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관리 가능한’ 위기의 설계
이민자 단속 사망ㆍ엡스타인 파일 등
중간선거 앞두고 위기 내몰린 트럼프
외교ㆍ군사 이슈로 지지층 결속 노려
지난달 11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제재 강화와 군사 옵션까지 거론하면서 든 명분은 이란의 핵 능력 고도화와 중동 지역 내 친이란 무장세력의 활동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안보 전략을 앞세운 ‘정치적 카드’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복합적인 국내 정치 리스크를 희석시키기 위해 외부의 적으로 시선을 돌리려 한다는 ‘왝더독(Wag the Dog)’ 프레임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주객전도 상황을 뜻하는 왝더독은 대통령의 성추문을 덮기 위해 가상의 전쟁을 기획한다는 설정을 담은 1997년 개봉 영화 제목이다. 그런데 이듬해 ‘르윈스키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직면한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실제로 수단과 아프가니스탄에 미사일 공습을 단행했고, 이후 외부 군사행동과 내부 정치 위기의 상관성을 지칭하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트럼프도 최근 여러 층위의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당장 강압적인 불법체류자 단속 과정에서 발생한 연이은 사망 사건은 언제든 화약고가 될 수 있다. 국토안보부와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일상적 무력 사용에 대한 반발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어서다. 강경한 이민 정책은 지지층의 결속을 도모할 수 있지만, 중도층 이탈을 유발할 수 있는 고위험 이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합지역 공화당 의원들조차 비판 대열에 합류하는 이유다. 여기에 사법부가 추가로 제동을 걸면 트럼프로선 통치력을 의심받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엡스타인 파일’은 인화성이 큰 사안이다. 현재까지 트럼프의 직접적인 형사 책임이 인정되진 않았지만, 두 사람이 돈독했던 데다 공개 자료 일부가 누락됐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어 후과를 가늠하기 어렵다. 중간선거를 겨냥한 ‘은폐 의혹’ 논란은 이미 진행 중이다.
통상정책 권한을 둘러싼 충돌도 마찬가지다. 연방대법원이 일방적 상호관세 부과를 위헌으로 판단하면서 트럼프는 핵심 통상전략의 법적 기반을 잃었다. 보편관세 부과가 단기 효과는 있겠지만, 중국은 물론 동맹ㆍ우호국과의 무역 전략 재정비 과정에서 안보-관세 연계 등의 정책적 혼란이 불가피해 중간선거에서 내세울 치적이 모호해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대이란 압박 강화는 정치적 계산과 전략적 판단이 중첩된 선택으로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언론과 의회에서 외교ㆍ안보 이슈가 부각되면 사법 판결이나 도덕성 논란의 주목도는 상대적으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또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 지위를 상실하면 각종 조사ㆍ청문회를 넘어 탄핵까지 추진될 수 있는 만큼 당내 결속 강화와 안보 이슈의 선거 의제화가 필수다.
이란 위기를 트럼프의 ‘국면 전환 카드’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외교ㆍ안보적 동기에 더해 대법원 판결과 각종 정치적 논란 이후의 국정 주도권 회복 의지와 중간선거에 대한 계산이 일부 작동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란 문제를 둘러싼 왝더독 논란은 협상 결과, 군사 옵션 수위, 여론 지형 변화 등으로 판가름나겠지만, 트럼프의 ‘약탈적 패권국’ 행태로 볼 때 중간선거가 다가올수록 또 다른 왝더독 논란이 이어질 가능성은 상당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