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한 자루 쥐고 산 속에 은신
구출 후 수송기 고장나 애로
"CIA가 연막 작전 펼쳤다"
3일 이란 상공에서 격추된 F-15E와 동일한 기체가 2020년 6월 영국 레이큰히스에 있는 미군 기지에 착륙하려 하고 있다. 레이큰히스=AFP 연합뉴스
미국이 이란 상공에서 격추된 전투기에 탑승하고 있던 자국 군인을 구출했다. 실종됐던 미군은 권총 한 자루만 쥔 채 이란 산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만약 이란이 먼저 붙잡았다면 미국 입장에선 47년 전 '이란 대사관 인질 사태'의 악몽을 되풀이할 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서 "미군은 역사상 가장 대담한 수색·구조 작전 중 하나를 실시해 실종됐던 미군을 구출했다"며 "그(실종자)가 지금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을 여러분에게 알리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작전 중 사상자는 없으며, 구출된 미군은 부상을 입었지만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날 이란은 미국 공군의 F-15E 전투기를 이란 상공에서 격추했다. 탑승자는 2명으로, 조종사는 격추 직후 구출됐지만 화기관제 임무를 수행하던 장교 1명은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4일 이 장교가 구조되면서 탑승자 전원이 살아남았다.
이란 국영TV가 3일 공개한 격추된 전투기의 잔해. 로이터 연합뉴스
특수부대원 수백 명, 전투기 수십 대 동원
실종됐던 장교는 권총 한 자루 정도만 소지하고 이란 산속에 몸을 숨겼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이날 보도했다. 한때 해발 7,000피트(약 2,133m) 높이의 능선을 오르기도 했다. NYT는 "고립된 장교가 신호 장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란도 이 신호를 탐지할 수 있어 사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미국은 해당 장교의 위치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
구출에는 특수부대원 수백 명, 수십 대의 전투기와 헬리콥터 등이 동원됐다. 미군은 장교가 은신한 지역에 이란군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이란 차량 행렬을 폭격했다. 한 미군 관계자는 NYT에 "특수부대가 장교에게 접근하는 동안 이란 군을 물리치기 위해 사격을 했지만, 실제 교전으로 이어지진 않았다"고 말했다.
NYT는 행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미 중앙정보국(CIA)이 이란을 속이기 위해 '가짜 탈출 행렬'을 만들었다고도 전했다. 이 관계자는 "CIA는 해당 장교가 이미 구조돼 육로로 이동 중이라고 믿게 만드는 기만 작전을 벌였다"고 언급했다.
구출 후 귀환 과정에서도 수송기 두 대가 고장 나 어려움을 겪었다. 미군은 항공기 세 대를 추가 투입해 병력을 수송했고, 고장난 기체는 이란군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폭파했다.
구출 실패 시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 재연될 뻔
만약 미국이 구출에 실패했다면 이는 협상 과정에서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란이 1979년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외교관 등 미국인 52명을 444일 동안 억류한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인질 구출에 실패한 미국은 80억 달러가량의 동결 자산을 반환하는 조건으로 인질을 데려올 수 있었다. 이 사건은 미국인들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 만약 실종 군인을 구출하지 못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내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출 사실을 알리면서 '이란 방공망을 파괴했다'고 재차 주장했지만, 미군의 손실은 적지 않다. 이때까지 F-15 계열 전투기 4대가 파괴됐고, 3일에는 미 공군의 A-10 공격기 한 대도 호르무즈해협 인근에서 추락했다. 지난달 말 사우디아라비아 내 미군 기지 피격 당시 E-3 조기경보기 1대도 완파됐다. 이란은 이날에도 "수송기 1대와 헬리콥터 2대 등 구출에 나선 미국 항공기 여러 대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