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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에 가렸던 '광주 3·1운동' 주역…김범수 선생,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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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전 재학 중 2·8 선언 전파…주 3·10 만세 시위 주도

해방 후 가난한 이들 위한 ‘무료 진료’ 헌신

광주 3·1운동의 핵심 인물이자 평생 민중 의료에 헌신했던 김범수 선생이 서거 후 수십 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국가 서훈을 받게 됐다.

제107주년 3·1절을 사흘 앞둔 26일 오전 광주 북구청 광장에서 문인 북구청장·최무송 북구의회 의장 등이 대형 태극기 앞에서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유가족과 지역 역사학계에 따르면, 정부는 제107주년 3·1절을 맞아 김범수 선생에게 건국훈장 5등급인 '애족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김 선생은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시절인 1919년, 도쿄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 소식을 국내에 전하며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직접 등사기를 마련해 전남 장성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광주 지역 청년 조직과 연계해 만세 시위를 치밀하게 준비했다. 3월 10일 광주 장터를 중심으로 일어난 조직적 시위를 주도한 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의사가 된 김 선생은 고향 광주에서 '남선의원'을 열고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무료 진료를 펼치는 등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의료인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해방 후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사회운동에 참여했다가 냉전 정국에서 남로당 관련 인물로 분류되면서 그의 독립운동 공적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강제 징발되어 부상병을 치료했던 이력이 훗날 좌익 활동으로 오해받으면서 수십 년간 서훈 대상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의 공로는 유가족과 박해현 초당대 교수 등 지역 사학자들이 재판 기록과 당시 언론 보도 등 객관적 증거를 꾸준히 발굴하면서 마침내 세상에 드러났다. 이번 서훈으로 김 선생을 비롯해 광주·전남 출신 독립운동가 9명이 함께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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