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물결이 온다고들 말한다. 국경 간 결제와 자금 운용, 유동성 관리의 효율을 높이고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할 인프라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잇따른다. 글로벌 금융사들은 이미 파일럿을 넘어 실제 사업 단계로 움직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달 13일 세계 2위 스테이블코인 사업자로 불리는 서클의 제레미 알레어 최고경영자(CEO) 방한은 그 자체로 상징성이 컸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는 물론 금융권과 핀테크 업계까지 들썩였고 관련 보도도 잇따랐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서클이 한국에서 남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성과는 거래소와의 업무협약, 프로모션 계획, 금융권 및 핀테크 업계와의 접점 형성 정도에 머문다. 두나무(업비트)와 빗썸은 업무협약을 맺었고 코인원은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USDC 기반 프로모션 계획을 밝혔다.
물론 업무협약은 분명 의미가 있다. 시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이자 향후 협업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방한이 가진 무게를 감안하면 공개된 결과는 지나치게 초입에 머물러 있다. 교육, 기술 통합 검토, 협력 가능성 논의는 있었지만 그 너머의 그림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실질적인 외환 송금·정산 모델, 기업 간 결제나 무역대금 결제 실증, 법인 고객 대상 시범사업 같은 구체적 청사진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시장이 기대한 것은 단순한 만남이나 선언이 아니라 실제 자금이 오가고 기업이 써볼 수 있는 모델의 윤곽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세계 2위 스테이블코인 사업자인 서클이 직접 방한해 한차례 떠들썩했지만 정작 손에 잡히는 결과물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방한은 상징성과 화제성은 충분했지만 그 열기가 실제 사업 진전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후문이다. 물론 아직 논의 단계여서 외부에 공개하기 어려운 사안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글로벌 사업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는 흐름을 감안하면 국내 대응은 지나치게 더디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물론 이를 기업들만의 문제로 돌리기는 어렵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은 지연되고 있고 외국계 스테이블코인 사업자의 국내 진입 방식이나 법인 설립 의무, 라이선스 체계도 정리되지 않았다. 회계 처리와 재무 분류, 사업모델 검증 같은 실무 과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만나고 논의하는 것까지는 가능해도 곧바로 투자와 서비스 출시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바로 그 점이 더 뼈아프다. 스테이블코인을 두고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한국 시장은 아직 이벤트의 열기와 제도 공백 사이를 맴돌고 있다. 세계는 이미 스테이블코인을 실제 인프라로 옮겨가고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필요성을 설명하고 가능성을 검토하는 데 머무는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한국에 왔느냐가 아니다. 그 방문 이후 무엇이 실제로 굴러가기 시작했느냐다. 이번 서클 방한이 거래소 중심 협약과 원론적 논의로만 기억된다면 한국은 또 한 번 새로운 금융 흐름 앞에서 준비 부족만 드러낸 채 한발 늦게 움직였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물결은 이미 밀려오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뒷북만 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