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 KAI 활주로에서 KF-21 보라매 시제기(시험용 항공기)가 이륙했다. 이날 출고식 행사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은 "마침내 우리 대한민국은 땅과 바다에 이어 하늘에서도 우리 기술과 의지로 평화를 지키는 무기를 보유하게 됐다"며 "정부는 KF-21의 성공을 방위산업 4대 강국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KF-21은 성능 검증을 거쳐 연내 공군 전력화가 예정돼 있다.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대중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첨단 전투기를 우리 손으로 개발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사업은 곧바로 추진되지 못했다. 우리가 과연 이 전투기를 만들 수 있는지,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 수차례 타당성 검토가 반복됐고 사업은 10년 넘게 표류했다. 2015년 체계개발 착수 이후 비로소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고 이후 여러 차례 정권 교체를 거치는 동안에도 중단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말 체계개발 사업을 승인했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7월 시제기 출고식을 열었고 2022년 7월에는 초도비행이 이뤄졌다. 이후 사업은 현 정부까지 이어지며 양산 단계에 들어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방 우선순위와 예산을 둘러싼 논란은 반복됐지만 KF-21은 멈추지 않았다. 10년 6개월에 걸친 이 장기 프로젝트는 한국 방산에서 보기 드문 지속성을 보여준다.
이 긴 여정이 주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겉으로는 정권을 넘어선 국책사업처럼 보이지만 실제 과정은 순탄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도네시아 분담금 문제는 장기간 지연과 재협상을 거쳤고 개발 과정에서도 일정과 비용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다. 핵심 기술 확보 역시 여러 차례 난관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KF-21은 예정된 궤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2022년 7월 초도비행 이후 시험비행이 꾸준히 축적됐고 다양한 비행 및 무장 시험이 이어졌다. 2026년 3월에는 양산 1호기가 출고됐다. 2026년 하반기부터 공군 인도가 시작돼 2028년까지 일정 물량이 전력화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단순히 일정과 성과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KF-21 개발에는 약 600개에 이르는 협력업체가 참여했고 상당수는 중소기업이다. 이들은 개발 단계에서 선행 투자를 감수해야 했고 양산 일정에 따라 경영이 크게 좌우되는 구조에 놓여 있다. 하나의 전투기 개발 사업이 산업 생태계 전체를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수출 역시 아직은 가능성의 단계다. 여러 국가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확정 계약으로 이어진 사례는 제한적이다.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까운 글로벌 전투기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KF-21이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KF-21은 성공한 프로젝트인가. 기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산업적으로도 성공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아직 열려 있다. KF-21의 가치는 기체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축적된 것들에 있다. 항공기 설계 복합재 가공, 비행제어 소프트웨어 체계통합 능력 등은 분명 중요한 성과다. 그러나 그것이 지속 가능한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이 프로젝트는 일회성 성취에 머물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KF-21 개발에는 약 3000명에 달하는 엔지니어가 핵심적으로 참여했다. 여기에 협력업체 인력까지 더해지며 하나의 기술 생태계가 형성됐다. 항공우주 전공자뿐 아니라 기계 전자 소프트웨어 재료공학 등 다양한 분야 출신 인력들이 참여했고 부산대를 비롯한 전국 대학에서 배출된 공학 인재들이 현장에 모였다. 특정 분야에 깊이 몰입해 끝을 보려는 이른바 '덕후 기질'의 엔지니어들이 설계와 시험비행 전 과정을 주도했다는 점은 이전 사업과 분명히 다른 지점이다.
문제는 이 구조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느냐에 있다. KF-21은 기술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시간의 산물이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인력과 조직이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 같이 버티는 구조는 매우 취약하다. 한 번 무너지면 다시 만드는 데 또 다른 10년이 필요하다.
항공우주산업은 느린 산업이다. 기술은 축적을 통해 완성되고 실패와 반복이 필수적이다. 반면 자본은 빠른 성과를 요구한다. 이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그 균형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느냐다.
최근 방산산업을 둘러싼 구조 변화 속에서 KAI 역시 인수합병 M&A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만약 지배구조가 바뀐다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방식이다. 장기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했던 의사결정 구조와 현장 중심의 문화가 유지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3000명의 엔지니어와 수많은 협력 인력이 쌓아온 경험은 단순한 기술 자산으로 환산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축적된 방식이며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체득된 문제 해결 능력이다. 이런 기반은 단기간에 구축하거나 대체할 수 없다. 향후 KAI의 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분을 정리하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게 된다면 인수후보자의 적격성은 재무적 기준을 넘어 이러한 '축적의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돼야 한다.
전투기는 완성됐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전투기를 만들어낸 시스템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