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장관 "임명 방안 계속 검토 중"
원색 비난에 미사일 도발…여건 악화
북중 공조 강화 속 실효적 역할 의문
북한 노동신문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고 7월 1일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시스
[데일리안 = 김은지 기자] 정부가 다음 달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평화특사' 구상을 수면 위로 올렸다.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처하며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북한은 연일 무력시위와 원색적 비난으로 우리 정부의 개입 가능성에 선을 긋고 있다. 정부가 대화 국면 조성에 나설수록 남북 간 간극만 더 선명해지는 모양새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특사 임명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평화특사 임명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의 당부에 대해, 이 대통령이 관련 방안을 계속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정 장관은 지난해 말 통일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한반도 평화특사 임명 방안을 건의한 바 있다. 정부가 북미 대화 등 한반도 문제를 논의할 장으로 북한을 끌어내고,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정부의 이른바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구상은 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 문제 해결의 '피스메이커' 역할을 요청하고, 자신은 이를 뒷받침할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고 밝히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다만 최근 북한의 반응은 우리 정부의 기대와 거리가 멀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태양절·4월 15일)을 맞아 포사격 경기를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김 주석의 생일 당일 군사훈련 참관 사실이 공개된 것은 이례적이다.
김 위원장은 현장에서 "포병 무력의 적극적인 활용은 작전과 전투 나아가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된다"며 "인민군대는 앞으로도 당의 포병 중시, 포병 강화 방침을 받들고 포병 싸움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해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당국자는 "4월 15일 당일 김정은이 군사 훈련을 참관한 것은 처음"이라며 "이런 동향은 북한이 국방력 강화 기조를 보여주는 동시에 내부 결속의 의미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에는 구축함 최현호에서 진행한 전략 순항미사일과 함대함 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했다.
북한이 우리 정부를 향해 냉랭한 태도를 보여온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이 대통령이 지난 6일 대북 무인기 침투 사건과 관련해 북한에 유감을 표하자, 북한은 같은 날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 담화를 통해 이를 "대단히 다행스럽고 스스로를 위한 현명한 처사"라고 평가했다. 우리 정부는 남북 간 "신속한 상호 의사 확인"이 이뤄졌다는 낙관적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기류는 오래가지 않았다. 장금철 외무성 제1부상 겸 10국장은 다음 날(7일) 밤 담화에서 우리 정부의 해석을 "희망섞인 해몽"이라고 일축하며 "비루먹은 개들"이라고 원색 비난했다. 북한은 7~8일 잇따라 탄도미사일 도발에도 나섰다.
김민석 국무총리의 방미 직후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김 총리가 지난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그를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피스메이커'라고 치켜세우자, 북한은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장거리포병구분대 화격 타격훈련까지 공개했다.
정 장관은 이달 초 유럽연합(EU) 의회 외교위원장 일행과 만나 유럽연합(EU)이 중재하는 2+1 남북 정치대화 추진 검토를 요청하기도 했다. 북한이 남북 간 평화 기류에 선을 긋자 정부는 제3의 중재 틀까지 타진했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후속 논의나 진전 사항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중국과의 전략적 공조에도 힘을 싣는 모습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9~10일 평양을 찾아 최선희 외무상과 회담한 데 이어 김 위원장과도 만남을 가졌다. 이를 두고 향후 북미 대화 가능성에 대비해 북중이 사전에 공동 입장을 조율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이번 방북을 계기로 북중은 대외정책 기관 간 전략적 의사소통과 지지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김 위원장이 중국에 대한 연대 의사를 밝히는 과정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본토와 대만·홍콩·마카오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며, 중국의 합법 정부도 오직 하나뿐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우리 정부로선 다음 달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 대통령이 평화특사 임명을 현실화하더라도, 이를 실제 외교적 성과로 연결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과거 친분을 거론하며 대화 여지를 남겼고, 북한 역시 미국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적대시 정책 철회를 전제로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만큼 북미 접촉 가능성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서 한국 정부가 실질적인 역할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3월 말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이란과의 전쟁 격화를 이유로 일정을 5월 14~15일로 미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