는 규정을 담고 있어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결정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일부 기업이 대규모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행동주의 투자자와 시민단체는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헤지펀드와 자산운용사는 확대,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독립 이사 선임 등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제출하며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시민단체 역시 특정 기업의 정관 변경 시도에 대해 비판하며 기관투자자들의 반대 의결권 행사를 촉구하는 등 주총을 둘러싼 논쟁에 가세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도 올해 주총에서 주목받는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대법원 판결로 임원이 자신의 보수 한도 결의에 참여하는 이른바 ‘셀프 보수 결의’가 인정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관련 의안 처리 과정이 보다 엄격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에서는 올해 정기 주총이 개정 상법 시행 이전 마지막 주총이라는 점에서 기업과 주주 간 이해관계 충돌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여러 기업에서 주주제안과 의결권 경쟁이 이어지며 이전보다 치열한 주총 시즌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개정 상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지배구조 변화에 대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 주주총회는 향후 경영권 안정성과 이사회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와 기관투자자들의 주주제안이 늘면서 예년보다 의결권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올해 주총은 기업과 주주 간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