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금리 2년 만에 최고점 찍어
환율도 17년 만에 최고 수준 급등
금리 동결 땐 고물가·고환율 고착화
금리 인상 땐 6500조 부채 부담 커져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원·달러 환율과 증시 지수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10원을 돌파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약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상윤 기자
미국·이란 전쟁 장기화 우려로 유가가 치솟으며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고유가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자 국채금리가 급등하고, 원·달러 환율도 17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올라섰다. 여기에 정부의 25조 원 규모 '전쟁 추경'까지 더해지면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딜레마는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매파'로 선회하는 중앙은행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8일 기준금리를 3.50~3.75%로 2회 연속 동결했다. 0.25%포인트 인하를 주장한 스티븐 마이런 연준 이사를 제외한 전원이 기준금리를 그대로 두는 것에 찬성했다. 뉴시스
23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은 19일 6회 연속 정책금리를 동결했지만, 금융시장에서는 연내 두 차례 금리 인상 기대가 반영되고 있다. 호주중앙은행(RBA)은 두 차례 연속 금리를 인상했고, 영국 중앙은행(BoE)도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인플레이션 대응 의지를 드러냈다. 미국도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시장은 예상보다 강한 매파적 신호를 내놓으며 금리 인하 기대를 크게 낮췄다.
이 여파로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날 기준 4.41%까지 치솟으며 시장에서 임계점으로 여겨지는 4.5% 수준에 근접했다. 이는 중동 전쟁과 인플레이션 우려로 채권금리가 급등했던 지난해 6월 이후 최고치다. 박준우 하나증권 연구원은 "미국 국채 10년 금리가 4.5%를 넘어서면 위험자산에 가해지는 부담이 급격히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리 동결하자니 고물가·고환율 키울라"
한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가 급등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지면서 한국 2년물 국채금리는 이날 기준 3.42%로, 전쟁 직전인 2월27일(2.82%)보다 0.6%포인트 급등했다.
2024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
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지면서 원·달러 환율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1,500원대로 올라서는 등 원화 약세가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차기 한국은행 수장으로 지명된 매파 성향의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은 지난달 BIS 브리핑에서 이란 사태에 따른 유가 급등과 관련해 "일시적 공급 충격이라면 통화 정책은 이를 관망하는 것이 교과서적 대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당분간 한은이 관망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문제는
25조 원 규모의 전쟁 추경이 더해질 경우 물가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물가 상승은 환율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셀 코리아'를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한은으로서는 금리 인상 압력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정부·가계·기업부채를 모두 합한 우리나라 총부채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6,500조 원을 돌파(BIS)하는 등 부채 부담이 커진 상황이어서 섣불리 금리 인상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 한은의 딜레마다.
박덕배 금융의 창 대표는 "물가와 환율, 성장 둔화 압력이 동시에 커지는 '삼중 부담' 속에서 한은의 선택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확장 재정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만큼, 광범위한 경기 부양보다는 피해 계층에 대한 선별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