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3사, 2분기 연속 적자 전망
업계는 정부에 “세제 혜택 대신 직접 지원 해 달라”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가 올해 1분기에 모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회복세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분야에서도 아직 별다른 실적 개선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 영업손실이 2078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지난 7일 밝혔다. 아직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삼성SDI, SK온도 1분기에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0일 집계 기준 삼성SDI의 1분기 예상 영업손실은 2743억원, SK온도 3000억원 안팎의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추정된다.
LG에너지솔루션 미국 애리조나주 리튬인산철(LFP)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생산 공장 조감도./LG에너지솔루션 제공
배터리의 전방 산업인 전기차 시장은 여전히 위축된 상황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 혜택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9월 말 폐지되면서 꺾인 수요가 지금껏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6% 급감했다.
전기차 판매량 감소로 지난해 배터리 3사의 공장 가동률이 50% 언저리에서 머물면서 미국 정부로부터 지급받는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AMPC) 보조금도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미국은 배터리 회사가 자국 내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 팔면 1kWh당 일정 금액을 AMPC로 보전해 보조금을 주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 AMPC 수령액은 1898억원으로 지난해 4분기(3328억원) 대비 43% 줄었다. 삼성SDI와 SK온 역시 수령액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시장의 경우 올 들어 미국과 이란의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다시 전기차 수요가 살아나고 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승용 전기차 판매량은 7만2321대로 전년(2만8547대) 대비 153% 증가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반등한 전기차 판매량의 상당 부분은 미국 전기차 제조사인 테슬라에 쏠려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테슬라의 올 1분기 국내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35.1% 급증한 2만964대로 전기차 시장은 물론 전체 수입차 시장에서도 BMW, 메르세데스-벤츠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 기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량인 테슬라의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Y는 중국 상하이 기가팩토리에서 생산되는데, LG에너지솔루션 뿐 아니라 중국 CATL과 일본 파나소닉의 배터리가 탑재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1분기 국내 전기차 판매가 늘었지만, 국내 배터리 3사의 실적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며 “유럽,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의 전기차 수요가 늘어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BIXPO 전시회에서 공개했던 삼성SDI의 ESS 제품
최근 국내 배터리 3사는 ESS 사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기존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 라인을 ESS용 배터리 시설로 전환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지역 생산 거점 5곳을 ESS용 배터리 라인으로 바꾸고 있으며, 삼성SDI는 미국 인디애나에 있는 스텔란티스와의 합작 법인 스타플러스에너지(SPE)에서 ESS용 배터리를 만들 예정이다. SK온도 미국 조지아주 생산 거점을 LFP 배터리 라인으로 전환했다.
다만 ESS를 통해 실적이 개선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생산 라인 전환에 따른 비용 부담이 크고 ESS용 배터리는 전기차 배터리에 비해 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ESS에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주로 쓰이는데,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가격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그 동안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LFP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고 가격이 비싼 NCM(니켈·코발트·망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 개발·생산에 집중해 왔다.
다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ESS 판매 증가로 하반기부터는 점진적인 실적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ESS, 전기차 배터리 판매량이 함께 늘어나는 시점이 중요한데, 현재는 반등 시기를 모색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최주선 삼성SDI 사장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하반기에는 분기 흑자 전환을 달성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배터리 업계는 오는 7월 발표될 국내생산 촉진세제, 이른바 ‘한국판 IRA’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이 제도는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업종 기업이 국내에서 생산한 물량에 비례해 세금을 깎아주는 것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핵심 공약이었다. 배터리 3사의 국내 생산 비중은 10% 정도로 추산된다.
배터리 업계는 정부에 세금 감면이 아닌 생산 보조금을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적자 상태에서 세금을 줄여주는 것보다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게 기업에 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특정 산업의 생산 비용을 직접 지원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산업과 비교했을 때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정부 관계자는 “배터리 업계에 보조금을 지원해도 일회성으로 판매 가격이 낮아지는 것에 그친다면 효과는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며 “장기적으로 배터리 산업이 성장세를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원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