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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는 세계를 얻었다…서울은 무엇을 얻었나 [허태윤의 브랜드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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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이라는 이름의 과잉, 남은 질문들

귀환이 아닌, 세계를 향한 전진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 발매 기념 컴백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빅히트뮤직, 넷플릭스]

[허태윤 칼럼니스트] 2026년 3월 21일 밤 8시. 광화문 광장 하늘에 성덕대왕신종의 울림이 퍼졌다. '딩' 하는 공명이 길게 이어진 뒤, 거의 1분에 가까운 정적이 흘렀다. 앨범 수록곡 ‘No.29’. 1300년 된 신라의 종소리가 21세기 팝 무대의 오프닝 신호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정적이 끝나자 경복궁 월대 위에 검은 옷을 입은 일곱 남자가 서 있었다. 걷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것만으로 장면은 완성됐다.

보라색과 붉은색 불빛이 600년 된 성문 위로 번졌다. 무대 뒤 광화문에는 미디어파사드가 쏘아졌다. 야외였기에 가능한, 건물 5층 높이의 거대한 큐브형 무대가 경복궁을 액자처럼 담았다. 넷플릭스의 수많은 카메라가 이 장면을 실시간으로 190개국에 쏘아보냈다.

3년 9개월의 공백이었다. BTS 멤버 전원이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마지막 완전체 공연의 제목은 ‘Yet To Come’이었다. 아직 오지 않았다는 뜻. 정국이 입대할 때 팬들은 ‘봄날’을 집단 스트리밍해 차트 1위에 올렸다.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나겠다는 약속이었다. 3월 21일, 그 봄날이 왔다. 그리고 이 공간, 광화문 광장에서 단일 아티스트의 공연이 열린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K컬처의 문법이 역사를 흡수한 순간

아리랑. 이 한 단어가 이번 공연의 본질을 담고 있다. 조선 시대에서 비롯돼 일제강점기에는 민족 저항의 상징이 됐고, 오늘날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민요. 한반도 전체의 비공식 국가(國歌)처럼 여겨지는 그 노래의 이름을, BTS는 약 4년 만의 첫 앨범 타이틀로 선택했다. 이것은 계산된 정체성 선언이다.

BTS가 선택한 것은 음악 스타일의 귀환이 아니었다. 정체성의 선언이었다. ‘다이너마이트’와 ‘버터’의 언어는 영어였지만 뿌리는 서울이었다. 이번에 그 뿌리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아리랑이라는 타이틀은 장르의 전환이 아니라 출발점의 확인이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세계 앞에 명시한 것, 그것이 이 앨범의 진짜 선언이었다.

두 번째 문화사적 의미는 플랫폼에 있다. 넷플릭스가 아티스트 단일 공연을 실시간 생중계한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었다. 서울 광화문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동시에 3억명의 디지털 공간으로 복제됐다. ‘공연’의 정의가 바뀐 밤이었다.

세 번째는 군 복무 서사가 만들어낸 전혀 다른 차원의 브랜드 자산이다. 세계 최정상의 팝스타가 국가의 부름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반 병사로 복무했다. 아무도 막지 않았고, 스스로도 피하지 않았다. 이 장면을 전 세계 팬들이 지켜봤다. J-호프가 무대에서 고백했다. “우리가 잊혀진 건 아닐까 두려웠던 순간이 있었다”는 그 솔직함이 오히려 그들을 더 크게 만들었다.

BTS는 ‘한국 청년’이라는 정체성을 전략적으로 숨기지 않았다. 애국심이 글로벌 브랜드 서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강요된 공백이 아니라, 진정성이 증명된 시간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 발매 기념 컴백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빅히트뮤직, 넷플릭스]

숫자와 지도 위에서 읽는 대한민국

경제적 수치들이 쏟아졌다. 앨범 발매 첫날 약 400만장 판매, Spotify 역대 K팝 최다 사전 저장 500만 건. 증권가는 앨범·투어·굿즈를 포함한 직접 매출을 2조9000억원으로 추산했고, 관광 효과까지 합산하면 전체 경제 효과가 최소 3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블룸버그는 광화문 공연 하루만으로 서울에 약 2660억원의 파급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팝 역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진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와 맞먹는 수준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이 공연의 효과를 ‘서울의 관광 수입’으로만 읽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하다. 광화문에서 시작한 BTS의 귀환은 지도 위에서 훨씬 더 큰 궤적을 그린다. 4월부터 시작되는 고양 공연이 본격적인 국내 투어의 출발점이 되고, 부산을 거쳐 34개국 82회에 걸친 월드투어로 이어진다. 이것은 서울만의 이벤트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 전체가 세계 무대에 오르는 사건이다.

