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우 작가 제공
"이제 불 쓰니까 덥다."
며칠 전 부엌에서 둥굴레차를 끓이던 동거인이 말했다. 날씨가 풀리면서 부엌의 냉기가 줄어든 모양이었다.
"아, 그래?"
고개를 돌리자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 동거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스뎅(스테인리스) 주전자 밑에서 푸른색 불꽃이 넘실댔다. 그때 문득 동거인이 부엌에 있을 때 내가 먼저 덥냐고 물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몰랐던 무심함에 순간 머리가 아뜩해지면서 부끄러웠다. 동거인이 찻잔에 둥굴레차를 따랐다. 나는 말없이 차를 마셨다. 눈이 마주치자 동거인이 싱긋 웃었다.
가스레인지를 써 본 적이 손에 꼽힌다. 그것도 직장 다니면서 혼자 지낼 때의 일인데 프라이팬 위에 만두를 올려놓고 약불로 천천히 굽는 게 전부였다. 높아서 만두가 보이지 않아 젓가락으로 더듬거려야 했다. 휠체어에서 부엌은 언제나 높고 멀었다. 온 힘을 다해 손을 뻗어도 싱크대 수도꼭지에 닿을 듯 말 듯하고, 가스레인지가 높아 얼굴 바로 앞에서 불꽃이 점화된다. 그마저도 가스 밸브가 잠겨 있으면 불가능했다. 자연스럽게 부엌일은 전부 동거인의 몫이 되었다. 나는 국을 끓이고 밥을 안치고 설거지를 하는 동거인을 식탁에서 멀뚱히 바라본다. 세제 거품의 미끌거림, 냄비의 묵직함, 가스불의 후텁한 열기. 아무리 오래 보고 있어도 그 느낌은 감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잊고 산다.
우리 둘은 공상을 좋아한다. 여러 설정 중 하나는 어느 미래에 내 병이 치료된 상황이다. 지금 몸에서 병의 진행이 멈추고 근육 세포가 문제없이 자란다. 공상 속에서 나는 열심히 헬스장에 다녀서 근육맨이 된다. 이미 굳어진 관절은 방법이 없으므로(약간의 현실성을 위해 이 부분은 회복 불가능으로 설정함) 여전히 움직임에는 제약이 있다. 근육맨이 된 미래의 나에게 우리는 이것저것 다양한 행동을 주문한다. 근육맨은 구부정한 자세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혼자서 샤워를 하고, 바닥에 있는 고양이를 번쩍 안아 올리고, 화분에 물을 주고, 부엌에 가서 차를 끓인다. 동거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등산을 하고, 찜질방에 간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지만 할 수 없던 일들을 차례차례 해내는 근육맨을 보며 기뻐한다.
"그러면 진짜 좋겠다."
"그러니까. 진짜 좋겠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동거인은 부엌으로 가고 나는 식탁에 남았다. 공상의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언제나 그 끝에 허무감이 남는다는 것이다. 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는 동거인을 어김없이 멀뚱히 바라보았다. 구부정한 근육맨이 동거인 옆에 서서 함께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냉장고로 가서 유일하게 손이 닿는 맨 아래 문 칸에서 콜라를 두 개 꺼냈다. 옆에서 본 근육맨은 즐거운 표정이었다. 설거지가 끝나자 근육맨은 사라지고 동거인이 식탁으로 돌아왔다. 나는 콜라 하나를 따서 내밀었다. 캔을 가져가면서 동거인이 싱긋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우리는 나란히 콜라를 마셨다.
하태우 작가·사진가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