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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경계’에서 사람을 살린다…중증 화상 환자 위해 24시간 불 밝히는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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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베스트병원] 화상 치료 - 베스티안병원

충북 베스티안오송병원 옥상 헬기장에 화상 응급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사진=베스티안재단

#지난해 12월 베스티안서울병원 응급실로 얼굴 전체에 시뻘건 화상을 입은 태국인 여성 A씨가 실려왔다. 경기 의정부시 자택에서 40대 남편이 커피포트로 끓인 물을 얼굴에 부었다고 했다. 진단은 2도 화상. 의료진은 폭행 및 학대 정황을 의심해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환자 A씨는 치료를 받는 동안 얼굴 전체에 망사 붕대를 감은 채 소셜미디어(SNS)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사건은 수사로 이어졌고 지난달 10일 남편은 검찰로부터 징역 3년을 구형받았다. 화상 치료를 마친 A씨는 무사히 일상으로 복귀했다.

#올해 2월에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10대 여학생 1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화재 현장에 있던 엄마와 여동생도 얼굴 화상과 연기 흡입으로 피해를 입고 베스티안서울병원으로 급히 이송됐다. 의료진은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모녀와 고통을 함께 나누며 성심껏 치료했다. 모녀는 화상 및 호흡기 치료를 받고 퇴원할 수 있었다.

뉴스에 나오는 화재 사고 뒤편에는 늘 이 병원이 있다.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나 서울 강남 구룡마을 화재 같은 대형 사고 때도 마찬가지였다.

2024년 강원 평창 LPG 충전소 폭발 사고 때는 전신 화상을 입은 환자 2명이 이송됐다. 발바닥을 제외하고 전신의 95%에 화상을 입은 환자 1명은 3개월간 견디다 끝내 사망했지만, 화상 면적이 80%였던 다른 환자는 생존 확률 5% 미만이라는 한계를 넘어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다.

베스티안병원은 한림대 한강성심병원과 함께 화상 환자들이 제일 먼저 이송되는 병원 1순위로 꼽힌다. 중증 화상 환자는 전문 인력과 응급 시설을 갖춘 병원에서만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은 대형 대학병원을 포함해도 전국에 10곳 안팎이다. 이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화상전문병원 5곳 중 3곳이 베스티안병원(서울 부산 오송)이다. 국내 민간병원 최초의 화상치료 전담 전문병원이기도 하다.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베스티안오송병원에는 전국 각지에서 헬기를 통해 환자가 실려온다. 지난해 3월 여수에서 전신화상을 입은 생후 7개월 아기가 헬기를 타고 이송돼 응급 처치를 받았고, 한 달 뒤엔 전주 페이퍼 공장 화재로 역시 전신화상을 입은 20대 남성이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베스티안병원 3곳이 한 해 치료하는 화상 환자는 약 7만 명. 이는 국내 전체 화상 환자(약 59만 명)의 12%(2024년 기준)에 해당한다.

그래픽=윤상선 디자이너

베스티안병원의 출발은 1990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문을 연 30병상 규모의 '순화의원'이다. 외과 전문의로 국립중앙의료원 의과학교실 전임의로 일하던 김경식 베스티안재단 이사장이 개원했다.

당시만 해도 외과 의사는 암 수술이나 장기이식처럼 '큰 수술'을 해야 폼 나던 시절이었다. 화상 분야는 달랐다. 드레싱도 힘들고, 몸도 많이 써야 하고, 돈도 벌기 힘든 '3D 업종'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김 이사장의 눈에 들어온 건 다른 병원에서 외면 받은 화상 환자들이었다. 치료를 제대로 못 받은 채 병원들을 전전하던 환자들이 순화의원으로 몰려들었다.

"국내에 화상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대학병원조차 없던 시기였어요. 화상 면적이 30%을 넘어가는 중증 화상 환자들은 치료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의대에선 화상 치료를 제대로 교육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요."

개원한 지 4년쯤 됐을 무렵 그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 있었다. 신체의 70%에 전기 화상을 입은 군인 환자가 찾아왔다. 환자를 꼭 살리고 싶었던 김 이사장은 퇴근 후에도 응급 상황이 생기면 병원에 달려가 치료를 하며 애를 썼다. 하지만 수차례의 수술과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결국 넉 달만에 숨졌다.

환자의 부모는 그의 손을 꼭 붙들고 울며 말했다. "다음에는…내 아들 같은 환자를 꼭 살려주세요."

그때 김 이사장은 다짐했다. 환자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화상 진료 전문의가 되겠다고.

"그 환자를 꼭 살리고 싶었는데…. 그때부터 저는 '환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의식을 갖게 됐어요. 늘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나. 내가 하는 치료가 최선인가'를 돌아보게 됐죠."

김경식 베스티안재단 이사장. 사진=최승식 전문기자

화상은 환자도 힘들지만 의료진도 쉽지 않다.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중증 화상 환자들의 생존 확률은 굉장히 낮다. 온 힘을 다해 환자들을 돌봐도 전날까지 멀쩡히 대화를 나누던 환자가 갑작스레 숨을 거두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다행히 생명을 보전한다고 해도 결코 화상을 입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

김 이사장은 그럼에도 매 순간 마음을 다잡고 최선을 다했다.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재 사고 때 실려온 10여 명의 환자를 모두 살려내 퇴원시키기도 했다. 그는 말했다. "작은 동네 의원을 운영하던 10년은 굉장히 힘들었지만 정말 보람찬 시기이기도 했다"고.