3월 공연 전후 외국인 숙소 예약은 직전 주 대비 103% 급증했다. 3월 입국 외국인은 전년 동기 대비 32.7% 증가했으며, 공연 일정 발표 48시간 만에 해외 포털의 서울행 여행 검색량이 155% 늘었다. 중화권 41%, 미주·유럽 29.2%, 동남아 26.2% — 아시아를 넘어 전 지구적 유입이 확인됐다.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굿즈 매출이 전주 대비 190% 치솟는 동안, 화장품·백화점 주가가 일제히 상승한 것은 시장이 이 흐름을 선반영했기 때문이다.

BTS를 보러 한국에 왔다가 경복궁을 보고, 한복을 입고, 아리랑의 의미를 검색하는 여정. 이것이 K컬처가 국가 브랜드로 전환되는 실제 경로다.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광화문 공연 광고가 올라갔고, AP·AFP·가디언·CNN이 광화문을 배경으로 대한민국을 세계 시청자에게 각인시켰다. 외신들은 광화문의 역사, 아리랑의 의미, 성덕대왕신종을 집중 조명했다. 어떤 홍보 예산으로도 살 수 없는 방식으로 한국이 설명됐다. 소프트파워란 이런 것이다. 국가가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문화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힘이다.

그러나 세계가 대한민국을 바라보던 바로 그 시간, 서울은 스스로를 닫고 있었다. 경찰은 26만명의 인파를 예측하고 6700명의 경찰관을 포함한 1만2000명의 인력을 배치했다. 31개 건물을 봉쇄하고, 광화문~시청 구간 지하철은 33시간 동안 무정차 운행됐다. 공연 당일 세종문화회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서울시가 집계한 현장 인파는 약 4만명이었다. 하이브 측 추산(10만4000명)을 감안하더라도, 예측치에는 크게 못 미친다. 과도한 통제가 오히려 접근성을 낮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 발매 기념 컴백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빅히트뮤직, 넷플릭스]

첫 번째 질문이다. 안전을 위한 통제가 공연 본연의 의미 전달을 저해하지는 않았는가. 이태원 참사 이후의 트라우마를 고려하면 이해 가능한 선택이다. 그러나 아이러니는 분명하다. BTS가 광화문을 선택한 이유는 ‘열린 광장’이라는 공공성 때문이다. 경복궁의 역사, 시민의 공간, 세계를 향한 개방성, 그 상징을 무대로 삼았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금속탐지기와 차벽으로 둘러싸였다. 광화문이 전달했어야 할 메시지는 ‘개방’이었지만, 현실의 체감은 ‘통제’에 가까웠다.

두 번째 질문이다. 이번 공연이 외국인들에게 단순한 ‘이벤트 소비’에 그쳤는가, 아니면 ‘한국 경험’으로 확장됐는가. 공연은 입구였지만, 그 이후의 문화 동선은 닫혀 있었다. 광화문의 역사, 인사동의 공예, 경복궁 야간 개방 등으로 이어지는 체류형 콘텐츠 설계가 없으면 방문객은 공연 하나만 소비하고 떠난다. 국가 경험으로 확장되지 못한다.

세 번째는 플랫폼 주권이다. 넷플릭스의 선택은 현실적으로 최적이었다. 그러나 3억명의 시청 데이터와 팬덤 정보는 모두 해외 플랫폼에 축적된다. 다음 K콘텐츠의 방향을 좌우할 알고리즘 역시 한국이 아닌 외부에 있다. BTS 이후를 준비하는 전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귀환이 아니었다. 세계를 향한 전진이었다. 가장 멀리 나가기 위해 가장 깊이 들어간 선택. 아리랑은 이산과 그리움의 노래다. 그 노래를 3억 명이 동시에 들었다. 한국어를 모르는 이들까지도.

브랜드가 언어를 초월하는 순간은 설명이 아니라 체험에서 완성된다. 그날 밤 광화문이 그랬다. 이 공연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벤트가 아니다. 광화문에서 시작해 부산을 거쳐 34개국으로 이어지는 투어 전체가,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의 연속적 각인이다. 각 도시에서 ‘아리랑’이 울릴 때마다 한국의 역사와 정서는 함께 전달된다.

이제 질문은 한국 사회에 남는다. 안전과 환대를 동시에 설계할 수 있는가. 이벤트를 국가 경험으로 확장할 수 있는가. 플랫폼 주권을 위한 장기 전략을 구축할 수 있는가.

바르셀로나가 가우디 사후 100년이 지나도 ‘가우디의 도시’로 남은 이유는 그의 유산을 도시 인프라에 내재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BTS라는 현상을 어떻게 국가 시스템 안에 축적할 것인가.

월대 위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던 일곱 명이 무대로 걸어 나왔을 때, 그들은 단순히 한국을 대표하는 존재를 넘어 한국을 정의하고 있었다. 그 정의를 미래로 연결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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