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도미사일과 이를 저지하는 요격미사일이 벌이는 '창과 방패'의 대결이 중동 지역을 달구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 이후 이란이 석유·천연가스 생산시설로 가득한 주변 국가에 무차별 미사일·드론 공격을 이어가면서다.
걸프국가들, 이틀간 이란 미사일 400발과 드론 1000기 90% 이상 요격
지난 1일 이스라엘 서남부 아슈켈론에서 이란 미사일이 요격돼 추락하는 모습./로이터=뉴스1
이란은 지난달 28일과 이달 1일의 이틀 동안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요르단을 향해 약 400발의 미사일과 약 1000기의 드론을 발사했다. UAE로 날아온 순항미사일은 8기가 모두 요격됐고, 탄도미사일은 174발 가운데 161발이 요격됐다. 드론은 689기 중 645기가 차단됐다. 요격률이 탄도미사일은 92%, 드론은 93%에 이른다.
UAE의 두바이에서 호텔 등 민간시설이 이란 미사일에 피격되는 모습이 전 세계에 방영돼 충격을 줬다. 하지만 이란이 실제 발사한 미사일과 드론은 지상에 떨어진 수량의 거의 10배에 이른 셈이다. 촘촘하게 구성했던 요격 시스템으로 이를 92~93%를 저지하면서 그나마 피해를 이 정도로 줄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고도의 정밀 시스템으로 공격해오는 미사일을 포착해 신속하고 정확한 요격 미사일 발사로 이를 떨어뜨리는 장비와 전술이 왜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주요 미사일 요격시스템인 미국산 사드의 발사 모습./사진=/로이터=뉴스1
사우디, 친이란 후티반군 미사일 공격에 2015년부터 '창과 방패' 익숙
사실 중동국가들은 이러한 '창과 방패'의 대결에 오랫동안 익숙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2014년 예멘 내전에 개입하자 후티 반군이 2015년 6월부터 두 나라를 향해 이란산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탄도미사일을 발사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2017년 11월에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킹 칼리드 국제공항을 향해 날아오던 미사일이 인근 상공에서 사우디 방공군에 요격되면서 실상이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요격된 미사일 파편이 공항 주차장까지 날아오고 이를 BBC방송이 전 세계에 보도하면서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이 그 전에도 있었지만 사우디 심장부의 민간공항까지 날아온 것은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당시 서방 정보당국은 이 미사일이 후티 반군이 이란에서 완제품을 들여온 것이거나, 부품을 받아 조립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란은 북한과 협력해 미사일의 성능을 개량해왔다.
여러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사우디는 미국산 패트리엇 미사일을 동원해 2015년 1월부터 2017년 4월까지 후티 반군의 미사일 100개 이상에 대해 요격을 시도해 90개 이상을 요격했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는 미사일 요격과 관련한 실전 능력을 크게 키웠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 실력이 이번 이란 미사일 발사와 요격 과정에서 발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드론 격추용 자동화기의 발사 모습./로이터=뉴스1
이란식 저가 드론 다량 발사 위협적…대비 전술·장비·훈련 절실
이란도 전술을 개량해왔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란은 고가의 탄도미사일과 저가의 드론을 다량으로 섞어 발사하는 공격으로 걸프 국가의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흔들려고 시도한다. 값비싼 무기체계인 사우디의 요격미사일을 저가 드론 격추에 낭비하도록 유도해 소진시킨 뒤 이란이 파괴력이 뛰어난 미사일을 나중에 발사하면 사우디로선 속수무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그야말로 '가성비 공격'을 할 수 있게 된다. 기술과 장비의 부족을 전술로 벌충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술 때문에 중동에서 미사일 창과 방패 전쟁은 물량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탄도 미사일과 요격 미사일의 재고가 떨어지는 순간 서로의 전쟁 능력을 바닥을 보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미사일 전쟁은 무기체계 획득을 둘러싼 경쟁으로 일어질 공산이 크다.
이스라엘이 개발한 드론 대응 레이저 무기체계인 아이언 빔의 발사 장면. /로이터=뉴스1
사우디, 150억 달러 들여 사드도 구입…러시아산으로 구매 다각화 시도도
과거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미사일과 요격미사일의 대결이 갈수록 격화하자 사우디는 필사적인 모습을 보였다. 일지감치 요격 미사일 확보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150억 달러를 들여 미국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도입했다. 미 의회의 승인을 얻기도 쉽지 않았다. 패트리엇이 공항이나 군 기지 등 시설 방어용으로 적합하다면, 사드는 작전 반경이 200㎞, 요격 고도가 150㎞에 각각 이르기 때문에 작전 지역 전체를 방어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석유 생산·선적 시설 등 지켜야 할 자산이 많은 사우디는 방공무기 확보 다각화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왔다. 2017년에는 살만 국왕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데리고 모스크바로 날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구매금액 20억~40억 달러 상당의 러시아산 최신 S-400 방공미사일 구매를 타진하기도 했다.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국가인 사우디가 미사일 방어를 위해 친미 일변도 외교 정책의 방향을 바꿔 러시아에도 접근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우디는 인권 문제 등을 들어 미 의회가 신속하게 미사일 구매를 승인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구입선 다각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요격 미사일 확보에 혈안이 됐던 걸로 볼 수 있다.
한국형 탄도미사일 요격미사일인 천궁-Ⅱ의 시험 발사 모습./로이터=뉴스1
미국산 사드와 패트리엇, 천궁-Ⅱ 등으로 다양하게 요격망 형성
이런 상황에서 UAE는 미국산 사드와 패트리엇, 이스라엘산 바락-8, 러시아산 판치르-S1, UAE 자체생산 스카이나이트와 함께 한국산 천궁-Ⅱ 미사일 요격망을 구성했다. 천궁-Ⅱ는 이번에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됐다. 천궁-Ⅱ는 최고 마하 5의 속도로 날아 고도 약 15~20㎞로 날아오는 적의 탄도미사일에 '직접 충돌(hit-to-kill)'하는 방식으로 요격한다.
카타르는 패트리엇 11개 포대를 갖추고 있으며 미국과 노르웨이의 합작 무기인 NASAMS2도 보유 중이다. 사드는 주문하고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합작인 롤란드 방공 미사일도 9개 포대를 운영하고 있다.
바레인은 패트리엇 1개 포대와 호크 대공 마사일 8개 포대를 운용한다. 미국과 스웨덴산, 프랑스산 등 다양한 대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준비되고 훈련된 상황이기에 이란의 탄도미사일 공격에 그나마 대응할 수 있었던 셈이다. 미국의 댄 케인 합참의장은 2일 기자회견에서 "카타르·UAE·쿠웨이트·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의 방공 포대들도 전투에 참전했으며 몇 년간의 훈련과 신뢰, 어렵게 얻은 통합성이 빛을 발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