그 보람을 이어가기 위해선 단단한 토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화상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2002년 순화의원을 증축해 종합병원을 세웠다. 병원 이름은 '최고(best)'인 사람들이 모여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보겠다는 의지를 담아 '베스티안'이라고 붙였다. 몇 년 뒤에는 병원 경영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도 밟았다.

이후 2010년 부산에 이어 2018년 오송으로 화상전문병원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30개 병상의 작은 동네의원은 어느새 서울, 부산, 오송 등 3개 병원에 걸쳐 416개 병상, 직원 수백 명이 근무하는 베스티안재단으로 성장했다.

특히 베스티안오송병원은 중증 화상 치료의 핵심 거점으로 꼽힌다. 시설도 최첨단이다. 중증 응급환자를 빠르게 치료하기 위해 옥상 헬기 착륙장-중환자실-수술실로 한번에 이어지게 동선을 짰다. 중환자실은 감염 관리를 위해 3단계 격리 구역을 적용한 이중 블록 구조로 설계하고, 음압과 양압이 자동으로 전환되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런 첨단 시설 덕분에 코로나 감염병이 유행하던 시기에도 환자들을 무사히 격리할 수 있었다.

베스티안오송병원 내 3단계로 설계된 투블럭 구조 중환자실. 중환자실 병동 반대편 문을 열면 또 하나의 격리 구역이 나온다. 사진=베스티안재단

2012년 오송첨단의료산업복합단지에 임상시험센터 역할을 해줄 병원을 모집할 때 베스티안오송병원은 손을 들었다. 당시 다른 병원들은 입지의 불리함 등을 이유로 한 곳도 지원하지 않았다. 베스티안병원은 오송에서 병원과 임상시험센터, 스타트업 복합 모델을 지향하며 메디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청사진을 그려나갔다. 100병상 규모의 임상시험센터를 세우고, 화상 분야 특화연구를 메인 아이템으로 내세웠다.

의사들에겐 병원 중심 사업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라고 장려하면서 창업을 권했다. 덕분에 베스티안 소속 의사 및 관계자들이 창업한 바이오헬스 기업이 4곳이다. 줄기세포 배양액을 활용한 화상 치료제 개발, 화상 진료 기술 및 피부 이식 수술 개발 등 화상 피부 연구와 기술 노하우를 기반으로 한 내용이다.

그런 가운데 틈틈이 해외 의료 교류도 지속했다. 2015년엔 중국에 한중피부재건센터를 열고 중국 의사들에게 화상치료법을 가르치고 함께 연구했고, 타지키스탄, 모잠비크 등 해외 의료진을 대상으로 화상 진료 교육도 진행했다.

김 이사장은 "화상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지만 어려움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환자도 몇 명 안 보는데 시설에 과잉 투자를 한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도 있었다.

"초기엔 필요한 것들을 직접 연구하고 발전시켜 양질의 화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여기서 을 남겨 병원 발전에 쓰자고 계획했지만 맘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2012년 첨단복합단지 입주가 확정됐을 무렵엔 사회·정치적 분위기가 연구 중심 병원과 창업을 장려하는 분위기였지만 요샌 또 의료 바이오 업계도 인공지능(AI)으로 대대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고⋯."

화상 치료는 1년 365일, 24시간 대응 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대표 필수 의료 분야다. 환자 수와 관계 없이 항상 인력과 병상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운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런 구조적 어려움을 반영해 지난해부터 화상을 공급 감소 분야로 지정하고 수지접합, 분만, 소아, 뇌혈관과 함께 24시간 진료 지원금과 진료 협력 성과 보상 등을 주는 필수 특화 기능 강화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충북 오송 첨복단지에 있는 베스티안 임상시험센터 건물. 베스티안오송병원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사진=베스티안재단

김 이사장은 "화상 치료는 높은 중증도와 응급성을 요구하는 필수 의료 분야지만 성이 낮아 인력 확보도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화상 치료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의사는 전국에 40~50명 정도에 불과하다.

"외과 쪽에서 화상 분야 분과는 아직 따로 없습니다. 의대 졸업 후 인턴, 레지던트 과정 거친 뒤 화상 치료 경력을 계속 쌓아가면서 전문성을 쌓아가는 수밖에 없죠. 하지만 제대로 교육받은 후배들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현재 3개 베스티안병원 의료진 24명 중 10명이 화상 전문 의료진이다. 이전엔 30명 가까이 되는 화상 전문 의료진이 베스티안병원에 있었다. 전국 화상 전담 의료진의 절반 이상이 베스티안병원을 거쳤거나 현재 몸을 담고 있다.

이처럼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김 이사장은 "베스티안병원이 화상 환자들의 치료와 재활, 사회 복귀까지 무사히 돕는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하며 화상 치료의 중심 거점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화상 환자들은 다음 세대에도 계속 있을 것이고, 그들을 돌보기 위해 베스티안병원이 해야 할 역할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김경식 베스티안재단 이사장(오른쪽)이 화상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베스티안재단

김 이사장은 요즘 매일 2만~3만 보를 걷고 있다. 지금까지 화상 환자를 가장 많이 돌봐온 의사 중 한 명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화상 환자를 제대로 돌보기 위해선 체력 관리가 필수라는 생각 때문이다.

"중증 화상 환자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1년에 단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들이 무사히 치료 받고 사회에 복귀한다면, 다음 1년을 또 힘내서 버틸 힘이 되죠. 그렇게 힘을 내 계속 나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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