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졸업 후 벨기에서 활동하는 '씨어터 메이커'
밥솥 시선으로 한국 20년사 풀어낸 '쿠쿠' 등 화제작
한트케·포세 등 노벨상 극작가 배출… 9월 시상·공연
구자하. 주한노르웨이대사관 제공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연극 연출가이자 작곡가, 비디오 아티스트인 구자하(42)가 세계적 권위의 연극상인 국제 입센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사실주의 연극의 기틀을 세운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이름을 딴 이 상은 2년에 한 번씩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연 개인, 기관 또는 단체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연극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노르웨이 정부는 입센의 생일인 20일(현지시간) 구자하를 올해 수상자로 발표했다. 역대 최연소이자 아시아인 최초 수상자다. 노르웨이 정부가 2007년 제정한 이 상은 20세기 연극의 선구자로 불린 영국 연출가 피터 브룩(1925~2022),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페터 한트케와 욘 포세 등 현대 연극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이 수상했다. 상금은 약 250만 노르웨이 크로네(약 3억 9,000만 원)다.
심사위원단은 구자하의 작업에 대해 "혁신적이고 인간적인 연극"이라며 "유머와 시, 기술적 상상력을 통해 정체성, 소속, 식민 역사 이후의 삶에 대한 성찰을 열어준다"고 평가했다. 심사위원장인 잉그리드 로렌첸 노르웨이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은 "구자하의 연극은 조용하지만, 깊은 정치적 메시지를 지닌다"며 "이념적 소음을 가로질러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경험에 직접 말을 건다"고 밝혔다.
구자하의 '쿠쿠'. 주한노르웨이대사관 제공
구자하는 인디음악계에서 전자음악 작곡가이자 DJ로 활동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이론을 공부했다. 이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예술대학에서 현대연극 연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1년부터 벨기에 겐트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연극·음악·영상·기술을 결합한 다학제적 작업으로 유럽과 아시아 주요 공연예술 축제에서 주목받아 왔다. 2017년에는 네덜란드에서 YAA(Young Artfund Amsterdam) 재단예술상 연극·음악 부문상을 받았다.
구자하의 '한국 연극의 역사'. 주한노르웨이대사관 제공
대표작으로는 L/R 발음 논쟁을 통해 영어 중심주의와 문화 제국주의를 다룬 '롤링 앤 롤링', 한국의 지난 20년을 전기밥솥의 시선으로 풀어낸 '쿠쿠', 서양 연극사를 수용하며 발전한 한국 연극의 역사를 성찰한 '한국 연극의 역사' 등이 있다. 이 세 작품은 아리스토스가 '시학'에서 비극적 과오를 설명할 때 사용한 개념인 '하마티아'에서 이름을 딴 '하마티아 3부작'으로 묶인다. 이 작품들은 2023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도 소개됐다. 지난해 SPAF에서는 한국과 유럽 사이에 놓인 자신의 정체성을 다룬 '하리보 김치'를 선보이기도 했다.
연극 대본 연출을 넘어 비디오, 음악, 소품 등 다양한 매체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작품 전체를 제작하는 '씨어터 메이커'로 불리는 구자하는 "내 작업뿐 아니라 전통적인 연극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형식을 탐구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작품을 만드는 모든 예술가를 향한 상이라고 생각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은 9월 26일 노르웨이 오슬로의 국립극장에서 열린다. 다음날에는 구자하의 대표작 '쿠쿠'가 수상 기념 공연으로 같은 무대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