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인도 선박 해협 통과 공식 허용
"미국·이스라엘 동맹엔 1L도 허용 못 해"
2024년 7월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위안화와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뉴시스
전 세계 주요 에너지 항로인 호르무즈해협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이란이 일부 선박에 대한 '조건부 통항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중국 위안화 결제'가 주요 통과 조건으로 검토되고 있는데, 이 조치가 적극적으로 시행될 경우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의 지위를 뒤흔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미국과 이스라엘 및 이들을 돕는 국가의 선박과 유조선에는 공격을 지속하겠다는 경고도 내놨다.
미국 CNN방송은 13일(현지시간) 이란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 측이 모든 거래를 중국 위안화로 진행하는 선박에 한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침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중요한 건 실제 유조선의 해협 통항 조건이 '위안화 결제'가 될 경우 미국의 달러 패권을 약화시킬 수 있는 '위안화 결제 시스템(CIPS)'의 영향력이 넓어지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대부분의 원유 거래는 달러로 이루어졌으며, 이에 힘입어 달러화는 30여 년간 국제 시장에서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해왔다(페트로달러 체제).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러시아와 이란, 브라질, 인도 등이 달러 대신 위안화로 원유 대금 결제를 하기 시작했다.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망(SWIFT)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특히 최근에는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중국에 대한 원유 수출량을 늘리면서 위안화 결제 도입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비즈니스 전문 매체 유러피안비즈니스매거진은 "이 조건이 공식화될 경우 이는 50여 년에 걸친 페트로달러 체제에 가해진 가장 중대한 도전으로 미국의 세계적 패권을 뒷받침하는 금융 구조를 정면으로 겨냥하게 될 것"이라며 "서방 에너지 수입국들이 이미 감당하고 있는 '전쟁 프리미엄'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11일 오만 라스알카이마 북부에서 바라본 호르무즈해협 인근 페르시아만 해역에서 유조선들이 항해하고 있다. 라스알카이마(오만)=로이터 연합뉴스
14일 이란이 인도 선박의 해협 통과를 허용한 것도 CIPS와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모하마드 파탈리 주이란 인도 대사는 인디아투데이 인터뷰에서 "이란이 일부 인도 선박의 해협 통과를 허용했다"고 확인했으며, 실제로 이날 인도 국적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2척이 자국 해군 호위를 받으며 호르무즈해협을 무사히 통과했다. 이란이 '위안화 결제' 조건을 언급한 직후 첫 정부 차원의 공식 통항 허용이다.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 구입에 이미 위안화를 사용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중국도 현재 이란과 해협 통과에 대해 협상을 진행 중이다. 다만 중국이 이란의 조건을 환영할지는 미지수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4일 왕이웨이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를 인용해 "통항료 대가로 위안화를 지급하라는 제안은 전면 폐쇄 조치보다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쉬운 실용적인 조치"라면서도 "다만 중국을 더 광범위한 지정학적 긴장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외교 전문가는 SCMP에 "해당 조치가 위안화에 주는 상징적인 효과는 미미한 데 반해 정치적으로 이용될 경우 반발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향후 미국과 이스라엘이 정치적 대응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은 14일 미국 MS나우와의 인터뷰에서 "호르무즈해협은 열려 있다"며 "다만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과 그 동맹국들, 즉 우리의 적들에게 속한 유조선과 선박에 한해서만 폐쇄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란군을 총지휘하는 중앙군사본부 하탐 알안비야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 이스라엘과 이들의 파트너들에게 도달할 "단 1리터(L)의 석유도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을 향한 모든 선박이나 유조선은 정당한 공격 목표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