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윤태진 '신약의 전쟁'
그래픽=신동준 기자
저자 윤태진은 유한양행 전략실장으로 재직하던 2018년 회사가 개발한 폐암 신약 후보물질 레이저티닙(상품명 렉라자)을 세계적 제약사 얀센에 수출한 주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유한양행은 단순한 기술 이전 대신에 신약 개발 과정에선 단계적 성과급(마일스톤)을, 상용화 후엔 매출에 비례한 로열티를 받을 수 있도록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은 재작년 렉라자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폐암 1차 치료제로 승인받는 쾌거와 함께 K바이오의 신화로 남았다.
이번 책은 '신약의 탄생'(2020)에 이은 저자의 두 번째 저서다. 그사이 저자는 지난해 여름 회사를 나와 제약·바이오사를 컨설팅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생명과학 연구자 출신으로 업계에서 연구개발(R&D)과 비즈니스개발(BD)을 병행했던 그의 커리어가 이제 비즈니스 쪽으로 확연히 중심을 옮긴 셈.
이런 변화는 책 주제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두 권 모두 암 치매 면역질환 등 인류 최대 병고이자 제약시장 메이저리그인 난치병을 정복하려는 노력을 다뤘지만, 전작이 새로운 치료 기술과 신약 개발 판도를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신간은 신약 시장의 최신 동향을 전하는 동시에 국내 업계가 어떻게 변화에 대처하고 기회를 창출할지 제언하는 데 역점을 뒀다. 다시 말해 글로벌 거대 제약사, 이른바 '빅파마'가 주도하는 판에서 취해야 할 생존 전략을 설파하는 책이다.
한국은 기초과학이 약하다는 통념과 달리, 우리나라 제약업계는 세계적인 R&D 인재 풀과 위탁생산 능력을 갖췄다고 저자는 자부한다. 문제는 돈. 신약 상용화의 필수 과정으로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임상시험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런 만큼 시장 전략이 중요하다면서 저자가 제시하는 활로는 세 가지. 신약 초기 기술을 비싸게 팔거나, 약을 만들어주는 대가로 기술 제휴를 맺거나, 빅파마의 관심이 덜한 틈새 방식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성공적 딜을 위한 핵심 요건과 실전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한다"는 추천사대로, 책 말미 50쪽은 해외 제약사와 협상하고 계약 맺는 방법을 전수하는 데 할애됐다.
저자는 내처 K팝처럼, K바이오에도 체계적인 신약 육성 시스템을 구축하자고 제안한다. 신약 개발 전 과정을 경험한 실무형 전문가를 주축으로, 대학·연구소의 유망기술 가운데 상품성 있는 것을 선별하는 'K바이오 컨설팅 그룹'과 이런 기술을 상업적으로 보완한 뒤 벤처 생태계와 접목시켜 신약 개발 궤도에 올리는 '한국신약개발연구소(K-DDI)'가 양대 축이다.
일반 독자에게도 글로벌 제약산업의 현주소를 일별할 수 있는 양질의 교양서다. 의약품 시장 왕좌에 등극한 비만치료제, 이중항체 기술로 진화한 항암제, 철벽방어 뇌에 진입하려는 치매 치료제 등 신약의 작용 원리를 직관적 비유를 동원해 쉽게 설명하는 저자의 솜씨가 발군이다.
신약의 전쟁·윤태진 지음·바다출판사 발행·284쪽·2만2,000원